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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용두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저도연륙교가 몹시 아름답다.
저도 용두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저도연륙교가 몹시 아름답다. ⓒ 장안순

나는 갑작스레 오른쪽 다리가 아프면서 유달리 눈부셨던 올가을을 잃었다. 11월 초, 근육통이라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동네 병원서 생각지도 않게 무릎 연골이 많이 닳았다는 말을 듣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리고 서울까지 올라가 되도록 걷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관절염 진단을 받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내게 걷지 말라는 것은 산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나 다름없어 세상을 온통 울긋불긋 색칠하고 있는 가을을 그저 맹한 눈으로 쳐다보며 하루하루 보냈다. 그러다 지난 20일, 저물어 가는 가을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에 둘레길이라 괜찮다며 친구까지 꼬드겨 경남 창원시 저도비치로드를 향해 길을 나섰다. 옛날과 다르게 아껴야 할
내 몸에 어쨌거나 반기를 든 셈이다.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옛 저도연륙교.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옛 저도연륙교. ⓒ 김연옥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저도(猪島)를 이어 주는 저도연륙교에 이른 시간이 오후 1시 50분께. 우리는 저도비치로드를 산책하기에 앞서 섬과 육지를 잇는 정감 있는 다리 위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겼다. 저도연륙교는 두 개의 다리로 1987년에 세운 옛 다리와 2004년 12월 16일에 개통된 새 다리가 나란히 뻗어 있다.

길이 182m, 너비 13m의 새 저도연륙교는 기존 철교가 노후하여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조명이 설치되어 괭이갈매기 형상으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다리가 바로 이것이다. 길이가 170m이고 너비가 3m인 옛 철제 저도연륙교는 태국 깐차나부리에 있는 다리를 연상하게 한다 해서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다행히도 새 다리 옆에 그대로 보존하여 보행자 전용 다리로만 이용되고 있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통들을 걸어 놓은 콰이강의 다리.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통들을 걸어 놓은 콰이강의 다리. ⓒ 김연옥

 사랑은 삶의 비밀인지...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삶의 비밀인지...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김연옥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 신경림의 '떠도는 자의 노래'

더욱이 빨간색 옛 연륙교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인(이미연 분)과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변호사(박신양 분)의 슬픈 사랑을 그린 노효정 감독의 <인디안 썸머(2001)>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아래로 낚시꾼들이 보이는 콰이강의 다리 위를 우리는 느긋한 걸음으로 걸었다. 젊은 연인들이 걸어 놓은 사랑의 자물통들을 구경하면서. 사랑이 영원하다면 굳이 자물쇠로 사랑하는 마음을 꽁꽁 채워 둘 필요는 없었겠지. 어쩌면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것이 외로움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삶의 옆구리가 시려 올 때면 나는 또 길을 나서리라. 내 가여운 영혼을 찾아서.

 저도비치로드의 제2전망대에서. 마치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풍경 좋은 전망대이다.
저도비치로드의 제2전망대에서. 마치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풍경 좋은 전망대이다. ⓒ 김연옥

 정겨운 길이 이어지는 저도비치로드.
정겨운 길이 이어지는 저도비치로드. ⓒ 김연옥

오후 2시 30분께 저도비치로드 들머리에 도착해서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리웠던 흙 길인가. 걷는다는 것에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줄 몰랐다. 햇빛 머금어 반짝거리는 예쁜 나뭇잎들을 이따금 올려다보며 나는 11월의 아름다운 가을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한가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어갔을까, 제1전망대가 나왔다. 섬에 조성된 둘레길이라 바다를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저도비치로드의 매력이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정겨운 길 따라 우리는 계속 걸었다. 기다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제2전망대에 이른 시간은 오후 3시 20분께. 마치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풍경 좋은 전망대이다.

 햇빛 머금은 나뭇잎들이 반짝거리는 저도둘레길의 가을이 아름답다.
햇빛 머금은 나뭇잎들이 반짝거리는 저도둘레길의 가을이 아름답다. ⓒ 김연옥

제2전망대에서부터는 오르막이 한참 이어졌다. 무릎보호대를 하긴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나 사람의 욕심이 문제다. 둘레길 완주 코스를 가겠다고 괜한 욕심을 부려 제3바다체험장까지 걸어갔는데, 이곳에서 갑자기 인적이 끊기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함께한 친구가 너무 힘들어 해서 내 마음이 급해졌다.

너희들은 이제
서로 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된
11월.

엄마, 잠깐 눈 좀 감아봐! 잠깐만.

잠깐, 잠깐, 사이를 두고
은행잎이 뛰어내린다.
11월의 가늘한
긴 햇살 위에.

- 황인숙의 '11월'

우리가 용두산 자락의 하포마을로 내려왔을 때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았고 달마저 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오른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 왔지만, 그래도 이제 11월의 가을을 떠나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리고 은행잎들이 쌀쌀한 바람에 흩날려도 샛노란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고 중얼거리면서 슬퍼하지는 않을 것 같다.

 괭이갈매기 형상으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새 저도연륙교. 
괭이갈매기 형상으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새 저도연륙교.  ⓒ 김연옥


#저도연륙교#저도비치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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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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