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틀' 마련에 합의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회동을 통해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뜻을 같이하거나, 동의하는 진보진영 대표자들의 회동(연석회의)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양당은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를 연내에 추진하기로 하는 한편 ▲ 비정규직 철폐 ▲ 한반도 평화 실현 ▲ 4대강 사업 저지 ▲ 한미FTA 폐기 등 당면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양당 간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2008년 분당한 두 당이 통합논의를 위한 '협의체'를 띄우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기갑 전 민노당 대표와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6.2 지방선거 전 '진보정치대통합'에 대한 의견을 나눴지만 당시엔 '야권연대'에 대한 인식 차를 뛰어넘지 못했다.
무엇보다 양당 대표의 만남이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진보진영의 연대·연합 전술에 대한 물밑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시점에 성사된 것도 주목된다.
현재 야권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이른바 '빅텐트'·'백만 민란'과 '반(反)한나라당-비(非)민주당'을 기조로 한 '민노당-진보신당-참여당'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비민주연합론'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야권연대'의 주요 축인 진보정당이 먼저 자신들의 진영을 재편하겠단 시도이기 때문이다.
조승수 "진보열차엔 종착역까지 같이 갈 사람 태웠으면"다만, 양당 간 통합의 방법과 대상, 시기 등에 이견이 적지 않아 연석회의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양당은 이날 회동에서 통합 대상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실무단위로 미루고, 연석회의 출범 시기에 대해서도 '연내(12월 15~25일)'로만 한정 지었다. 양당 대표 역시 이날 회동 모두발언을 통해 미묘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진보열차를 함께 타고 종착역을 향해 가는데 진보열차의 자리가 많아 많은 사람을 태울 수도 있고 역에서도 쉬어갈 수 있다"면서도 "이 열차의 운행을 방해하는 사람까지 태울 순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술 먹는 사람, 주정 부리는 사람 빼고 종착역에 함께 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갔으면 한다"며 "진보열차는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정치공학적 통합이 아닌 과거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를 청산하고 후퇴하지 않을 새로운 내용을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도 민주당·국민참여당 등을 자유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당 차원에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반대한 바 있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이와 관련, "6.2 지방선거 이후 연합·통합 대상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당 내부 상황을 감안해서 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6.2 지방선거 당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내부 갈등이 불거졌던 심상정 전 대표의 사례에서 비추듯 당의 전체적인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이상, 연석회의 참여대상에 대한 당의 입장은 원론적일 수 밖에 없단 얘기였다.
강 대변인은 또 "진보신당은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이상 논의해봐야 할 유의미한 주제가 많은 만큼 (통합진보정당 출범에 대한) 시기를 못 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정희 "내년 따뜻한 때 결실 맺었으면 참 좋겠다"그러나 민노당의 입장은 이와 약간 다르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열차 차량이 몇 량일지는 두 당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조 대표의 발언을 맞받았다. 연석회의 참여범위에 대해선 양당의 논의 결과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란 의사 표시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좀 더 폭넓게 논의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저희는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에서 이미 논의했고, 진보대통합을 위한 실행기구도 설치했다"며 "진보신당도 함께 뜻을 모아서 이런 일들이 빠르게 추진되었으면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대선을 놓고 '빅텐트', '민란', '비민주연합' 등 각종 전술을 논의하는 현 시점에서 진보정당이 빨리 '결론'을 내놓아야 한단 '재촉'인 셈이다.
이 대표는 이어 "생각 같아서는 내년에 따뜻한 때 결실을 맺었으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다"며 "우리가 가능하면 빨리 국민들께, 진보정당을 지지하기를 바라시는 분들께 힘을 드리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당은 정성희 민노당 최고위원·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등이 총괄할 실무협의를 통해 연석회의 참여대상 및 출범 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다. 앞서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진보교연)과 간담회를 한 진보신당은 오는 9일 사회당, 다음 주 민주노총 등을 만나 연석회의 참여에 대한 동의를 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