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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켠에 자리한 조그마한 <겸손서점>.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켠에 자리한 조그마한 <겸손서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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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도시 책방이 살아날 길이란...

부산에서 살아가며 부산 보수동으로 꾸준히 마실을 하는 분이라면, 이곳 보수동에서 슬프게 문을 닫으며 사라지는 헌책방을 알아채는 한편, 이곳 보수동에 새롭게 움을 트며 씩씩하게 태어나는 헌책방을 알아봅니다. 예전을 생각한다면 헌책방 숫자는 줄어들었으나, 그예 사라지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줄어드는 숫자만큼 늘어나지는 않으나 알뜰히 책살림을 꾸리는 곳은 어김없이 있고, 새롭게 책살림 북돋우는 곳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2010년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일곱 번째 책방골목 잔치'가 펼쳐졌습니다. 2010년 9월을 잣대로 볼 때 이곳에 깃든 책방은 모두 마흔두 곳입니다. 보수동에서 처음 '책방골목 잔치'를 열 무렵에는 모두 쉰여섯 곳이었으니 일곱 해 사이에 열네 곳이 문을 닫아 슬픈 노릇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겸손서점>과 <책의 마음>과 <글벗서점(두 번째 가게)> 세 곳이 새로 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일곱 해 사이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열기로는 올해가 처음이군요. 그렇다면 지난 일곱 해 사이에 열일곱 곳이 문을 닫고 세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하나둘 문을 닫으며 빈 가게를 <우리글방>과 <대우서점>이 물려받아 가게를 넓혔으니, 책방 숫자는 줄었지만 책방골목 살림살이는 줄지 않았습니다. 올 2010년 가을에는 보수동 한켠에 '헌책방골목 빌딩'까지 우람하게 하나 서는 한편, 시와 구에서 여러모로 책방골목 살리기를 북돋운다고 하니, 어쩌면 이제부터는 이곳 보수동에 새 헌책방이 하나둘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 책방골목 잔치를 열 무렵처럼 쉰여섯 군데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더 늘 수 있겠지요. 보수동 책방골목이 한결 북적거릴 수 있는 한편, 부산 시내 곳곳에 크고작은 헌책방이 하나둘 늘 수 있을 테고요.

헌책방은 이 나라 어디에나 있습니다.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습니다. 다만, 도시에 몰려 있고 시골에는 몹시 드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충청북도 충주시에는 시내에 한 곳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 살아가는 산골집하고 시내는 몹시 멉니다. 버스로 거의 한 시간 가까운 길이며, 시내로 오가는 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대 있어, 이 시골버스를 잡아타기 퍽 어렵습니다. 차라리 서울로 시외버스를 타고 다닐 때에 품이나 시간을 줄이면서 더 많은 책을 볼 만하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식구 살림집과 맞닿은 음성군 읍내 두 곳(음성읍과 금왕읍)에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문방구를 조금 더 크게 하는 새책방은 있으나 인문책을 골고루 살필 만한 책방은 못 됩니다. 먹고 마시는 집은 곳곳에 많아도, 읽고 삭이는 문화나눔터는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아마 어느 시나 군에 가도 비슷할 테고, 청주와 진주와 전주와 춘천과 수원과 부천쯤을 빼면 헌책방 나들이를 해 보기조차 힘들다고 느낍니다.

작은도시 가운데 헌책방이 있는 곳이 있고, 같은 서울에서든 또 시골에서든 내 살림집에서 제법 나가야 헌책방을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작은도시에서는 헌책방 살림을 잇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큰도시 사람들이라 해서 책을 더 많이 읽거나 책방마실을 더욱 즐기지 않습니다만, 어찌 되든 사람 숫자가 많습니다. 작은도시 사람들도 책을 사랑하며 책방마실을 즐기지만, 작은도시 작은책방이 살림을 꾸준하게 이을 만큼 책손이 많지는 않아요.

