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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낙엽따라 흩어지고...
▲ 양산 물금 오봉산 ...가을도 낙엽따라 흩어지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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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오봉산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된 나는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볼 때마다 그저 든든하다. 주변의 텃밭과 산책로, 오봉산을 통해 계절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요즘, 자연의 체취를 물씬 느끼며 산다. 우체국에 택배 부칠 일이 있어서 박스 포장을 하고 자전거 뒤에 싣고 나섰던 길, 고장 났던 자전거를 고쳐 다시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 아주 상쾌했다. 여러 날 동안 몹시 추웠는데 오늘은 날씨가 비교적 포근해서 자전거 타고 달리기에도 좋았다.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부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주 올려다 보이는 오봉산이 반갑다. 두 주 전만해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타오를 듯 물들이더니 어느새 갈색을 띤 낙엽 산으로 변하고 있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모처럼 오봉산을 만나고 온 감회를 여기 싣는다.

그 날(두 주 전인 11월 13일)엔 오봉산 정상 끝까지 가 보았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그래도 가끔 갔던 산이건만 정작 이곳으로 이사를 온 뒤론 매일 아침저녁으로 올려다보고 산책길만 가끔 걸었을 뿐 오봉산 깊숙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멀지 않은 가지산도 금정산도 단풍절정일 텐데, 하지만 다른 산들 다 제쳐두고 오봉산으로 가기로 했다. 지척에 두고도 계속 미루기만 했기에.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시작되고 구절초 지면 가을이 끝난다고...누가 그랬지요...
▲ 구절초...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시작되고 구절초 지면 가을이 끝난다고...누가 그랬지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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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마을까지 차로 움직여 갈릴리교회 위쪽 길로 올라갔다. 길가에 주차를 하고 범어 배수지에서 산행 길로 접어들었다. 주말이라 제법 등산복차림을 하 사람들이 많았다. 나무들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고 떨어져 누운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진입로부터 시작해서 오봉산 등산길은 제법 경사 높은 길로 쭉 이어졌다.

산이야 533m 밖에 안 되지만 경사가 제법 급해서 운동량이 꽤 많고 숨이 찼다. 3주 동안 산행을 하지 못한 까닭에 처음 오를 땐 숨이 차서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걸음에 탄력이 붙었다. 산중턱에서 벌써 하산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마주 내려오던 학생들이 반갑게 먼저 인사를 했다. 인사성도 밝고 얼굴도 밝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
▲ 산에서 만난 학생들...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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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에 있는 중학생들이라고 밝힌 남학생들은 오전 7시에 덕산 아파트 뒤에 있는 진입로를 통해 산을 올랐고 하산길이라 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오락실에 안 가고 산에 온 학생들이 건강해 보였다. 목이 마르다고 말하는 한 학생의 말을 듣고 물을 나누어 주었더니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며 내려갔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른 학생들 마음이 건강해 보여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자 뛰다시피 내려가던 학생들이 뒤돌아보고 포즈까지 취해주는 게 아닌가. 그 익살스런 행동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유쾌하고 멋진 녀석들이었다.

안부 사거리(10:50)에 도착하니 햇살이 쏟아진다. 여기서는 화제 임도길이 뒤에 있고 오봉산 2봉이 마주 보이고 오봉산 정상 가는 길, 범어 배수지로 내려가는 길 등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우린 오늘 오봉산 정상까지 간다. 낙엽이 깔린 능선 길은 호젓하고 제법 걸을 만했다. 성기게 심긴 나무들이 머리 위로 뻗어있어 그늘을 만들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호젓이 걷는 길은 상쾌도 하다. 마른 낙엽 향기가 우리 걸음걸음마다 따라붙었다. 가을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다.

내려다 본 화제마을...
▲ 오봉산 능선길에 내려다 본 화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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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시내....
▲ 오봉산 능선길에 내려다 본... 양산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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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하게 평지처럼 이어지다가도 길은 곧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온 듯한 검도학원 어린 아이들이 젊은 남자 선생님의 인도로 함께 걷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너무 수선스러워서 얼른 걸음을 내뺐다. 조용히 걷고 싶었던 까닭이다.

96계단 앞(11:40)에서 바라보는 화제마을은 안온하고 평화로웠다. 병풍처럼 울을 친 듯한 산산이 둥글게 마을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양산 시내는 가려져 드러났다가 보였다가 하지만 화제마을은 능선 길 내내 환히 조망되었다.

