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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지정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를 담은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연재를 2009년 11월 13일(59회)까지 쓰다가 무릎 이상으로 1년여 동안 쉬었습니다. 이번 겨울 다시 산을 찾아 남은 40대 명산에 대한 여행기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기자 주>

초겨울을 장식한 새빨간 늦단풍
 초겨울을 장식한 새빨간 늦단풍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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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긴 가을이 아직 남아있네"
"이곳이 해남 땅이잖아? 남녘땅 끝자락 지역이라 역시 다르긴 다르구먼"

우리 일행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두륜산을 가로지른 도로를 따라 달려 오소재에서 멈추자 창밖을 내다보던 일행들이 하는 말이었다. 지난 18일, 두륜산 신행기점인 고갯마루에 내려서자 우리들을 맨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잎이 불타듯 새빨간 단풍나무 한 그루였다.

"오늘도 쏜살같이 오르겠구먼, 단단히 각오하고 따라가야 될 거야"

버스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산행을 지휘하는 산행대장이 단단히 일렀다. 오랜만에 산악회 산행에 함께한 일행들이 잔뜩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겨울철이라 해가 짧으니 늦장부리지 말고 빨리 대흥사 주차장에 도착하라고 겁을 준 것이다.

위험한 바위너덜길
 위험한 바위너덜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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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선두대장이 앞장서서 곧장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바삭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올라야 했다. 그런데 엊그제 떨어져 내린 낙엽들이 수북하여 산길이 희미하다. 앞 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을 염려도 있었다. 10분이 지나지 않아 이마와 등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20여 분 쯤 오르자 이번에는 경사가 조금 더 급해지면서 바위너덜길이 나타났다. 각이 날카로운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너덜길은 걷기에 매우 위험하고 힘들었다. 모두들 조심조심 바윗길을 걷는다. 한 발자국만 삐끗해도 넘어져 큰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는 길이었다.

아찔한 절벽 위 바위구명...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개구멍바위 절벽 오르기
 개구멍바위 절벽 오르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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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길을 30여 분 동안 걸어 바위봉우리 밑에 당도했다. 오른쪽 맞은편에 오심재를 사이에 두고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고계봉이었다. 산 너머 두륜산 집단 시설지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봉우리다.

"어~ 저건 뭐야? 절벽을 올라 바위구멍으로 빠져나가게 되어있네. 저걸 어떻게 올라가지?"

사람들이 몰려서서 기다리고 있는 절벽 아래 이르자 바위절벽 오르기에 유난히 약한 친구가 지레 겁을 먹는다. '개구멍'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절벽이었다. 우리 일행들보다 먼저 도착하여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오심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들도 본래는 오소재에서 오심재를 거쳐 오르기로 했었는데 시간을 단축시키느라 지름길인 바위너덜길로 오른 것이다. 높이 10여 미터의 개구멍 절벽길은 쇠줄과 밧줄이 걸려 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특히 키가 작고 담력이 약한 여성등산객들은 매우 힘들고 어렵게 올랐다.

능허대 바위봉우리에서 점심먹는 등산객들
 능허대 바위봉우리에서 점심먹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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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절벽을 통과하여 오른 첫 번째 봉우리는 능허대. 제법 널따란 바위봉우리 위에서는 시간이 마침 점심때여서 30~40여 명의 등산객들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보다 앞서 오른 우리 산악회원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산행대장의 시간 독촉에 따라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진행한 것이다. 정상인 가련봉으로 가는 길은 온통 바윗길로 한 걸음도 가볍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바위절벽 오르막과 내리막길에는 어김없이 쇠줄과 밧줄이 걸려 있고, 위험한 급경사 바윗길에는 철제 발판까지 만들어져 있었지만 오금이 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슬아슬한 능선길을 지나 바위절벽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자 해발 703미터인 두륜산의 정상 가련봉이 나타났다. 가련봉은 비좁은 바위봉우리로 표지석 하나가 덩그렇게 세워져 있을 뿐 쉴만한 장소가 없었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길을 재촉했다.