생각해 보면, 사람 숫자가 적더라도 얼마든지 책마을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시나 군 사람 숫자가 10만이건 5만이건 얼마든지 새책방과 헌책방이 골고루 깃들 만합니다. 5만이 아닌 1만이라 하더라도 책방은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마을사람 스스로 도시바라기를 하지 않는 가운데, 저마다 주어진 내 삶을 한결 알뜰히 아끼거나 사랑할 때에 시골마을 책방이 뿌리를 내립니다. 텔레비전을 사귀지 않고 자동차를 사랑하지 않을 때에 차츰차츰 작은도시 책방이 자리를 잡습니다.

몇 천이나 몇 만이 들어설 극장이나 경기장이 있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천 사람이나 이삼백 사람이 들어설 만한 작은 극장이나 경기장으로도 즐겁습니다. 다문 백이나 이백 사람 앉으며 영화나 연극을 즐길 자리여도 넉넉합니다. 시골학교마다 학교 앞에 책방이 한 군데씩 있으면서, 이 시골학교 교사와 학생들 누구나 책방마실을 즐기면 됩니다. 누구보다 교장과 교감 자리에 계신 분들이 책을 즐기고, 교사들 누구나 책을 즐기는 가운데, 대학입시보다 내 삶을 즐기며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시골마을 책방이 살아납니다. 온 나라가 대학입시에 휘둘리거나 목매달 때에는 시골마을뿐 아니라 큰도시 책방마저 아슬아슬합니다. 온 나라가 더 빠른 차와 기차와 버스와 비행기에 얽매일 때에는 큰도시 큰책방조차 흔들립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더 빠른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로 오가야만 하지 않습니다. 30분 더디 가면 어떻습니까. 한두 시간 천천히 오가면 어떠한가요. 내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리면서, 내 삶을 넉넉히 추스를 수 있어야 바야흐로 책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책을 읽어야 애써 읽은 책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내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책읽기가 되어야 꾸준히 책방마실을 합니다. 꾸준히 책방마실을 하는 가운데 내 넋을 더욱 아름다이 여미고, 내 넋을 더욱 아름다이 여미는 동안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경제와 과학과 철학과 문학 모두 슬기로우며 참답게 북돋울 기운을 얻습니다.

작은 책방에 깃든 작은 걸상.
 작은 책방에 깃든 작은 걸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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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은 헌책방 <겸손서점>

지난 한 해 사이에 보수동 책방골목에 새롭게 움을 튼 세 군데 헌책방은 모두 조그맣습니다. 너덧 평쯤 될까 싶은 조그마한 곳인데, 책방으로서는 너덧 평으로도 넉넉합니다. 이 조그마한 너덧 평 헌책방 한 곳으로도 시골로 치면 채 1만이 안 되는 작은 마을 사람들하고 오순도순 책삶을 나눌 만합니다. 우리한테는 더 큰 책방이나 더 많은 책이 있어야만 하지는 않아요. 알맞춤한 책방과 알맞춤한 책이면 흐뭇합니다.

조그마한 헌책방 <겸손서점>에, 책방 이름 그대로 다소곳하게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며 살며시 문턱을 넘습니다. 조그마한 책방인 만큼 책꽂이는 무척 야무지게 짜 놓습니다. 조그마한 책방일수록 아무 책이나 되는 대로 갖출 수 없으니, 책시렁에 꽂힌 책들은 한결 알뜰하다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큰 책방 책시렁은 아무 책이나 다 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큰 책방 책시렁은 '한두 해쯤 묵어도 괜찮을 책'을 퍽 쏠쏠히 꽂을 수 있어요. 한두 해 아닌 대여섯 해를 묵이더라도 '언젠가 좋은 책손이 알아볼 만한 책'을 제법 넉넉히 갖출 수 있어요. 작은 책방은 '사람들이 한결 자주 찾는 책'을 갖추려고 애쓰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잘 팔릴 만한 책으로 갖춘다고 할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어느 헌책방이든 책손이 좋아할 만한 책을 잘 갖추려고 힘쓰지만, 책방 일꾼이 사랑할 만하고 다룰 만한 책을 차곡차곡 갖춥니다.

