청주토요산악회원들이 10월 23, 24일 홍도와 흑산도로 특별산행을 다녀왔다. 용암동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는 분평동을 거쳐 최종 집결지인 청주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앞은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관광차들로 붐벼 바로 옆 공설운동장에서 회원들을 만난 후 8시 10분경 청주를 출발했다. 청주의 관문에 세워진 주상복합건물 지웰시티를 지날 때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완연한 가을 날씨를 만들어 놓은 하늘이 잘 다녀오라고 환송했다.
도로와 교통이 급속히 발달해도 청주에서 목포까지는 4시간여 거리라 멀다. "일어나유. 잠깐 셨다가유." 친목회총무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벌곡, 함양휴게소에서 휴식도 했다. 수확을 끝낸 논에 볏짚을 말아놓은 덩어리들이 알록달록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데 하늘은 남쪽으로 내려가며 점점 흐려진다.
목포를 상징하는 유달산이 차창 밖으로 나타나자 바다 냄새가 몰려온다. 점심을 먹고 현대식 건물인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갔다. 다도해 관광의 미래 비전과 역사, 문화를 전시한 해양관광홍보관을 구경하고 1시 20분에 홍도를 향해 출항하는 쾌속선에 올랐다. 노래에도 나와 있듯 목포는 항구도시라 오가는 배들이 많다. 쾌속선 승무원은 300억 원을 호가하는 쾌속선 12척 중 7척이 목포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홍도와 흑산도가 속한 전남 신안군은 섬이 1,004개에 이른다하여 천사군으로 불린다. 항구를 빠져나온 쾌속선이 섬 사이를 달린다. 안좌도와 팔금도를 잇는 다리 밑을 지나 비금면에 잠시 들른다. 이곳 도초도가 게르마늄이 다량 들어있는 천일염 생산지이다. 배가 지나는 길에 외지인들에게 섬의 이름을 알려주는 흰색 글자조형물이 있어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한 홍도와 흑산도는 모두 흑산면에 소재한 섬이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홍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93Km 떨어진 흑산도에서도 20km가량 더 가야 다다를 수 있는 섬이다. 넓은 바다를 빠르게 항해한 쾌속선이 흑산도를 지나친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홍도에 도착했다.
홍도는 넓이가 흑산도의 1/3이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길게 뻗어 있는 섬의 모습, 북쪽과 남쪽을 잇는 산봉우리 깃대봉과 양산봉,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해안, 절벽에서 자라는 분재 소나무를 보려고 해마다 수십만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섬이다. 기암절벽과 산봉우리가 가로막아 여객선이 드나드는 홍도1구와 깃대봉 북서쪽 해안가에 자리한 홍도2구가 뱃길과 산길로만 이어지는 것도 특이하다.
여행은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즐겁다. 선착장을 드나드는 배들이 많아 20여분 배위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방파제에 써있는 '성실시공, 안전제일'을 가리키며 70년대에 가장 유행했던 사자성어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배에서 내리니 선착장은 '대한민국 사람들 다 홍도로 왔어.'라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룻밤 묵어갈 홍도장모텔로 갔다. 모텔이 높은 곳에 있어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홍도항과 앞바다의 풍경이 아름답다. 짐을 정리하고 명산100에 뽑힌 깃대봉으로 향했다. 홍도는 섬전체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어 깃대봉 산행은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을 한 후 홍도관리사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등산이 가능하다.
국립공원 홍도탐방지원센터와 흑산도초등학교 홍도분교장을 지나면 바로 깃대봉 등산로와 연결된다. 20여분 거리의 나무데크 계단 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홍도항, 홍도해수욕장, 양산봉, 인접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인길로 명명된 능선은 흙길이라 산책하듯 발걸음이 가볍다. 등산로에서 사랑나무로 불리는 연리지, 바다 밑으로 뚫려있는 굴 숨골재, 1935년까지 숯을 구웠다는 숯가마터를 만난다.
깃대봉은 높이가 365m에 불과하지만 해면에서 시작하는 등산이라 초보자들은 힘들어 한다. 나도 아픈 무릎을 조절해가며 늦게야 깃대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이곳에 오른 것을 표석을 배경삼아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간신히 사진 한 장 남기고 아래편 바닷가의 슬픈여 주변을 내려다봤다. 흐린 날씨가 조망과 아름다운 낙조를 훼방 놨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어두워지는 산길을 부지런히 내려와 숙소로 갔다. 단체손님을 받는 집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매운탕 맛이 일품이다. 저녁을 먹고 모텔에서 홍도항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봤다. 홍도는 좁고 급경사인 골목길이 언덕을 따라 오밀조밀 이어져 리어카 매달린 오토바이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 밤길에는 주인이 두고 간 장난감 자전거가 주인공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만 하면 재미가 덜하다. 여행의 참맛은 그 속에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야 느낄 수 있다.
