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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는 시내 중심가 건물의 3층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는 시내 중심가 건물의 3층에 있다. ⓒ 장호철

'인구 16만의 소도시 안동에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없다'고 하면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소도시 안동에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한테서 '정말?' 또는 '설마?' 같은 단말마성(?)의 경악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럴 만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그 말 많던 위원장은 최근 해임되었다. 그는 '좌파'들의 수중에 떨어진 영화판을 구하기 위해 권력이 파견한 '백기사'였지만 단 14개월 만에 '흑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던 것이다)에서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선정된 영화관은 전국에서 겨우 10개 영화관(2009년)뿐이었던 것이다.

작은 도시 안동에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선정은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를 목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는 사업이다. 예술영화는 영진위의 '예술영화인정 업무'를 통해 선정되는 것인데 영진위는 작품의 영화 미학적 가치, 창의성 등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돈 안되는 영화'들은 일반 상영관의 스크린을 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워낭소리>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복합상영관에 걸리기도 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 는 안동시 중심가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 는 안동시 중심가에 있다. ⓒ 장호철
이에 영진위가 '상영관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통해 예술영화의 상영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이 바로 예술영화 전용관 선정 지원 사업이다. 2009년 10개관에 이어 2010년에는 모두 30여 상영관이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선정되어 보조금을 지원 받고 있다.

평소에 영화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내게도 더러는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영화는 안동의 극장가에 걸리지 않는다. 부득이 그걸 보기 위해서는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대구광역시로 나들이를 나서야 한다. 나는 대구 중심가의 예술영화 전용관 동성아트홀에서 <워낭소리>와 <낮술>을 보았다.

2009년 안동의 한 극장이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일찌감치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이내 잊어 버렸고 안동의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를 처음 만난 게 지난주다. 다큐영화 <서해로 흐른다> 공동체 상영에서였다.

그날 퇴근 전 나는 동료들에게 중앙씨네마의 위치를 물었고 동료 여교사가 상세하게 약도를 그려서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동료에게 벗과 선·후배들이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에서 읽은 '중앙씨네마'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에다 '정말 좋은 영화관'이라고 칭찬한 이야기였다.

"이안 감독의 작품 <테이킹 우드스탁>이 중앙씨네마에 상영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해보니 어제 금요일까지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영화관에서 언제 보려 했냐고 묻길래 오늘이나 내일 보려 했다고 했더니 내일 11시 20분에 틀어주겠다고 합니다."
-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중앙씨네마' 관련 글

상영시간도, 상영작도 관객과 상황에 맞추는 영화관

비슷한 경험을 동료도 했던 모양이다. 그이가 해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친구들하고 모두 넷이서 중앙씨네마에 갔지요. 그런데 우리가 볼 영화는 다음 회에 상영된다는 거예요. '어쩌나' 했더니 여사장님이 지금 틀어줄 테니 보래요. 얼씨구나 하고 영화를 보려는데 원래 상영될 예정이었던 영화를 보려는 연인 한 쌍이 나타난 거예요.

어떡해요? 그러나 사장님이 그 연인더러 먼저 이 영활 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요. 이거 먼저 보고 나면 뒤에 틀어주겠다면서…. 결국 우린 여섯 명이 영화를 같이 봤죠."

상영계획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관객들의 상황에 따라 상영시간을 변경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도 교체할 수 있는 이 전용관의 '여유'를 나는 매우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중앙씨네마에서 상영했거나 예정인 영화들
중앙씨네마에서 상영했거나 예정인 영화들 ⓒ 장호철
'중앙 씨네마'는 안동시 중심가인 삼산동의 한 시중은행 앞쪽에 있다. 그 곳은 신한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안동사람들이 '조흥은행'이란 옛 이름을 부르는, 오래된 일본식 건물 앞의 '차 없는 거리'다. 손바닥만한 공간이지만, 거기서 2008년 촛불시위를 비롯한 각종 집회나 공연 등이 단골로 베풀어졌다.

이 은행 맞은편의 오른편 상가 건물, 한 피자전문점이 있는 빌딩의 3층에 중앙씨네마가 있다. 원래 '중앙극장'이라는 이름의 일반 상영관이었는데 2009년 4월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되었다.

지난 20일 토요일 오후, 작정하고 중앙씨네마로 가면서 나는 제법 복잡한 셈을 하고 있었다. 우선 김영희 대표와 얘기를 좀 나눈 다음, 영화가 끝나면 나오는 관객의 이야기도 들어 본다. 필요하면 영화를 한 편쯤 봐도 좋겠다….

중앙씨네마의 입구가 원래부터 그런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가 흔히 만난 영화관의 모습 따위는 없다. 이를테면 관람료나 상영시간표 따위를 써붙인, 표를 파는 반달형 창구를 낸 유리 칸막이와 역의 개찰구를 닮은 입구 같은 것 말이다.

대신 마치 다방이나 식당의 계산대처럼 생긴 공간에 앉아 있던 김영희(56) 대표가 나오면서 반색을 했다. 그 앞은 가장자리에 몇 개의 의자를 놓은, 말하자면 대기실 같은 공간이었고, 영화관 입구는 그 안쪽 오른편이었다. 상황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어긋나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주말인데도 텅 빈 영화관... 사장이 표 팔고, 영화 틀고, 청소 하고

대기실은 물론이고, 영화관 쪽도 조용했다. 영화는 돌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관객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내가 이 주말 오후에 이 영화관에 들른 최초의 방문객이라는 사실을 뜻했다. 나는 김영희 대표에게 미소로 인사하는 걸로 무안한 느낌을 감추었다.