오르락내리락 제법 힘이 들어서 조망바위에 앉아 쉬었다. 김밥, 커피, 단감을 맛있게 먹고 한동안 앉아 양산 시내 쪽으로 내려다보고 앉아 있노라니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와 크고 작은 건물들이 마치 성냥곽처럼 보인다. 전철역사 또한 종이박스 같다. 사람들은 저 땅위에서 복닥거리며 숨 가쁘게 살아가느라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산다.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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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비구비 흐르는 낙동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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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 온 산능선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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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 걷는 길엔 여전히 오른쪽 옆으로는 화제마을, 왼쪽엔 양산시, 하지만 어느 곳으로 보던지 낙동강의 강줄기는 조망된다. 흐렸다 햇살이 퍼졌다 하는 날씨 속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뿌옇게 흐려 보이지만 그 긴 강줄기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오봉산 정상(12:40)엔 몇 사람이 먼저 와서 주변 숲에 앉아 쉬고 있다. 오봉산 정상석 앞에서는 나무에 가려 시내 쪽으로는 조망이 어려워 화제 마을 쪽으로 등 돌리고 앉아서 한참 동안 쉬었다. 가까운 산은 이래서 좋다. 산에 올라 마음 넉넉하게 망중한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화제마을의 안온한 풍경이 가슴에 담긴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추수를 끝내 뒤의 논밭들, 그 앞에 긴 띠를 이루며 흐르는 낙동강이 조망되었다. 맑은 날, 저물녘의 낙동강의 낙조는 정말 아름답다. 묽게 물드는 노을빛 낙동강 물을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언제 한 번 해질 무렵 낙조에 물드는 낙동강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하산길...
▲ 오봉산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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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것은 화제마을 쪽에서 오봉산 등산 진입로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화제마을에서 오봉산을 올려다보면 그야말로 압도할 만큼 우뚝 솟은 오봉산의 뒷자락을 느낄 수 있는데, 화제마을에선 오봉산을 굳이 오르지 않는가 보다. 산 산을 울타리 삼아 있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언제나 그 품속에 있기 때문일까.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오후 1시 5분이다. 왔던 길로 되돌아오다가 삼거리를 만나 69계단이 있는 길로 내려간다. 삼거리에서 곧장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로 밧줄을 타고 미끄러지듯 비탈을 내려간다. 꽤 높은 경사길이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았는지 길이 선명하지 않은 거저 비탈이다. 한참동안 더듬거리듯 가다가 완경사를 만나고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한참 가다보니 산책로 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다.

산책로...
▲ 오봉산...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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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 걸어 처음 오르던 길을 중도에 만나 하산한다. 산을 한바퀴 빙 돌아 나온 셈이다. 붉게 물든 단풍은 절정으로 치닫고 떨어져 누운 나뭇잎들은 내 발 밑에서 여윈 비명을 지른다. 산에 올랐다가 오니 몸도 마음도 가볍고 경쾌했다.

가끔 산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발걸음 옮기는 것이 어느새 삶의 한 자락을 차지하게 되었다. 산을 모르는 사람들도 가끔은 산에 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면 좋겠다. 마음이나 머릿속에 헝클어진 생각이 더 많을수록, 복잡할수록 산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걷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악보보다 식보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가 낫다' 어떤 약이나 음식보다는 걷기가 제일이라는 의미이다. 혹자는 '보약삼첩이 불여 추일등산'이라 했다. 보약 세 첩 먹는 것보다 청명한 가을날에 등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어디 몸뿐이랴.

이제 겨울로 치닫고 있는 오봉산을 또 조석으로 올려다본다. 지척에 있어 고마운 산, 매일 마주 대하는 오봉산 능선을 바라만 봐도 좋다. 바라만 보다가 불현듯 또 산에 닿으리라.

산행수첩
1. 일시: 2010. 11. 13(토) 약간 흐림

2. 산행기점: 물금 범어 대동아파트 앞 갈릴리교회

3. 산행시간: 4시간 55분

4. 진행: (10:00) 갈릴리교회(위 길가 주차장)-범어배수지(10:05)-삼거리(69계단. 임도 갈림길 (10:20)-안부사거리(10:55)-삼거리(69계단 갈림길 11:40)-오봉산 정상(12:40)-식사 후 하산(1:05)-삼거리(69계단 갈림길 1:35)-임도길(삼거리 2:10)-정자쉼터(2:12)-너덜지대(2:25)-임도 끝 사거리(2:35)-범어배수지(2:50)-갈릴리교회(2:55)


태그:#오봉산, #양산,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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