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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조기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조기는 없고 그 자리를 꽃게가 대신하고 있는 연평도가 근래 국민들의 뜨거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피격 사태 때문이다. 결국 '연평도'는 분쟁과 위험의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셈이다.

해군력에서 북한을 압도한 UN군의 위력 덕분에 1950년 전쟁도 피해갔던 연평도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포탄의 상처는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고요하고 밝던 연평도를 찾았던 추억을 되새기며, 그 곳이 평화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한동안 묻어두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어 새삼스레 유심히 들여다본다.  

배는 연평도 부두로 들어선다.
▲ 등대 사이를 지나 배는 연평도 부두로 들어선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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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앞바다를 떠난 배는 2시간 정도 지나면 연평도에 닿는다. 백령도 갈 때에 비하면 절반 가량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백령도를 처음 방문했던 때가 생각난다. 인천 국내선 부두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에 갔다가, 거기서 다시 백령도로 가려는 계획을 세웠던 그 아둔함 말이다. '탁상 행정'이라더니, 지도만 보고 판단하였으니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연평도에서 백령도로 가는 배는 없다. 그렇게 항해를 할 일도 없으려니와, 두 섬 사이가 북한 해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뱃길도 아니다.

배에서 내릴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뭍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
▲ 연평도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릴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뭍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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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닿으면 맨 먼저 바다를 지키는 초소와 해병대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접경 지대로구나! 북한땅도 엄연히 헌법상으로는 국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연평도 앞바다가 접경 지역이 되고만 것이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저 젊은 청년들이 중국과의 국경에서 근무를 하는 국군의 위상을 되찾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숙고로 가는 길을 걸으니 곳곳의 이것저것이 접경의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준다. 면 사무소 옥상에는 위급 상황을 전파하기에 적합한 사이렌이 사방을 향해 설치되어 있고, 폐타이어로 중무장을 한 대피소가 동네 안의 요지인 삼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평교회 오른쪽에 세워진 6용사탑 앞에도 확성기는 어김없이 마을을 향해 세워져 있다. 교회 사진을 찍으니 십자가보다 송수신탑이 더 크게, 더 앞으로 웅대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바로 연평도의 이미지인가.

길가에 대피소가 있다. 이 역시 뭍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경기도나 강원도의 전방 지역에 가면 이런 게 길가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 숙소로 가는데 길가에 대피소가 있다. 이 역시 뭍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경기도나 강원도의 전방 지역에 가면 이런 게 길가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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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평범한 지역이 아님을 말해주려는 듯 사방으로 울려퍼지는 확성기가 요란하게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이번의 피격 사태 때 이 사이렌들은 긴급 경보를 알리는 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 면사무소 옥상에도 이 곳이 평범한 지역이 아님을 말해주려는 듯 사방으로 울려퍼지는 확성기가 요란하게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이번의 피격 사태 때 이 사이렌들은 긴급 경보를 알리는 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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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을 유발하는 사이렌들은 연평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 6용사 충혼탑 앞 언덕 비탈에도 사이렌들은 비스듬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 6용사 충혼탑 앞에도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이렌들은 연평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 6용사 충혼탑 앞 언덕 비탈에도 사이렌들은 비스듬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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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가리며 우뚝 다가서는 이 무시무시한 철탑은 여행객에도 연평도의 이미지를 강요한다.
▲ 연평교회를 보는데 십자가를 가리며 우뚝 다가서는 이 무시무시한 철탑은 여행객에도 연평도의 이미지를 강요한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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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산책한다. 뭐니뭐니 해도 분단의 상징은 바로 이 철조망이다. 땅굴과 DMZ가 세계적으로 이름높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단의 일반적 상징은 역시 철조망이다. 동해안, 남해안 가릴 것 없이 겹겹의 철조망이 바닷가를 에워싸고 있었던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상당히 덜 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머릿속에 꾸준히 각인되어 온 철조망의 이미지는 여전히 날카롭고 둔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철조망이 이 곳 연평도에선 종전과 다름없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땅을 덮고, 언덕을 짓누르고, 그러고도 모자라 하늘까지 찌르고 있는 철조망을 바라보는 분단시대 국민의 마음은 자못 안타깝고 무겁다.

연평도의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말해주는 풍경이다.
▲ 바닷가의 철조망 연평도의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말해주는 풍경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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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탑을 둘러보는 일은 당연한 여정이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식당 주인이 한 말로는 연평도 주민의 70% 정도는 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황해도 출신들이라고 한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년을 끌고, 게다가 휴전이 되면서 철조망으로 아주 철통같이 가로막고 말았으니, 어찌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을까. 연평도 사람들은 북한 땅이 지척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망향탑을 세웠다. 망향탑에 서면 실제로 북한땅이 보이니 고향을 그리는 그들의 마음은 그저 여행을 와서 한번 바라볼 뿐인 우리와는 아주 다르리라.