"어째…, 조용합니다."
"예, 그렇네요. 아직 조용합니다."
"주말인데…."
"글쎄요. 원래 오전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요. 상업영화를 틀 때에는 주말에 손님이 몰리곤 했는데 예술영화는 평일과 주말 구분도 없고, 대중할 수가 없네요."

카운터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대표가 이 극장을 운영한 지는 꼭 10년째다. 원래 이 극장은 시장 안에 있던 진성극장과 함께 시누이가 운영하던 것이었다. 진성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그나마 시설이 괜찮은 이 극장은 살리자면서 김 대표가 운영을 맡았다고 한다.

 중앙씨네마에는 매표구도 매표원도 없다. 김영희 대표가 이 자리에서 관람료를 받을 뿐이다.
중앙씨네마에는 매표구도 매표원도 없다. 김영희 대표가 이 자리에서 관람료를 받을 뿐이다. ⓒ 장호철

일반 상영관 중앙극장이 2009년 4월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로 새롭게 태어난 것은 운영난 때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 안동시 옥동 부근에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상업·유흥지역이 대거 그리로 옮겨갔다. 구시가지 중심가가 예전의 명성을 잃은 데다 2005년, 신시가지에 복합상영관 ㅍ시네마가 문을 열면서 중앙극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에 용상동 구시가지 쪽에 ㄹ시네마가 다시 문을 열었으니 이 조그만 소도시에 멀티플렉스가 벌써 두 개다. 그러나 상업영화관은 애당초 중앙씨네마의 경쟁상대가 아니니 그건 다행이다. 적자를 보는 건 아니냐니까, 김 대표는 보조금 덕분에 적자는 면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해놓은 시설이 아까우니까 수익은 보잘 것 없지만 유지해 나간단다.

그러고 보니 중앙씨네마는 김영희 대표 1인 기업이다. 그이 혼자서 표를 팔고 영화를 틀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다행히 영화는 디브이디캠으로 상영하므로 전문 기술 없이도 가능하다. 가끔 필름으로 들어오는 영화가 있으면 옛 영사기사의 도움을 받아서 상영한다고 했다.

종종 찾는 단골들 "손님 없어도 문 닫으면 안 돼요"

10여 년 영화관을 운영해 왔지만 김 대표가 영화에 대한 소양이 넓다고 보긴 어려울 듯하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이는 '영화'보다는 '영화관 운영'으로 살아온 이니 말이다. 그이에게 중앙씨네마는 생업의 수단이고, 직장이다. 예술영화에 대한 각별한 철학이나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자로서 '남다른 사명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에서 그이가 운영하는 중앙씨네마가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단골들은 좀 생겼나요?"
"예, 주로 젊은 사람들이에요. 대학생들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영화 보러 갈 때는 보통 친구나 애인과 같이 가잖아요? 그런데 예술영화라서 그런지 혼자 오거나 한둘이 와서 영화를 보고 가데요. 가면서 꼭 그래요. 손님이 없어도 문 닫으면 안 된다고…, 그런 말을 들으며 손님이 없어도 용기를 내곤 하지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 (주)보리픽쳐스
그간 가장 손님이 많이 든 영화가 무어냐니까, 기독교 선교영화 <소명>이라고 한다. 교회의 권유로 기독인들이 다수 다녀간 것이다. 나는 <워낭소리>를 볼 때 빼곡히 차 있던 대구 동성아트홀의 객석 모습이 자꾸 겹쳐서 머리를 흔들었다. 인구 250만이 넘는 국내 제 3의 도시와 16만의 소도시 안동을 견주는 것은 공정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나는 <씨네21>에서 본 기사를 떠올리며 임순례 감독의 새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언제쯤 상영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이는 아직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학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에 맞추어 이 영화를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예술영화 한 편을 보면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학년말에 피자나 찜닭 따위를 함께 먹으며 '쫑파티'를 하는 거에 비기면 '문화교실'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건 썩 모양이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문화교실'이라니까 새삼 마음이 두근거린다. 1960년대 막바지였다. 시골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의 중학교에 진학했더니 가끔씩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때 시내 중심가의 개봉관에서, 그것도 파격적인 가격으로 보았던 영화들의 감격과 여운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 반 학급 마무리를 '예술영화'와 함께?

그러나 시대도 바뀌고 세상도 변했다. 요즘 학교에 '문화교실' 따위는 없다. 제도적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 1960년대식 문화 도우미는 이제 옛말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화를 누린다. 영화 따위를 모른다고 해서 대학 진학의 결격사유가 되는 것도 아니니 학교에서 굳이 그걸 주선할 일도 없는 것이다.

 중앙씨네마 영화관 내부. 144석은 늘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중앙씨네마 영화관 내부. 144석은 늘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 장호철

나는 김영희 대표에게 그때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상영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또 관람료도 할인 받기로 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은 좀 지루해 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언제 예술영화를 감상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텅 빈 객석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 나는 김 대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토요일 오후, 빈 극장을 나서기가 공연히 미안했다. 내가 거기 머문 한 시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둠살이 내리면 연인들 몇 쌍이라도 이 쓸쓸한 영화관을 찾아올까.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아직까지 김 대표의 전화연락은 없다. 여의치 않은 것일까. 만약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어렵다면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를 슬슬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이니 올해의 마지막 달은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겠다.


#예술영화 전용관#안동 중앙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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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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