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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쇠고기 분야는 최종합의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관련 서류를 양손에 들고 취재진을 향해 잠시 보여주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쇠고기 분야는 최종합의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관련 서류를 양손에 들고 취재진을 향해 잠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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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상에 대해) 우리의 일방적인 양보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양국 모두 윈-윈(win-win)하는 합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표정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4일 오전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가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대한 내외신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그는 이번 워싱턴 재협상 결과를 두고, '일방적 퍼주기 협상'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양측간 이익을 반영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4일 동안 20번 넘은 회의를 하면서, 미국에서 (국내 시장개방에 대한) 높은 요구 수준이 있었다"면서 "(협상이) 타결이 되느냐, 다시 실패하느냐는 어려운 국면에 봉착하기도 했었다"며 그동안 어려웠던 협상과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시간에 걸친 이날 회견에서 김 본부장은 자동차와 관련한 미국 쪽의 강도 높은 요구 등을 공개하면서, "상호주의에 입각해 이익의 균형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내 자동차 시장 개방은 최대한 늦추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접근은 크게 높이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미국은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새롭게 도입하고, 각종 국내 자동차 세금제도와 환경 규제 등도 자신들 입장을 대부분 관철시켰다.

김 본부장은 우리 정부가 얻은 부분을 언급해가면서,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간 연장과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의무이행 유예 등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초 FTA의 의제가 아니지만, 미국에 있는 한국기업인들의 비자기간을 연장하는데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동안 우리 정부가 FTA 협상과 연계해서 미국에 강하게 요구해왔던 '전문직 비자 쿼터'는 결국 따내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재협상 내내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도 김 본부장은 이날 "원래 외교문서를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합의된 내용을 보여주겠다"면서 A4 2장짜리 합의문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합의문 어디에도 쇠고기 내용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미 무역대표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조만간 한국 쇠고기 시장 개방을 위해 별도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 본부장은 "쇠고기 문제에 대한 미 정치권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미 행정부가 자국내 정치용으로 대응한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항변1] 자동차 내준 것 아니다? "상호주의 입각, 더 큰 요구 막아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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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은 이날 회견의 상당 시간을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전날(4일) 미 무역대표부가 이번 재협상 결과를 공개하면서, 국내외에서 '미국쪽의 일방적인 승리'라는 여론이 일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보였다.

이번에 공개된 자동차 협상 결과는 크게 네가지. 관세분야와 세이프가드, 안전 기준과 이산화탄소 등 환경규제 등이다.

미국은 승용차와 전기자동차, 화물자동차 등에서 기존 협정문의 관세부문을 대폭 손질했다. 모든 승용차에 대해 한미 양국 모두 4년 후(미국은 5년째 되는 해로 표현)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것이다. 원래 협정문에선 미국은 한국산 3000cc이하 승용차에 대해 '즉시 철폐', 3000cc초과는 '3년내 철폐'하기로 돼 있었다. 우리도 8%인 관세를 4년동안 4%로 줄이고, 5년 째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FTA의 최대 성과로 '미 자동차 관세 즉시철폐'로 꼽아왔다. 최대 성과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반대로, 큰 성과가 됐다. 한국산 수입차의 90%가 3000cc 미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상당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미국의 현재 2.5% (자동차) 관세부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출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미 현지 생산도 많이 늘고 있으며, (기존 협정문과 달리) 4년간 유지된다고 해서 자동차 판매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 미국이 기술적 우위에 있는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차에서 미국에 유리하게 관세가 바뀐 것이나, 미국의 화물자동차 시장에 대한 높은 관세율이 상당기간 유지하기로 된 것에 대해, 김 본부장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전기차의 경우 기존 협정문에선 우리나라는 8% 관세를 10년째 철폐하기로 했지만, 이번에 4년동안 4%로 줄이고, 5년째 모두 없애기로 했다. 또 수입 화물자동차에 25%라는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는 미국은 당초 10년동안 단계적으로 관세를 줄이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8년동안 25%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자국내 픽업트럭 시장 접근을 봉쇄한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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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변2] 자동차 세이프가드 문제없다? "실제 적용된 사례 전무"

또 이번 협상에서 논란이 됐던, 자동차에 대한 특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대해서도,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대미 승용차 수출 현황 자료 등을 내보이면서 "유럽연합과 이미 합의된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며 해명했다.