어린이책 <수지 모건스턴/이정임 옮김-중학교 1학년>(바람의아이들,2004)을 먼저 고릅니다. 글쓴이 이름이 낯익다고 느끼면서 이이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고를까 말까 망설이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책이름처럼 '중학교 1학년'을 맞이하는 아이들 마음앓이나 마음자리를 제대로 건드린다면 훌륭한 청소년문학이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영어는 독어나 러시아어 같은 괴물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나 바보들만 배우는 쉬운 말로 제쳐 놓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  (9쪽)

<중학교 1학년>은 서양사람이 쓴 문학이고, 서양 아이들이 겪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우리 나라 아이들 삶을 돌아본다면 '이 문학책에 나오는 서양 아이가 겪는 일쯤이야 참말 우습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한국땅 푸름이들은 <중학교 1학년>에 나오는 아이는 도무지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갖가지 굴레를 뒤집어쓴 채 죽어나니까요. 이름은 푸름이(청소년)이지만 조금도 푸르지 못한 나날을 보내야 하니까요.

다른 여러 가지는 둘째치고, 책 하나만 생각해 보셔요. 이 나라에 쏟아지는 어린이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린이책도 많지만 만화책도 많아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푸름이라는 문턱에 들어설 무렵에는 아이들 눈높이를 살뜰히 헤아리는 좋은 책이 왕창 줄어듭니다. 게다가 푸름이 문턱에 들어서면, 집안 어른들이 책을 사 주지 않아요. 책을 사 주지 않을 뿐더러 푸름이들이 책을 홀가분하게 읽도록 놓아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그럭저럭 여느 책, 그러니까 교과서하고는 좀 동떨어지고 시험성적하고는 멀리 떨어진 책을 읽히기도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 될 때부터는 세계명작이라 일컫는 문학책조차 읽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시험 문제로 나올 만한 몇 가지 문학책만 억지로 읽힙니다. <삼대>라든지 <감자>라든지 <날개>라든지 <B사감과 러브레터> 같은 작품이 현대소설 가운데 한국명작이라고 손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푸름이한테 이 문학작품 빼고는 안 읽힌다면, 무엇이 명작이고 무엇이 문학이며 무엇이 책이 되려나요. 요사이는 웬만한 초등학생이면 권정생 할배가 쓴 <몽실 언니>쯤은 추천도서로 읽는다지만, 권정생 할배가 쓴 작품은 초등학생만 읽을 작품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훌륭하고, 대학생이나 어른이 읽어도 훌륭합니다. <슬픈 나막신> 같은 작품은 어린이문학이라기보다 청소년문학이라 해야 어울리고,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라든지 <우리들의 하느님>은 청소년문학이면서 어른문학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문턱에 들어선 푸름이한테는 <우리들의 하느님>처럼 훌륭한 산문문학을 읽힐 만한데, <우리들의 하느님>이건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임길택 씀)이건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씀)이건 읽히지 못해요.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을 때에 좋은 책 하나 만납니다.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을 때에 좋은 책 하나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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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중학교 1학년>은 서양나라에서는 무척 뜻있는 문학작품이 되겠다 싶지만, 한국땅에서는 적잖이 어설프거나 어울리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첫머리 몇 대목은 눈에 뜨였으나, 뒤로 갈수록 어영부영한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김수미-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중앙M&B,2003)를 만납니다. 책시렁 한켠에 얌전히 꽂힌 이 책을 보면서, 속으로 김수미 님 또다른 산문책을 만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김수미 님 산문책은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를 처음 만난 뒤 하나하나 찾아내어 읽습니다. 김수미 님 산문책을 모조리 찾아 읽으며 느끼는데, 1987년에 처음 낸 산문책이 가장 훌륭하구나 싶지만, 잇달아 나온 다른 산문책도 참 좋아요. 당신 삶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당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매무새가 좋습니다. 입발린 손뼉치기가 없습니다. 어설픈 핑계나 말꼬리 잡기라든지 말돌리기 또한 없어요. 힘든 나날을 보내며 쓴 글에는 힘든 내음이 물씬 묻어납니다. 힘들면서도 기쁜 나날을 보낼 때에는 힘든 가운데 맛보는 기쁨이 곱게 스며듭니다.