바윗길에서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산 위에서 먹는 음식 꿀맛 같아라

두륜산 정상인 해발 703미터 가련봉
 두륜산 정상인 해발 703미터 가련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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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타난 바위봉우리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모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기막힌 절경이다. 남쪽으로는 드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바다가 희끄무레한 모습으로 바라보인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희부옇게 하늘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많이 걷히긴 했지만 이곳도 해맑은 날씨는 아니었다.

동쪽으로 능선길을 달리다 오심재를 너머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고계봉. 그 뒤쪽으로 보이는 추수가 끝난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농가들이 아름답다. 멀리, 가까이 솟아 있는 봉우리들과 이어져 있는 능선들이 붓끝으로 그려놓은 듯 선명하다. 머리에 뾰족한 철탑을 뿔처럼 꽂고 우뚝 솟은 봉우리 모습은 매우 특별한 모습이다. 오른편 아래 골짜기에 널찍하고 아늑하게 자리 잡은 가람이 바로 천년고찰 대흥사였다.

전망대에서 만일재로 내려가는 길도 급경사였다. 더구나 낙엽이 뒤덮인 바윗길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경사진 바위의 낙엽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 조심조심 내려왔지만 몇 번인가 미끄러지는 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만일재에 내려서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두들 준비해온 간식과 도시락을 꺼내 놓으니 푸짐하다. 사과와 배, 귤 등 과일은 기본이고 찰밥을 가져온 사람, 군고구마와 떡, 부침개도 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가 지나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버스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지만 모두들 배고팠던지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다. 더구나 높은 산에서 10여 명이 함께 둘러 앉아 나눠먹는 음식 맛을 어떤 고급음식에 비할 수 있을까? 모두들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두륜봉으로 오르기 전에 뒤돌아본 가련봉과 전망대 봉우리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두륜봉 바위절벽을 오른편으로 안고 돌아 오르는 길 끝에는 급경사 철제 사다리가 바위 구름다리 아래를 통과한다. 두륜봉에 올랐다가 내려와 대흥사로 내려가는 하산길로 나섰다.

바위협곡 사이로 바라본 산줄기
 바위협곡 사이로 바라본 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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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모습의 잉꼬부부, 눈길을 붙잡네

"우와~~ 또 바윗길이네. 조심들 해~"

그런데 이번에도 바위너덜길이 나타난다. 더구나 오르막길이 아니고 내리막길이어서 더욱 위험하다. 조금 내려오자 다리가 후들거리고 다시 식은땀이 흐른다. 어렵사리 바위너덜길을 통과하여 잠깐 쉬기로 했다.

"어~ 저 사람들 좀 봐? 아주 잉꼬부부네"

우리들이 쉬고 있는 옆을 지나쳐 내려가던 부부였다. 그들도 우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산악회원이었다. 그런데 그들 부부의 내려가는 모습이 우리들의 눈길을 붙잡은 것이다. 부부가 함께 내려가다가 약간만 급경사 바윗길이 나오면 어김없이 남편이 먼저 내려가 뒤돌아서서 뒤에 내려오는 부인에게 두 손을 내밀어 받쳐주는 것이었다.

급경사길 밑에 먼저 내려가 부인의 손을 잡아주며 내려주는 정다운 부부
 급경사길 밑에 먼저 내려가 부인의 손을 잡아주며 내려주는 정다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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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부인은 밑에서 내민 남편의 손을 마주 잡고 아주 쉽고 편안하게 내려섰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급경사길을 완전히 내려오는 동안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이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급경사길을 다 내려온 후 그들 부부에게 다가가 참 다정한 부부라고 말하자 남편은 멋쩍어 했지만 부인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들 부부는 60대 초반의 서울 사당동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8년 전부터 건강과 산행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는 부부는 우리들이 보았던 것처럼 평소에도 잉꼬부부로 정답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부인에게 남편이 자상하고 친절한 분이라고 칭찬하자 그렇다고 한다.

