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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촨 – 차마고도를 품고 사는 잊혀진 고성(古城)

어머님,
오래된 길에 대한 아련한 동경 속에서 그 길을 헤매이고 때론 걷곤 합니다. 따리(大理)에서 사람들이 쉬이 오르는 길이 나시주(納西族)의 고성이 있는 리장(麗江)입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한 발짝 늦추어 보면 상관(上關)에 요수오라는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은 바이족의 큰 시장이 있는 동내입니다.

그 길을 따라 110km 올라가면 젠촨(劍川)이라는 오래된 고성(古城)이 있습니다. 젠촨은 잊혀진 동내인지도 모릅니다. 간간이 중덴(현 샹그릴라)로 가는 버스가 이 길을 따르지만 많은 이들은 리장으로 향합니다.

茶馬古道上 唯一實存的集市
▲ 윈난(雲南) 사시고진(沙溪古鎭) 茶馬古道上 唯一實存的集市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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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따리와 리장을 잇는 새 도로를 많이 찾기에 옛길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이 옛길은 징홍에서 올라온 푸얼차(普二茶)가 따리에서 사시고진-젠촨고성-스구-리장-번즈란-더친-이앤징-망캄-라싸로 전해지는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말합니다. 이는 또한 란찬강(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젠촨에서 자리를 잡고, 바이족 사람들이 새겼다는 석고굴이 있는 스바오산(石寶山)과 '차마고도상 유일실존적집시(茶馬古道上 唯一實存的集市)' 와 바이주(白族 木彫之縣)로 알려진 사시고진(沙溪古鎭)을 다녀 올까합니다.

젠촨, 그 옛날 꽤 유명한 교통의 요지이며, 중국의 중원·남조·토번시대 목조각으로 유명한 성읍입니다. 그리고 명나라 때 지어진 징펑꽁위엔(景風公園)은 이른 아침 어르신들의 산책로이며 우리 어머니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티베트 불교와 관련이 있다는 징펑거(景風閣)의 조각은 목조각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하며, 링바오타(靈寶塔)는 할머니들께서 꽃을 정성스레 바치며 기도하는 탑입니다. 또한 차마고도의 옛 흔적을 되새기기라도 하려는 듯 석마(石馬) 두 필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사등지에서 시(詩)를 읊는 소학생들.
▲ 윈난(雲南) 사시고진(沙溪古鎭) 사등지에서 시(詩)를 읊는 소학생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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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저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징펑꽁위엔에 들어서서 젠촨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신성(神聖)과 오랜 나무 가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여중생들의 시음(詩音)과 들으며 공원을 거닙니다. 한참을 징펑꽁위엔에서 멈춰 서성이다, 고성 안으로 내려오니 이곳은 분주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학교 간다고 길을 나서고, 산 위에서 내린 물이 고성의 담벼락 아래로 줄줄 흘러 내리면 아주머니들은 채소를 다듬습니다. 성안에는 조그마한 장이 서는 듯, 아직도 그 옛모습을 간직한 이주(彝族)의 아주머니가 옛 옷을 입은 채 야채를 내어놓았습니다. 크지 않은 성안의 장날은 서서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머무른 초대소 맞은 편에는 서너 개의 만두가게가 있는데, 아침이면 만두를 내어놓고 있습니다. 젠촨의 고성은 삶이 함께 흐르는 거리이며, 아마도 낯선 이는 저 밖에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덜 꾸며지고 화장하지 않은 시골 아가씨의 얼굴 같습니다. 간간이 대문에 걸려진 한 폭의 그림은 이곳 사람들의 높은 문화적 자존심 상징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옛정에 대한 향수와 시멘트 건물에 갇힌 제 삶을 반성해 봅니다.

난 전생에 마방이였을까?
▲ 윈난(雲南) 사시고진(沙溪古鎭) 난 전생에 마방이였을까?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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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만두와 죽으로 아침을 먹고 정류장에 가서 '사시고진'가는 버스를 타려 하니 버스 정류소 직원이 밖에 대기하고 있는 빵차(일종의 승합차)를 타라고 일러줍니다. 작은 마을은 언제나 사설버스(빵차)와 공공버스가 함께 달리는데, 공공버스가 다니지 않는 빈 시간은 빵차들이 메우고 있기에 들고나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합니다. 고성을 벗어나자 풍요로운 들판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시고진을 가기 위해서는 들판을 따라 10여분 달린 다음, 커다란 산을 올라 또 한참을 달려야 합니다. 사시고진으로 들고나는 버스는 많은 편이 아닙니다. 이는 사시고진이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나타냅니다. 또 사시고진이 오지가 아니면서도 오지처럼 느껴지게도 합니다.

마을은 넓은 들판을 끼고 있지만, 그 너머에는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어느 곳에서든 사시고진으로로 들어오려고 하면 산을 넘어 와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시고진은 아주 조용한 동네이며, 점점 잊혀져 가는 자리인지 모릅니다.

고성(젠촨)이 큰 동내라면 사시고진은 아주 어린 마을입니다. 고성처럼 물이 흘러내리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고, 강 건너의 옛 다리에는 이제 마방(馬幇)이 지나지 않습니다.

사등지에(寺登街)에 앉아 있으니 소학교 어린아이 열 댓 명이 모여서 젊은 여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떤 시인 듯한데, 그 음과 뜻을 잘 알지 못하겠지만 잠잠하던 사시고진이 어린 소녀들의 합창 소리에 하품을 하는 듯 합니다.

잠시 동안 울린 시음(詩音)이 사라지자, 사등지는 다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니, 빨간색의 네모난 흙을 빚어 지은 집과 마을로 드는 좁은 문이 오랜시절의 향기를 뿜어냅니다.

아마도 이곳의 사람들은 이 길로 마방을 마중하고 배웅도 하곤 했을 것 같습니다. 골목을 느리게 걸으며, 사등지에 앉아 차마고도의 길을 마당에 홀로 그려봅니다. 예닐곱 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두어 살 되는 동생을 등에 업고, 친구랑 옛 찻집으로 들어갑니다.

붉은 흙으로 지어진, 옛 그리움.
▲ 윈난(雲南) 사시고진(沙溪古鎭) 붉은 흙으로 지어진, 옛 그리움.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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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 어딘가에서 들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동경하는 티벳이 나오고, 또 이 길의 끝에는 따스한 남쪽나라 윈난(雲南)이 있습니다. 차(茶)와 말(馬)이 다니며, 삭막한 산길을 돌아가는 마방들의 사연과 그 길이 물질문명의 발달로 잊혀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또한 히말라야 깊은 어느 곳에서 소금이 난다는 믿지 못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저는 옛길을 동경했는지 모릅니다. 깔끔하게 지어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 이제는 말 발자국만이 남아있는 식물한계상의 고도를 줄넘기 하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저도 걷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도록 울리는 향수(鄕愁)
▲ 윈난(雲南) 사시고진(沙溪古鎭) 오래도록 울리는 향수(鄕愁)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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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차마고도는 다시 살아나는 듯하지만 그 살아남이 쉬이 반갑지 않음은, 그 길이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쇼핑센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살기 위해 걸었던 길이 문명을 잇는 가교(架橋)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살았다는 사실을, 이 길을 찾는 사람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젠촨과 사시고진를 잇는 이 길은 꼭꼭 숨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차마고도를 그리워하는 이들만 오래도록 걸었으면 하는 엉뚱한 욕심을 품어봅니다. 너무나 고요한 사시의 사등지에에 앉아, 나른한 오후의 생각에 잠깁니다.

2010. 06 . 09 사시고진(沙溪古鎭)에서


태그:#중국, #사시고진,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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