기존 한미 FTA 협정문에 없었던 내용인 세이프가드는, 한국 차의 급격한 수출증가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게될 경우,  미국은 15년 동안(픽업트럭의 경우 20년 동안)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치가 실제로 발동된 사례는 전무하다"면서 "우리 업계가 현지에서 생산하는 비율이 늘고 있고, 직접 수출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미측에서 실제로 이를 발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대신 그는 "미측은 세이프가드의 발동 요건에서 '심각한 피해(serious damage)' 문구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수출 물량이 미국보다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만약에 적용될 경우 그 피해는 한국산 자동차만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 물량을 볼 때, 사실상 우리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에 비춰보면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치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기존 자동차 협정문의 독소조항으로 지적받아온 '스냅백(snapping back, 협정문 내용을 위반했을 경우 기존 관세부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조항)' 등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밖에 자동차 안전기준이나 연비와 배출가스 등 환경규제에서도 기존 협정문 보다 큰 폭의 우리쪽 양보가 이뤄졌다. 6500대 미만까지 인정됐던 미국의 자기인증 안전기준도 2만5000대까지 늘었고, 환경기준 적용 역시 전보다 20% 완화된 기준을 미국은 적용받는 것으로 됐다.

김 본부장은 "안전기준에서 숫자가 늘어난 것은 인위적인 설정일 뿐"이라며 "미 자동차 업계가 스스로 자기인증을 통해 수출하지만, 우리 정부도 안전 등에서 체크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협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자, "오히려 자동차 문제로 인해 한미 FTA 발효가 지연되는 것보다 (자동차 문제를) 해결해서 한미 FTA를 하루 빨리 발효시키는 것이 자동차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한미FTA 재협상 결과발표 기자회견 도중 기자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손을 귀에 갖다대고 있다.
▲ "잘 안들려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한미FTA 재협상 결과발표 기자회견 도중 기자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손을 귀에 갖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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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변3] 돼지고기, 의약품 특허 등 따왔다? 미, 페루와는 삭제, 우리는 '수정'

이날 김 본부장이 공개한 우리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따냈다고 밝힌 것은 크게 세가지. 하나는 냉동 돼지고기 품목에 대해 관세철폐기간을 2년 연장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의약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의무를 발효 이후 3년동안 유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FTA의 의제는 아니지만,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기업인의 체류기간을 전보다 늘렸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수입되는 냉동 기타 품목 가운데 94%가 돼지고기"라며 "현행 25% 관세를 5년째 되는 해에 철폐하기로 하면서 연간 1억6000만불의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돈업계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추가적인 시간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기존 협정문에서 국내 의약업계가 복제의약품을 시판할 때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등의 조항을 뒀다"면서 "(기존에는) 1년 6개월 동안 특허와 연계하는 의무기간을 유예하기로 했지만 이번에 3년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신약 출시 비중이 낮은 국내 업계 입장에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간 확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의약품의 허가와 특허 연계 조항은 그동안 협정이 발효될 경우 국내 의약품값 상승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 받아왔다. 특히 미국은 페루와 콜롬비아 등과의 FTA 재협상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반발로 이들 조항을 삭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부 수정하는 데 그쳤다.

이에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폐루가 아니다"면서 강한 어조로 반박하면서, "만약 우리가 페루와 같은 조건이었다면 (해당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겠지만, 우리는 페루 등과 다른 선진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페루와 같은 해당 조항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본부장은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기업인 등의 체류기간을 늘리는 데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다. 현재 미국에 지사를 두거나 새롭게 만들어 파견돼 있는 한국 직원들의 비자 기간은 1년에서 최대 3년으로 돼 있다. 이를 모두 5년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 파견돼 일하는 국내 직원이나 가족의 경우 이번 합의가 이뤄지면, 비자 갱신을 위해 다시 귀국했다가 나가는 등의 시간과 경비 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한미 FTA와 연계해 꾸준히 미국에 요구해왔던 '전문직 비자쿼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직 비자 쿼터 문제는 사실상 미국내 일자리를 한국인이 직접 따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기존 체류인력의 기간 연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도 쿼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셈이다.


태그:#한미?FTA, #김종훈, #자동차 시장, #미 쇠고기, #돼지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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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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