.. 한여름밤에 너무 더워 잠 못 이룰 때, "아부지, 이성당 아이스께끼 먹고 싶어유." 하면 아부지는 그 밤에 시내까지 나가 아이스케키를 사 오셨고 아이스케키가 녹을까 봐 부리나케 뛰어오시느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숨을 헐떡이셨다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이담에 크면 큰 인물 될 거라는 아버지의 그 소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중고등학교는 서울서 다녀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부지를 졸라대기 몇 달, 결국 아부지는 우리 집 양식거리가 나올 만큼만 밭을 남기고 나머지 밭은 다 팔아버리셨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큰언니 시집갈 때 판다던 송아지도 파셨다 … 겨울방학이 되어 내 휘하에 있던 똘마니들을 데리고 째보 선창가를 거니는데 큰 군함 같은 배가 부둣가로 밧줄을 엮어 만든 사다리를 던지고 사람들은 그 사다리를 이용해 비료 포대를 메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곡예하듯 내려오고 있어 자세히 봤더니 아부지였다. 딸년 서울로 유학 보내느라 밭뙈기 다 팔고 칼바람 부는 부두에서 비료 포대를 나르고 계셨다. 어린 마음에도 기가 막혔다. 농사 지으면서 똥지게 지시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괜찮았었는데, 아부지는 그해 겨울 폐렴으로 그만 쉰다섯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  (132, 133, 139쪽)

딸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저 또한 김수미 님 아버님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 김수미 님 아버님처럼 더 멋지지는 못하겠지요. 퍽 어수룩하고 꽤나 어설플 텐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이가 얼음과자를 먹고 싶다는데 이 얼음과자 먹고 싶다는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밥은 안 먹고 얼음과자를 찾을 때에는 속이 타고 씁쓸하지만, 읍내 마실을 할 적에는 아이가 웃음꽃을 피우도록 얼음과자를 사 줍니다. 얼음과자를 손에 들리고 품에 꼬옥 안은 채 장마당을 걷습니다. 벌이가 없는 살림이지만, 아이가 바란다면 이것저것 장만해서 즐기거나 배우라 할 테지요. 김수미 님 아버님으로서는 팔 밭뙈기라도 있지, 저한테는 팔아치울 땅뙈기 하나 없으니까 이렇게까지는 못할 텐데,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누구나 이처럼 살아가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영자-열여덟 산골 소녀의 꽃이 피는 작은 나라>(신풍,2000)를 구경합니다. 예전에 한 번 사서 읽은 책이지만 다시금 손이 갑니다. 이 산문책은 출판사에서 이영자 님 글을 짜고 깁고 뜯고 했다는데, 바탕글은 이영자 님 삶과 넋을 고이 담았으리라 생각하며 다시 읽습니다. 출판사에서 굳이 이모저모 뜯어고칠 까닭 없이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씨 그대로 엮었으면 참으로 좋은 문학책으로 자리매길 수 있지 않았으랴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요, 출판사 일꾼이 이영자 님 글을 함부로 뭇칼질을 하지 않는 가운데, 이 책을 팔며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돌려주었다면, 이영자 님 삶과 문학은 아주 달라졌으리라 봅니다.

.. 책에서는 누구나 국화에게서 우아한 품위를 느낀다고들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 내가 대하는 국화가 야생 국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자그마한 노란 꽃봉오리가 그렇게 앙증맞고 귀여울 수가 없다 ..  (29쪽)

조그마한 책방에 알뜰히 꽂힌 책을 차근차근 둘러봅니다.
 조그마한 책방에 알뜰히 꽂힌 책을 차근차근 둘러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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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은 책 읽는 마음

책 세 권을 고른 다음 책값을 셈합니다. 책값을 셈하며 책방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여쭙니다. "사진 찍으려고 억지로 책을 사지 않으셨나요?" 하고 물으십니다. "읽을 만한 책이니 샀어요. 사진이야 찍어도 좋고 안 찍어도 좋은데요."

