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9월 1일자로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했고, 부당해고를 당하고 나서 알게 된 근로기준법의 모순을 정리해서 이곳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사가 그 세 번째 기사입니다.
지난 10월 26일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심판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제가 9월 1일에 구제신청을 했으니 근 2달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늦은 오후 지방노동위원회의 담당 조사관이 심판위원회의 심판결과를 전화로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저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류정리가 끝나는 대로 회사 측에 정식으로 결정문이 송달될 것이며, 그 내용은 부당해고를 인정하니 원직복직을 시키고 부당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상당액을 지불하라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노동위원회 원직복직 판결... 진짜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담당 조사관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는 순간 지난 2개월 동안 억눌려 있던 억울함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수입 없이 여기저기 손을 벌리며 살아가려고 발버둥 친 시절이 이제 끝났구나 하는 회환이 몰려와 가슴이 뛰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때부터가 진짜 고난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에 회사가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재심신청 유무와는 상관 없이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을 회사는 우선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노동위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있기에 그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결정문을 받아 본 순간 제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정문에는, 결정문을 받을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명령을 이행하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근로자를 부당해고시킨 악덕 기업주가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을 빨리 이행할 리 만무하다고 볼 때 부당해고 근로자는 1개월을 또 기다려야 합니다. 실제로 저는 명령서를 받은 지 거의 1개월이 다 되는 오늘 현재에도 임금상당액을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개월을 기다린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저 말고도 저의 전임자가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부당해고를 당했었는데, 회사는 전임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계기로 많은 학습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명령서가 우편으로 회사에 전달되는 시간까지의 시간을 감안해서 명령서 송달 이후 1개월을 어느 정도 넘겨서야 회사 측에 연락하여 명령을 이행했는지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사 측의 보고를 받은 이후에 다시 저에게 회사의 보고가 사실인지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만약 회사가 명령을 착실히 이행하고 제가 그 사실을 인정을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명령을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았을 경우 회사는 그 이유를 주장하게 되고, 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주장이 옳은지에 대해서 다시 심의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추가적으로 2개월이 넘는 시간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명령서를 전달받은 지 1개월 이내에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바로 회사가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는 나름대로 주장을 펴다가 그것마저 안 돼,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방노동위원회의 최종통보를 받은 뒤 명령을 이행해도 됩니다. 회사는 이런 모든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당해고 초기에는 여윳돈도 조금 남았었고, 돈이 급할 때에는 12월이면 노동위원회의 명령에 의해 어느 정도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로 주변에서 임시로 돈을 융통해 썼습니다. 하지만 다시 2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니 더 이상 돈을 유통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저는 신용불량자의 문턱에 와 있는 상태입니다.
폭언, 무시, 신용불량... 부당해고자는 '그림자'입니까?
더구나, 저는 지방노동위원회에게 분명히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음에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회사가 저를 4대 보험에 퇴사 신고를 하면서 '징계에 의한 해고'라고 퇴사 이유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물론, 얘기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회사가 저를 부당해고 시켰을 당시 제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회사는 부당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4대 보험에 퇴사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실업급여 신청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심판위원회의 결과를 전화로 듣고 나서 다음 날 저에게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아직 지방노동위원회에게 정식으로 명령문을 받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빨리 회사가 부르니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설레던 제 마음과 달리 사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은 인사도 받지 않고 온갖 폭언을 해댔고, 저는 앉아 있을 자리가 없어 서성이다 겨우 빈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러더니 사장은 다시 자기 눈에 거슬린다고 다른 자리에 가 앉으라 했습니다. 또 제가 하던 일은 이미 다른 사람이 채용돼 하고 있어, 일을 다시 할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내용증명도 보냈습니다. 아직 지방노동위원회에게 명령문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받더라고 1개월의 여유가 있어 하던 일과 똑같지 않아도 좋으니 제가 일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서 정식으로 인사발령을 내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무슨 죄인도 아닌데 회사직원들은 저와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그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사장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에 시달릴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인사발령을 내면 출근하겠다고 기다리던 저에게 인사발령은 내지 않고 무단 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저를 11월 18일자로 또 다시 해고를 했습니다. 인사발령을 내 지방노동위원회 원직복직 명령을 이행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정말로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4대 보험에 퇴사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무단 결근 및 회사 명예실추에 의해 징계 해고 했다'고 신고를 한 것입니다. 회사가 주장하는 명예실추는 제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것이 이유라고 합니다.
부당해고 문제, 자살이라도 해야 세상이 알아주나
저는 이 사실을 지방노동위원회의 담당 조사관과 상의를 했고, 담당 조사관은 과연 회사가 정당한 이유에 의해 저를 해고 시킨 것인지, 아니면 아직 원직복직이 되지 않았다는 저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심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저의 공식적인 신분은 아직 부당해고 근로자이며, 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11월 18일자 해고는 회사의 임의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저의 퇴사 이유가 징계해고로 신청됐다는 이유로 실업급여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노동위원회는 국가 기관입니다. 그리고 부당해고에 관련한 심판, 판결 등의 업무는 노동위원회의 고유 영역입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결은 고용지원센터에서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사업주는 전혀 겁을 내지 않고, 다른 국가기관에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노동위원회의 판결과 명령. 이처럼 노동위원회의 결정은 부당해고 근로자를 돕기는커녕, 부당해고 근로자에게 괜한 기대를 주고 오히려 더 큰 실망과 고통만 안기는 불청객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연일 '북한이 어떻다' '미국동맹이 어떻다' 너무 큰 이슈가 많아서일까요? 부당해고 근로자가 겪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부당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랬듯이, 그저 남의 얘기로 흘려 듣다가 누구 하나 자살했다면 그제서야 잠시 관심을 갖는 척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부당해고는 당사자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야 잠시 관심을 갖는 척 하기 보다는, 평상 시에도 부당해고를 당해 고통을 받는 이들의 사정에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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