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음악'을 처음 '연주'했을 때는 언제인가. 아마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사각의 방에서 처음 눌러봤던 조그만 음악학원의 그 검정색피아노 건반일 수도 있겠고, 혹은 주말이면 추리닝 차림으로 동네를 건들대던 옆집 고등학생 형이 둘러메고 다니던 암갈색의 통기타 일 수도 있을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시던 사업이 좀 잘 풀리던 아버지가 어느 날 뜬금없이 가져오신 바이올린이나,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안 계실 때 초등학교 동창들과 장난치며 동요를 연주하던 커다란 풍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맨 처음 자기 손으로 악보를 보며 연주했던 악기는 다름 아닌 '리코더'가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나는 예전 그 초등학교 시절, 조그만 입술로 회색 음악 교과서를 앞에 둔 채 낑낑대며 연주했던 아이보리색 야마하 리코더를 지금도 기억한다. 당연하게도 그 리코더는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조자 나지 않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뭉굴뭉굴한 소리들과 지금도 생각나는 꽤 쉬웠던 리코더 운지법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덕분에 리코더는 우리에게 '처음'을 알리는 악기로 자리 잡았다. 그 '처음'이라는 놈은 늘 그렇게 서툴고, 쑥스럽고, 또 가볍다. 그래서 여타의 악기들처럼 소중하게 다뤄지기보다는, 친구들과 벌이는 칼싸움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고,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다음날 등교용 준비물가방에 박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부서지거나 잃어버려도 또 하나 사면되는 소모품같이 작은 존재. 그렇게 그 '처음'을 대변하는 그 악기는, 우리에게 추억의 소중함만큼이나 가벼운 그 무엇이 되어버린 감도 적지 않다.
리코더리스트 '권민석'을 만나다
그래서 '리코더리스트' 권민석은 생소하다. 그가 다루는 악기가 '리코더'라는 것이 우리의 고개를 한번쯤 갸웃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이론전공을 한 청년이, 굳이 리코더 연주자가 되기 위해 유학까지 가서 결국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 대상까지 받고 돌아왔다니, 더욱 의아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그는 최소한 이 '대한민국' 안에선 주목받는 연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다.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래서 국내에서 가장 훌륭한 소리를 뽑아낸다고 생각하는 <오디오 가이> 레이블을 통해,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머물고 있는 리코더리스트 '권민석'을 이메일로 만나봤다.
- 죄송하지만 너무나 지겨운 질문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예상하실 테지만 역시나 이 질문입니다. 왜 하필 '리코더' 전공이신가요?"초등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My Grandfather's Clock)'라는 곡을 친구와 2중주로 연주해 교내 리코더 대회에서 2등을 했습니다. 그때는 세상에 이렇게 쉬운 악기는 없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어머니께서 사주신 프란스 브뤼헨(Frans Brüggen) 음반을 들어본 후에는,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이 악기가 이렇게나 훌륭한 소리를 낼 수 있구나!'하는 일종의 감탄으로 바뀌었죠. 아마 그때부터 리코더를 특별하게 생각했고 다른 어떤 악기들보다 더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 국내에서 가로피리인 '플루트'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세로피리인 '리코더'하면 갸웃거리죠. 좀 억울하지는 않으신지.
"하하, 아니오. 아직 국내는 모든 어린이들이 동등하게 플루트, 바이올린, 피아노와 같은 고가의 악기를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국내음악교육에 제작 단가가 낮은 리코더가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음… 리코더가 교육용 악기로 보급되어서 많은 분들이 전문적인 리코더 연주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연주하는 악기가 어찌 보면 좋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외려 기쁘죠."
- 음대 작곡가 출신으로 리코더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셨다는 이력은 상당히 독특한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리코더라는 악기에 대해 애정을 갖고 계속 공부해 왔지만, 사실 저는 좋은 리코더연주자가 되기 이전에 우선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적을 두었던 작곡이론전공과는 '음악학'을 공부하던 곳인데요. 그곳은 '과연 음악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던 제게 좋은 공부가 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음악학 전반 외에도, 당시 부전공으로 오주희 선생님께 하프시코드를 배울 기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 지금 리코더를 연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프란스 브뤼헨이 교수로 재임했던 헤이그 왕립음악원은 사실 제가 꼭 공부하고 싶었던 학교였고, 악기 연주는 나이가 차서 손이 굳으면 힘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바로 헤이그로 유학을 떠나게 됐죠. 결심하고 계획했던 일이라 딱히 망설임은 없었던 것 같아요."
- 국내에서 리코더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알고 있는데요. 유학을 결심한 이유 가운데 그러한 국내 사정도 컸는지요."우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은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훌륭한 교수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제가 음악원 예비학교 학생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는데요. 당시 가르침을 받은 조진희, 김수진 선생님도 이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계시기도 하죠.