"조금 전에  내려오는 너덜바윗길에서 아내가 발을 조금 다쳤거든요,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아니면 누가 도와주겠어요?"

남편은 여전히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라는 칭찬이 쑥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부인의 발걸음은 전혀 다친 사람 같지 않게 편안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아니에요. 우리 남편은 평소에도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에요, 아껴주고 도와주니 항상 고맙지요"

60대 초반 초로의 다정한 부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덧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 있다. 대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31본산 중의 하나인 22교구 본사로서 대찰이다. 백제 19대 구이신왕 7년인 서기 426년에 정관 대사가 창건했다. 처음에는 대둔사라 하였는데 후에 대흥사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가 승병을 지휘한 항일 작전지였다.

대흥사 범종각과 뒷산 풍경
 대흥사 범종각과 뒷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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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경내의 아름답고 황홀한 초겨울 단풍

경내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과 함께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당 유정, 그리고 뇌묵당 처영 등 3대사의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표충사라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내에는 또 조선후기에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의 좌상도 자리 잡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에 다산 정약용(1762∼1836), 소치 허련(1809∼1892), 그리고 추사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를 하였는데, 다산의 '동다기'와 초의선사의 '동다송'은 우리 토산차를 예찬한 글로 유명하다. 특히 초의선사는 이곳 대흥사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간 수행하였으며 '다선삼매'에 들었다고 전한다.

대흥사 경내에 있는 다성 초의선사 좌상
 대흥사 경내에 있는 다성 초의선사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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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저곳에서 차 한 잔 하고 가는 게 어때?"

경내에는 곱게 물들어 아직 지지 않은 단풍들이 많았다. 빛깔 고운 단풍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일행 한 사람이 차 한 잔 하자고 권한다. 작은 연못 옆에 있는 찻집 앞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차향이 감미롭다. 맛과 향이 가장 좋은 우전차를 우려내어 마시니 미각과 취각이 동시에 호강에 빠진다.(우전차는 초봄 우수절기 전에 채취한 가장 좋은 찻잎이다.)

향기롭고 감미로운 우전차 맛에 취해 잠깐 쉬었다가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석양에 비낀 햇살이 절집 뒷산에 가득 내려앉았다. 대흥사 주변에는 겨울에도 푸른 동백나무 숲이 많아 불타듯 새빨갛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야~ 절경이로다. 절경"

방금 찻집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던 감성 좋은 일행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흥사 경내는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등산객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여기저기 모여서서 곱고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동백과 단풍이 어우러진 대흥사 입구길
 동백과 단풍이 어우러진 대흥사 입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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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든 단풍
 곱게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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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든 단풍과 동백나무 푸른 숲의 아름다운 어울림은 집단 시설지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간지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초겨울 가뭄으로 수량이 많지 않은 골짜기 개울가와 도로주변을 뒤덮은 단풍이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는 듯 황홀한 빛깔이었다.

"자~ 조금 빨리 걸읍시다. 이렇게 걷다간 우리들이 제일 늦겠는데요."

서울에선 이미 져버린 고운 단풍에 취하여 일행들의 걸음이 느려 터지자 후미대장이 빨리 걷자고 재촉한다. 그래도 재촉하거나 말거나 빨리 걷는 사람이 없다. 초겨울 고운 늦단풍에 모두들 마음을 빼앗긴 탓이리라.

그렇게 천천히 걸어 일주문이 가까워지자 단풍색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이르러 버스에 오르는 길에서는 개울가와 화단 주변의 곱게 물든 단풍들이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곱고 화려한 자태로 우리들을 전송해주고 있었다.


태그:#두륜산, #대흥사, #단풍, #가련봉,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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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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