연평도 북쪽 끝 높은 언덕에는 망향탑이 애처로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평도 북쪽 끝 높은 언덕에는 망향탑이 애처로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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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염원을 말해주는 듯 바다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 연평도 북쪽 끝은 통일의 염원을 말해주는 듯 바다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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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윗덩어리 인근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싯꾼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바로 황해도이다.
▲ 망향탑 언덕의 절벽 아래에 있는 아이스크림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윗덩어리 인근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싯꾼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바로 황해도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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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사실을 저 새도 알고 있는 것일까.
▲ 날던 새도 갈길을 멈추고 북한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사실을 저 새도 알고 있는 것일까.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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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는 본래 조기잡이로 유명했다. 한창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연평도에는 개도 종잇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떠돌았고 하고, 대연평도에서 소연평도 사이를 사람이 걸어서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섬 사이에 배가 가득해서 그 갑판들을 밟고도 사람이 얼마든지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를 오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물의 온도와 조류의 변화 등으로 연평도에서는 조기들이 아주 없어졌다. 지금 연평도에서는 조기의 지리를 꽃게들이 차지하고 있다. 연평도에는 그저 조기 역사관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조기 역사관의 왼편에 줄지어 늘어선 무시무시한 절벽은 저 유명한 '빠삐용 절벽'이다.

연평도에서 조기잡이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임경업 장군이라고 한다. 군사들을 데리고 중국을 향해 나아가다가 식량이 떨어졌는데, 문득 장군이 바닷가에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꺾어서 꽂아두었다가 거기에 걸린 조기를 잡아내어 대용 식량으로 활용하는 기발한 수를 착안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이곳 사람들은 사당(충민사)을 세워 임경업 장군의 호국충절 이미지와 조기잡이 시조의 업적을 겹쳐 기리고 있다. 임경업 장군의 사당은 바닷가가 아니라, 마을 한복판 면소재지 바로 뒤에 있다.

조기 잡이로 유명하던 섬이다. 조기박물관 앞에는 조깃배 형상의 조형물이 하늘에 뜬 듯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 연평도는 본래 조기 잡이로 유명하던 섬이다. 조기박물관 앞에는 조깃배 형상의 조형물이 하늘에 뜬 듯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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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의 왼쪽은 유명한 '빠삐용 절벽'이다.
▲ 언덕 위에 조기박물관이 보인다 이 박물관의 왼쪽은 유명한 '빠삐용 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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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장군이라고 한다.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사당의 모습.
▲ 연평도에서 조기잡이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임경업 장군이라고 한다.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사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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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르는 듯한 장관의 가파름으로 '빠삐용 절벽'이라는 이름을 얻은 명승지이다.
▲ 조기박물관 왼쪽 해안은 깎아지르는 듯한 장관의 가파름으로 '빠삐용 절벽'이라는 이름을 얻은 명승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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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서 방문해 볼 만한 곳들에는 빠삐용 절벽, 조기 박물관, 등대공원, 충민사(임경업 사당), 망향탑, 아이스크림 바위, 6용사 충혼탑 등이 있다. 곳곳에 있는 대피소 안에 한번 들어가보는 것도 연평도를 찾은 기억을 오랫동안 남겨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해안에서 훈련 중인 해병대들과 뒤섞여 바닷가를 뒹구는 희귀한 피서도 다른 곳에서는 결코 겪어볼 수 없는 이 곳 특유의 즐길거리이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가, 새벽 일찍 일어난 여행객은 아침 일출의 장관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밤이면 바닷물이 정말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난 뒤 개펄 한복판으로 몇 킬로미터씩이나 들어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방금 잡아낸 해물들로 장만한 싱싱한 먹거리들을 맛보는 쾌감도 만끽할 수 있다.

새벽의 푸른 하늘을 가르며 고기잡이를 나서는 어부의 부지런함을 바라보며 내 삶의 성실성을 일깨우는 것 역시 여행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라 할 것이다. 연평도의 새벽, 아침해가 짙푸른 하늘과 암청색 바다를 환하게 가르며 장엄하게 떠오르고 있다.   

떠오르는 연평도의 해가 하늘을 더욱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 바다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연평도의 해가 하늘을 더욱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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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고요하고 잔잔하다. 누가 이 곳의 평화를 깨뜨리는가?
▲ 연평도의 아침은 이렇듯 고요하고 잔잔하다. 누가 이 곳의 평화를 깨뜨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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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앞바다는 바닷물이 거짓말처럼 다 빠져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밤새 일어날 수 있을까. 여객선 선착장과 면소재지를 잇는 다리의 교각 사이로, 이렇게 멀리서도 하늘이 보인다.
▲ 해가 뜨면 연평도 앞바다는 바닷물이 거짓말처럼 다 빠져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밤새 일어날 수 있을까. 여객선 선착장과 면소재지를 잇는 다리의 교각 사이로, 이렇게 멀리서도 하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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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의 등대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 곳 사람들의 앞날을 분명하게 밝혀줄 것이다.
▲ 오늘도 파아란 하늘처럼 연평도의 등대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 곳 사람들의 앞날을 분명하게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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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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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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