이런 국내사정보다는 제가 주로 연주하는 바로크 레퍼토리가 16~18세기에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음악 활동이다 보니, 본거지인 유럽에서 더 공부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죠. 환경 때문이라기보다는 저의 음악적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리코더, 그리고 '음악'
- 국내에는 정격연주나 클래식 전반에 사용되는 리코더가 상당히 생소합니다. 반대로 해외에서 보는 리코더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어땠나요?"해외에서도 역시 교육용 악기로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리코더 전문연주가들이나 교육시설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석사과정으로 공부하고 있는 헤이그 왕립음악원에만 해도 리코더 교수님이 네 분이나 계시고 학생들도 스무 명 가량이나 되거든요."
- 리코더는 악기가 가진 긴 역사만큼, 그 돌파구도 아놀드 돌메치 이후 활발히 일어났는데요. 앞으로 리코더는 어떻게 될까요?"음… 일단 문화 현상에서 Progress(진전)는 Development(발전)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옛날 악기'는 '발전이 덜 된 악기'이며, 더 좋은 악기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하지만 20세기 리코더의 재발견은 바로크 시대에 리코더를 위해 작곡된 곡을 현대식으로 개량된 뵘(Boehm)식 플루트가 아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오리지널 리코더로 다시 연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살린 연주의 멋을 음악가들과 음악 애호가들이 알아본 거죠.
이렇듯이, '오래된 음악'이란 개량될 필요가 있는 음악이라거나 혹은 불완전 음악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 멋을 최대한 다시 살리려는 노력이 계속 되는 한 리코더는 18세기 때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리코더는 지나온 역사만큼 지나갈 역사를 만들어가겠죠."
- 콩쿠르 결선에서 영국의 록 그룹인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음악을 연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특별히 라디오헤드의 팬이라서는 아니고요. 하하. 우선 연주자의 의무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처럼 가치 있고 훌륭한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작품이 램브란트나 클림트, 혹은 피카소의 작품일 수도 있고 워홀이나 무라카미 다카시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좋은 음악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저도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는 구성적으로 잘 짜여 있으면서도, 특히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는 곡이었고, 무엇보다도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 중 하나여서 콩쿠르에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클래식 음악 외에도 재즈나 록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에요. 뭐, 찰스 로이드(Charles Llyod), 에반 파커(Evan Parker),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비틀즈(The Beatles), 산울림(김창완 밴드), 밥 딜런(Bob Dylan), 유재하를 특히 좋아해요. 아 참, 요즘 재미있게 들은 밴드는 '밤섬 해적단'입니다. 여러 의미로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권민석과 <Cncordi Musici>(콩코르디 무지치)
- 음반 타이틀이 <콩코르디 무지치> 인데요. '바로크'음악입니다. 어찌 보면 '리코더'의 '근본'을 찾아보는 느낌인데요?"네. 맞아요. 사실 바로크 시대에 '리코더'라는 악기는 가장 인기가 많은 악기 중 하나였습니다. 바하, 비발디, 헨델 등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이 리코더를 위해 곡을 쓰기도 했죠."
- 음반에서 권민석씨에게 선택받은 음악가는 비발디, 스카를라티, 만치니입니다. 이유나 계기가 있었을까요?"저희 그룹 '콩코르디 무지치'는 헤이그 왕립 음악원 출신 음악가들이 함께해 만들어진 젊은 앙상블입니다. 앙상블의 열정과 에너지가 정열적이고 경쾌한 이탈리아의 음악과 어울려서 위와 같은 선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녹음된 곡들이 분명 아름다운 명곡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악단에 의해 많이 녹음되지 않고 홀대되는 곡들이어서 더 의미가 있었죠."
- 이번 음반은 형식이나 구성면에서 국내에서 상당히 흔치 않은 음반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다면요?"항상 같이 연주하던 앙상블이어서 앙상블과의 호흡은 아주 좋았습니다. 특별히 신경 쓴 점이라면… 아,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에도아르도 발로즈씨가 바로크 음악의 대가인 톤 코프만(Ton Koopman)의 수제자여서 아주 훌륭하고 멋진 소리가 나는 하프시코드를 빌릴 수 있었죠. 코프만 선생님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조언을 해주시고 악기도 빌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이 음반을 감상할 감상자들에게 권민석씨가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음… 우선 저희 연주를 감상자 분들께서 음반으로 들으실 거라고 생각하니 쑥스럽네요. 하하. 아시겠지만 저희가 이번에 녹음한 음악들은 300년 전에 대한민국의 지구 반대편에서 작곡된 음악입니다. 저희는 시대악기 연주를 표방하며 최대한 작곡가의 의도에 맞게 연주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누구도 당시의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저희의 연주를 작은 가정,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시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도 리코더 연주자로 계속 남아계실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이제 와서 말씀드리기엔 새삼스럽지만, 리코더는 사실 대단히 어려운 악기입니다. 정말입니다. 리코더는 단순해 보이지만 메커니즘이 단순한 만큼 연주자가 더 다양한 변수를 컨트롤해야 하는 섬세한 악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안 좋은 리코더는 없다. 안 좋은 리코더 연주자만 있을 뿐이다.'올해로 제가 리코더를 진지하게 공부한 지 10년 밖에 안됐습니다. 그래선지 이제야 악기에 대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더 좋은 리코더 연주가, 더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은 게 저의 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