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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받이를 타고 내려와 달개비 꽃이 돋았다. 늦여름에 피운 것이 이제야 시들어서 없어졌다.
▲ 잡초도 생명입니다. 물받이를 타고 내려와 달개비 꽃이 돋았다. 늦여름에 피운 것이 이제야 시들어서 없어졌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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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병원에서 위암말기라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 조직검사와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수술도 필요 없다는 위암말기라는데 웬일인지 무섭지가 않았다. 아니 내 뒤에 남아 있는 가족들 걱정에 나의 죽음을 무서워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한없이 겸손해져만 갔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나의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줄 미처 몰랐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토록 즐거움인 줄 미처 몰랐다. 못생긴 자갈 굴러다니는 강가에 사는 메기, 꺽지, 중투라지, 송사리가 그렇게 예쁜 줄 미처 몰랐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만나는 소나무 한 그루, 느티나무 한 그루가 이토록 나에게 위안을 줄지는 미처 몰랐다.

죽음! 나도 이제는 조만간에 경험해보겠구나 생각을 하니 내 기준에 맞추어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가정역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는 내 친구다.
▲ 사가정역 내 친구. 사가정역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는 내 친구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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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쌀쌀한데 할아버지 한분이 피곤을 못 이기시고 누워계신다.
▲ 많이 힘드신가보다? 날도 쌀쌀한데 할아버지 한분이 피곤을 못 이기시고 누워계신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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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다행스럽게 오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재미있는 게 오진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몸서리 치도록 무섭게 다가왔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어 가며 웃기는 인생이구나 싶었다.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을 하고 생각하니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은행나무 노란잎이 낙엽 되어 떨어지고, 늦가을 따듯한 볕은 가지마다 고루 비춘다. 앙상한 가지들 서로서로 길다 짧다 견주며 다툼질이건만 사람들은 어느 가지가 길고 짧음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내 인생의 마지막 뒷정리를 하면서 알았다.

사람이 자꾸만 좋아진다.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며 찬송가 나오는 소리통 옆으로 진열 된 천 원짜리 때수건을 파는 장애아저씨와 눈높이를 맞추고 장바닥에 앉아 낄낄거려도 좋았다. 육교 위에 앉아 손 내밀고 계시는 아저씨 옆에 앉아 담배를 한 개비씩 나누어 피워도 그게 그렇게 좋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문학적 표현이 있지만 나에게 만큼은 문학이 아닌 현실이었다.

사람이 자꾸만 좋아진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그저 막걸리라도 한잔 억지로 권하고 싶어지도록 사람이 좋아진다. 그만하면 좋을 것을 시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는 왜 이렇게 아름답고 이른 새벽 내리는 빗소리는 왜 이다지도 정겨운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풀 한 포기가 자꾸만 좋아진다. 강가에 있는 메기, 꺽지는 왜 그렇게 잘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지는 만큼 안타까운 마음 더해가니 어찌 된 일인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퇴근길 출출할 때는 호떡, 쌀쌀한 날씨에는 어묵 한 꼬치씩 사먹는 단골집.
▲ 면목시장 퇴근길 출출할 때는 호떡, 쌀쌀한 날씨에는 어묵 한 꼬치씩 사먹는 단골집.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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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위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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