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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 당시 충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가 뒤집혀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 당시 충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가 뒤집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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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국에 전쟁이 나는 겁니까?"

연구실을 같이 쓰는 일본인 연구자가 물었다. 평화박물관 연구를 위해 지난 8월부터 일본 교토에 머물고 있는데, 한국인에 그것도 평화연구 한다고 와 있는 내게 당연한 질문이었다.

"저도 어제 인터넷으로밖에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확대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연평도 사태를 두고 한국 사회 내에서는 북한 포격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음을 분통해하며, 다음에는 전투기 폭격 등으로 '충분히'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이 글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북한 포격에 깔린 의도 분석이나 정부에게 특정 대응을 촉구하는 글은 아니다. 그럴 실력도 못 되지만, 조금 다른 위치에서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연평도 사태가 일본에서 논의되는 모습 속에서 느낀 점들을 간략히 전하고자 한다.

NLL vs.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일본에선 '분쟁지역'으로 보는 서해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의 해안포 포격으로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24일 연평부대 K9 자주포 바로 옆에 포격으로 생긴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난 23일 오후 북한군의 해안포 포격으로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24일 연평부대 K9 자주포 바로 옆에 포격으로 생긴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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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부터의 포격이 있었던 23일, 일본 NHK 역시 연평도 사태를 특집으로 비중있게 다뤘다. 북한을 자신들의 실질적인 '적'이라 생각하는 일본사회이기에 당연한 편성이겠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고민할 지점들이 상당했다.

뉴스 제목부터 "조선반도 남북포격전"이었다. 이 제목은 간과하기 쉬운, 우리가 쏘았던 K-9 자주포 80발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북한의 포격 이후 남한이 대응 포격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남한의 NLL(북방한계선) 부근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이라고, 즉 너희가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결코 민간인과 군인이 살고 있는 영토에 포격을 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순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응해서 쏜 80발의 포탄 역시 북한의 이름 모를 누군가를 죽였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더욱 강력한 대응을 이야기하지만, 그 대응으로 죽어갈 사람들은 주판알을 튕기며 포격을 명령한 북한 권력의 수뇌부가 아니다. 자기 손으로 연평도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평범한 젊은이들이 죽어갈 것이다.

이후 NHK가 북한의 포격 의도로 분석한 것은 다음과 같다.

서해 지역 군사 경계선의 오랜 갈등, 한국 군사 훈련에 대한 반격, 최근 공개한 핵시설과 관련해서 주위를 더욱 끌고자 하는 행동, 지도부체제 변화를 공고화하기 위한 내부 결속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정일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겐세이(けん制, 견제)".

이 중에서 한국 언론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NHK는 NLL이 1953년 유엔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어졌음을 분명히 하고, 또한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역시 북한에 의한 일방적인 주장임을 이야기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즉, 이미 일본에서는 서해지역이 '분쟁지역'이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NLL은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조국의 상징'처럼 다뤄지지만 역사적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NLL이란 명칭부터가 북방한계선이다. 즉,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남한에게 이 선 위로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로 그어놓은 것이다. 1973년부터 북한은 이 NLL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이 지역은 마르지 않는 분쟁의 샘이 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남북한 정권 간의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분쟁을 더 강력한 무기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잃을 것이 너무 많은 한국의 선택이 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서해지역을 평화협력특별지대로 선언한 것은 이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이후 10·4 남북정상선언 자체가 부정되면서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사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지역의 화력을 강력하게 보강하라는 주문을 했다지만,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 애먼 군인들만 죽어나갈 것이다. 국민을 살리려면 정권이 결단을 해야 한다.

'조선 학교 무상화' 검토 백지화... 연평도 사태 이용하는 일본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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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 협력을 주장했다지만,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안보 이슈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공포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정치가들은 그 공포를 통해 모든 이슈를 잠재우기도 한다. 일본 우파 정치세력들이 북한이라는 외부적 '적'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서거 직전 북한은 자신의 군사 도발이 일본 우익을 도와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의 3대 신문사인 <아사히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요미우리신문>은 포격 다음날인 24일 조간 1면 머리기사로 이번 연평도 사태를 다루고, 불타는 연평도 사진을 배치했다. 이 기사와 사진을 봤던 일본인들은 어떤 공포를 느꼈을까? 물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주가 역시 등락은 있었지만 소폭 변동으로 마무리되었고, 한국으로 떠나는 여행객의 숫자 역시 평상시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보도들은 실제 사건 직후 일본 사회 기층의 공포는 그리 크지는 않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제도권 사회는 이 문제를 점점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골몰하고 있다. 언론은 한국에서 나오는 영상들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전문가들은 포격에 대한 군사적 분석을 내놓으며 이 포격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적' 만들기의 대표적인 언사이다. 적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포장할 수록 그 적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결정들이 용인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왔는데 결국의 폭탄비가 내렸다"는 강화도의 한 노인의 인터뷰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대북강경노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매우 즉각적이면서도 치졸했는데, 센고쿠 요시코(仙谷氏) 관방장관은 24일 오전 현재의 '사태' 속에서 재일 조선인이 다니는 조선 학교에 대한 무상화 검토를 전면 중지하고, 당분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고교 무상화 교육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조선 학교는 그 대상에서 제외해 큰 사회적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그 논란 속에서 결국 지난 10월 20일 집권 민주당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고교무상화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전면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북한 수뇌부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과 일본에서 정체성을 힘들게 지켜가며 조선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을까만은, 일본 정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와 '적'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해질수록 우리 내부의 차이는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권력은 자신이 원하던 목표들을 손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후 일본의 재군비 강화와 자위대의 해외파병 관련 법안 개정과 같은 논의가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MB 정권 최대의 시험대... 최악의 선택 하지는 않기를

북한 '문제'는 사실 그 누구도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은 치밀하고 계획적인 정권이 아니다. 벼랑끝 전술로 한방을 노리는 도박사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밑천이라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 '도박'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초강대국 미국조차 정권을 불문하고 대북정책의 실패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역시 총리실에 특별상황실까지 설치했지만 미국의 눈치만 볼 뿐이다. 문정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사실상 한국 정부는 MB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대북 강력응징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코 사람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이 문제가 이명박 정권 최대의 정치적 시험대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천안함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만약 이 문제를 정권이 원만하게 해결한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의 정치적 위상은 확고해 질 것이다. G20과 같은 1박 2일 정상회담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6자회담 개최와 종전협정, 평화협정까지 나아간다면 이는 정권 최대의 업적이 될 것이다.

이는 단지 국내 정치뿐만이 아니다. 일본을 비롯한 미국, 중국, 러시아 열강들은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손익계산을 따지고 있다. 일본의 재군국화는 중국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질 것이고, 동아시아는 21세기 또 다른 냉전의 한복판이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우리의 긴장과 죽음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이득이 된다.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의 다른 한 쪽 손에는 군사적 타격이라는 카드가 들려 있다. 꽤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의사를 보이기도 한다. 누가 이 선택을 바라는가? 그들은 그것이 만들 죽음에 책임질 수 있는가? 정권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연평도, #일본, #북한, #포격, #군사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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