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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는 박람회 부지 조성을 위해 구 여수역 인근 덕충동 주민을 이주시켰다. 주민 이주는 마무리됐고, 덕충동 일대는 세계박람회 부지 조성이 한창이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정들었던 집을 떠난 주민들은 몇 달째 남의 집에 더부살이 중이다. 그 속사정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지난 6일 여수시청 앞 공터에 천막치고 농성중인 '덕충 주민 이주, 보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로 적습니다)를 찾았다. 김판규 위원장은 "오현섭 전 시장과 대책위원회가 약속한 이주 택지 조성을 현 시장은 조속히 이행하라"며 21일째 단식 중이다.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 위원장은 대화가 불가능했다. 대책위원회 재무이사인 김아무개씨를 만나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대책위원회는 2008년 8월 결성됐는데 동기는 세계박람회 부지인 덕충동 지역 이주민에 대한 보상과 이주 대책 수립을 위해서였다. 대책위원회는 최근까지 보상과 이주에 대해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선거 후 상황이 반전됐다. 여수시가 기존 입장과 다른 말을 한단다. 시는 지난 선거 전까지만 해도 이주 택지 조성 가능하다고 했는데 선거 후 현 시장이 당선되자 말을 바꿨단다. 이주 택지 조성이 법적, 행정적 구속력 없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허탈했다. 시장이 바뀌면 과거 행정이 없던 일로 되는 것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속았다는 마음에 분하고 원통함이 집단적으로 표출됐다.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해 보인다. 정든 집 조상 땅을 국가사업 위해 떠났으니 동네 사람 흩어지지 않고 모여 살 곳 마련해 달란다.

 

내 집 주고 남의 집살이 이것이 될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일 오후 3시 여수 진남체육관 내 엑스포 조직위원회 회의실에서 시 담당자들과 대책위원회가 테이블에 앉았다. 회의는 대책위원회의 강한 불만에 시는 책임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회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대책위원회는 2009년부터 최근 지방선거 전까지 오현섭 전 시장과 대책위원회가 약속했던 이주 택지 조성을 여수시가 적극 이행하란다.

 

대책위원회 재무이사 김아무개씨는 "박람회 성공 개최를 위해 덕충동 이주 대상 주민들은 시에 적극 협조"했단다. "보상비 책정하는 감정평가 시 일부 주민들은 보상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불만을 터뜨렸으나 대책위원회는 이주 택지 조성해준다는 말로 주민 불만을 누그러뜨리며 협조"했단다.

 

그러나 주민에게 되돌아온 것은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남의 집 살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엑스포를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대안이 없다면 어쩌란 말이냐"고 원통해 했다. 또, "여수시는 오현섭 전 시장이 주민과 약속했던 이주 택지 조성 구두 약속을 현 시장 당선 뒤 담당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며 약속이행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덕충동 이주 대상 주민들에게 합법적인 보상을 했고 전 시장과 약속했던 사항은 담당자도 모르는 사항"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또 "대책위원회가 주장하는 여수 돌산 지역 이주 택지 조성은 용도변경이 포함된 복잡한 사항으로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이행 불가"란다. 덧붙여 "공무원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답했다.

 

회의는 서로의 원색적인 비난뿐 뾰쪽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고성이 오가다 주민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모처럼 만난 자리는 의미 없이 끝났다.

 

세계박람회 화려함 뒤 눈물짓는 시민 많다면 박람회 성공이 무슨 의미일까?

 

회의 후 시 관계자 말을 들었다. 한 마디로 주민들의 이주 택지 조성 주장은 터무니없단다. "보상이 마무리됐고 소유권이 시행사인 LH공사로 넘어가서 여수시 권한 밖의 일"이라 말했다. 또 "전 시장과 약속은 공문도 없고 그 내용도 담당 공무원은 모른다"며, "공무원이 모르는 사항인데 약속이라며 택지를 조성해 달라는 것은 억지"란다. 서로가 팽팽한 대립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질 않는다. 결국 주민들은 더 강경한 자세로 나갈 모양이다. 그 끝이 어디든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을 일이다.

 

여수에서 세계박람회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나 행동하면 왕따된다. 시의 모든 행정과 재정은 세계박람회에 집중돼 있고 행정영역 밖도 매 한가지다. 여수는 박람회에 올인하고 있다. 대책위원회 천막농성에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대책위원회가 거리에 앉은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박람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주민과의 격한 대립이 예상된다. 대책위원회는 항의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단식에 이은 삭발과 대규모 집회를 계획 중이다.

 

세계박람회는 여수를 눈부시게 변화시키리란 장밋빛 청사진뿐이다. 박람회의 화려함 뒤편에 눈물짓는 시민이 많다면 여수 세계박람회가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늦지 않았다. 여수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대책위원회는 격앙된 마음 가라앉히고 서로 해결책을 찾는다면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의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회의장에서 들었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 씁쓸하다.

 

"정든 고향 쫓겨나 남의집살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엑스포를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와 대안이 없다면 어쩌란 말이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복지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계박람회, #덕충주민이주보상대책위원회,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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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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