말씀을 듣자 하니, 보수동 헌책방골목에는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이 몹시 많답니다. 나날이 헌책방골목이 '관광지'로 알려지고 '부산 관광지도'에도 어엿이 실리는 한편, 시와 구에서 힘써 꾸미려 하면서, 사진 찍는다는 이들이 아주 많이 드나든다는군요. 우리 식구가 부산마실을 와서 닷새 남짓 머무는 동안 헌책방골목을 오가는 사진쟁이를 무척 많이 마주쳤습니다. 책방에 책 보러 온 손님보다 책방골목에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이 더 많다고까지 느낄 때마저 있었습니다. 어깨에 사진기를 걸친 젊은이치고 책을 사들여 다른 한손에 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큼직한 사진기에다가 세발이를 짊어진 '사진작가'로 보이는 이들은 아예 책을 살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책을 사거나 읽는 사람 곁에 붙어서 사진을 찍어대느라 바쁘더군요. 이렇게 사진기를 들이밀면 책손은 쑥스럽거나 멋쩍어 책을 내려놓고 다른 데로 가기 일쑤인데, 이렇게 하면서까지 무슨 사진을 왜 찍어야 하는지 아리송했습니다. 책방골목이라 한다면 책을 먼저 봐야지,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하는가요. 책방골목에 사진만 찍으러 다니고, 책을 읽거나 장만하지 않는다면 무슨 책방골목이 되나요.

그러고 보니, 책방골목 잔치에 발맞추어 부산에서 사진 찍는다는 몇몇 분들이 '보수동 책방골목 사진잔치'를 한켠에서 마련해 놓았습니다. 지난겨울에 책방골목에서 찍은 사진을 줄을 드리워 빨래집게로 꽂아 놓았는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사진 찍는 사람이 책방골목에서 책을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사진만 찍었다'는 느낌입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책손일 때에 찍는 사진이랑 사진쟁이 스스로 찍새이기만 할 때에 찍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책으로 스며드는 사진쟁이가 담는 '책방골목 사진'을 선보이는 '부산 사진쟁이'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는지 몰라요.

사진 몇 장 찍고 <겸손서점> 사장님한테 인사를 드립니다. 책방을 나서며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작은 이야기 담은 작은 책이 좋고, 작은 자리에 조촐히 일구는 작은 책방이 좋습니다. 작은 책방을 알뜰히 여미는 작은 일꾼이 반갑고, 작은 일꾼이 베풀어 주는 작은 책쉼터가 고맙습니다. 작은 책을 알맞게 셈하여 장만한 다음, 이 작은 책을 제 작은 가슴과 눈길로 조촐히 감싸면서 받아들이기를 좋아합니다.

책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을 기다리는 헌책방입니다.
 책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을 기다리는 헌책방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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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나라가 더 큰 나라가 아닌 더 작은 나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더 큰 도시가 아니라 더 작은 도시로 뿌리내리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더 큰 집이 아닌 더 작은 집을 사랑하고, 더 빠른 차가 아닌 더 느리면서 작은 차를 사랑하다가는 더 작고 더 느린 자전거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려면 자전거조차 탈 수 없어요. 나중에는 자전거까지 집에 곱게 모셔 놓고는 두 다리로 사뿐사뿐 작은 책방골목에 조용히 마실을 나와 작은 손으로 작은 지갑을 열어 작은 책을 장만한 다음, 작은 넋을 작은 믿음으로 보듬는 작은 꿈을 알뜰히 건사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부산 보수동 <겸손서점(겸손을 나누는 서점)> / 053) 248-5811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태그:#헌책방, #겸손서점,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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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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