불빛을 환하게 밝힌 홍도항의 포구에서 싱싱한 해산물들이 유혹한다. 값을 물어보며 횟집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마음씨가 제일 후덕해 보이는 해녀태현이네집(010-9192-8442)으로 들어갔다. 천성은 타고난 성품이라 얼굴에도 써있다. 예상했던 대로 주인아주머니는 홍도의 별미인 생선구이를 비롯해 해삼, 소라, 전복을 실비로 맛보게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인생살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횟집에서 아내와 인생살이를 진지하게 나누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해변나이트클럽 옆 무대에서는 가고 싶은 섬 주말상설 프로그램인 '달빛 흩날리는 홍도의 밤 낭만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홍도야 우지마라, 흑산도 아가씨, 10월의 멋진 어느 날, 만약에 등을 라이브와 트럼펫으로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를 6자로 줄인 유머 '홍도 뚝! 오빠 짠'이 유행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숙소로 올라갔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한 방에 10여명이 잠자는 풍경도 재미있다. 일찍 일어나니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여행기간에는 날씨 좋은 것이 최고지만 어떤 악조건도 순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여행이고 그런 마음가짐이라야 새로운 추억거리를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여행의 주인공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빗속을 걸어 선착장으로 갔다. 총천연색 우비를 입은 관광객들이 7대의 유람선에 승선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7시에 해상관광에 나선 유람선이 홍도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섬을 시계방향으로 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지만 멋진 풍경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우비를 입고 갑판으로 나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입담 좋은 해설사가 두개의 마을 홍도1구와 2구, 몽돌이 깔려 있는 홍도해수욕장, 홍갈색을 띤 규암질 바위, 해안가에 직립한 기암절벽, 벼랑의 바위에 뿌리내린 분재 소나무,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바닷물, 여기저기 뚫려있는 동굴, 해안의 전망을 내려다보는 홍도등대, 섬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기암괴석에 얽힌 다양한 전설을 유머를 섞어가며 누에를 닮은 홍도를 자세히 소개한다. 특히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될 만큼 희귀식물과 동물이 많아 홍도에서는 돌 하나 풀 한 포기라도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홍도의 바닷가에서 첫 번째 만난 절경은 가운데가 뻥 뚫린 남문이었다. 남문과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어울려 만든 풍경이 예술품의 진수를 보듯 기기묘묘하다. 남문 주변과 병풍바위를 지나면 만나는 칼바위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배가 머물며 사진 촬영할 시간을 준다.
부지런히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데 셔터를 눌러도 반응이 없다. 폭우 속에 진행되었던 청주읍성 축제에 참여하던 날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 수리를 했지만 정상이 아닌 상태라 새 카메라 구입을 고민하다 홍도로 향했었다.
언제쯤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땅을 내 발로 다 밟아보겠다며 시간이 나면 여행을 떠난다. 전국 유명 관광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취미생활도 한다. 카메라 없이 여행하던 시절 다녀간 곳이라 이번 여행을 계획했는데 홍도의 진미가 막 펼쳐지는 시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어떤 상황이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포용력을 키워준 게 여행이다. 붉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는 봄이나 원추리 꽃이 섬을 노랗게 수놓는 여름철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유람선이 기둥바위, 원숭이바위, 주전자바위, 거북바위, 부부탑, 석순이 100년에 1cm씩 자란다는 석화동굴, 평화로운 홍도2구, 산중턱의 홍도등대, 독립문바위, 슬픈여, 공작새바위, 홍어굴을 지나 2시간 40여분 후에 홍도1구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중간에 작은 어선에서 파는 회를 유람선에서 먹는 시간도 주어진다. 각자 사먹는 계획과 달리 산악회에서 먹을 만큼 회를 사줘 더 술맛이 났다.
흑산도로 가는 쾌속선의 승선시간이 1시간 넘게 남았다. 전날 저녁 인정을 베푼 해녀태현이네집에서 다시 아주머니의 후덕한 인심을 느끼며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홍도를 떠난 쾌속선이 30여분 달리자 산과 바다가 검푸르게 보인다는 흑산도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흑산도는 망망대해에 있는 섬이라 옛날에는 유배지였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조선 말기의 유학자 최익현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이미자의 히트곡 '흑산도 아가씨'도 이곳이 배경이다.
면적 20㎢의 흑산도는 해안일주도로가 나있을 정도로 제법 크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전망대, 정약전 유배지, 샛개해수욕장, 최익현 유허비 등 '버스투어'로 일주도로를 달리며 섬을 한 바퀴 돌아봤다.
흑산도는 양식업을 하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자 홍탁의 고장이다. 몇 년 전 이곳에서 먹은 홍탁 맛을 잊지 못하던 터라 큰 식당으로 들어가 삭힌 것과 회를 반씩 섞은 홍어를 달랬더니 주인이 거절한다.
어느 곳이든 인심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섬마을자연산회식당(061-275-8948)의 젊은 주인 내외가 그런 사람들이다. 홍어와 탁주를 원하는 대로 먹게 해줬다. 받으면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깨끗하고 윤기가 흐르는 멸치를 집안들에게 선물할 만큼 샀다. 산악회원들이 점심을 먹는 식당까지 차를 태워주는 호의도 베푼다. 나도 다른 사람들 맛보이려고 사간 홍탁으로 처음 만난 회원들에게 인심을 썼다.
수산물 시장에 들려 말린 문어 등 여러 가지 해산물을 구경했다. 부둣가는 해산물을 진열하고 좌판을 벌인 사람들이 많다.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느라 바닷가를 기웃거리다 출항 시간이 되어 승선했다.
일이 계속 꼬이는 날도 있다. 그게 인생살이다. 카메라 작동이 멈춘 홍도부터 흑산도 버스투어까지 내 것보다 카메라 성능이 좋은 아내의 휴대폰으로 풍경사진을 촬영했다. 아뿔싸, 출항 직전에야 아내의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배위에서 내 휴대폰으로 흑산도항의 풍경을 몇 컷 남겼다.
물길을 헤치며 부지런히 달려온 쾌속선이 목포항에 도착했다. 바다가 없는 충북사람들에게는 회가 최고다. 목포의 횟집단지에서 회를 배불리 먹는 시간도 주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살아가는 얘기도 많이 나눴다.
이번 여행은 카메라 고장으로 사진을 제대로 못 남겼다. 그 바람에 아내의 휴대폰까지 분실했다. 그래도 눈과 입이 즐거웠고, 생각을 많이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1박 2일간 함께 했던 청주토요산악회원들 때문에 더 즐거웠던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