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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경내 대웅전 앞에 있는 동남아 최대수령의 은행나무
▲ 은행나무 용문사 경내 대웅전 앞에 있는 동남아 최대수령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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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주말을 잘 보냈느냐? 몸살 나지 않았느냐? 인사를 건네온다. 전 주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경주지역으로 전문목수과정 건축답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목요일 오전 7시30분에 출발해 금요일 오후 8시경 한옥학교에 도착한, 훈련과 같은 고된 일정이었다.

토요일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집에서 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강원도 홍천이다. 한옥학교를 다니기 위한 임시 거처다. 집사람은 내가 건축답사를 다녀오는 동안 혼자 보냈다.

집사람에겐 주말 산행이 다음 일주일을 살아갈 마음의 양식이다. 주말을 기다리는 집사람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집사람이 소형가전제품매장을 운영하던 7년 동안, 거의 매 주말 산행했던 습관에서 비롯한 결과다. 전 주말에는 부모님 기일이라 산에 가지 못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쉬기로 하고 등반할 용문산에 골랐다. 집사람이 가끔 다니는 황토 찜질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용문산을 권한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위치, 등산로와 같은 등산에 필요한 정보를 모아 출력하였다. 그동안 집사람은 점심과 간식을 챙겼다. 홀로서기도 힘든 몸을 일으켜 용문산 등산길에 나섰다.

정상에서 상원사로 내려오는 등산길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으나 실재로 많은 부분이 끊겨있다. 청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가시덩쿨이 우거져있고 길도 찾기 힘들었다.
▲ 용문산지도 정상에서 상원사로 내려오는 등산길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으나 실재로 많은 부분이 끊겨있다. 청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가시덩쿨이 우거져있고 길도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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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정상까지

숙소에서 용문산까지 거리는 39km 이다.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용문산(1157.2 m)은 화악산(1468 m), 명지산(1267 m), 국망봉(1168 m)에 이어 경기도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다. 깊은 계곡, 기암괴석과 고산 준령을 고루 갖춘 산이다.

용문산은 험난한 바위산으로 정상은 중급자 이상이 갈 수 있는 산행코스다. 약간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강원도로 이사 와서 이미 화악산, 용화산, 팔봉산을 등반한 터라, 몸 상태에 적신호가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기로 했다. 스스로 자신을 중급자 이상으로 여긴 자신감이 한몫 거들었다.    

용문사 주차장 매표소에 이르러 돈을 내려고 했더니 매표원이 돈 받을 생각을 않고 용문사까지 가는 차 길을 자세히 알려준다. 우리가 타고 온 트럭을 보고 절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로 생각한 모양이다. 집사람이 돈을 내려는 나의 소매를 슬며시 잡아 끈다. 개구쟁이 소녀 모습이다. 일하러 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주차장을 지나 용문사 턱 앞까지 단숨에 이르렀다. 아주 별다른 맛이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동남아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됐다는 은행나무가 대웅전 앞을 치지하고 서있다.  꽃말이 장수, 정숙, 장엄함인 은행나무는 화재에도 잘 견디고, 재생력이 좋고, 환경오염에도 강해 도시 지역의 가로수로 각광받는다. 나에겐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좋은 징코민 때문에 소중한 인상이 남은 나무다. 잎도 열매도 다 떨어지고 덩그러니 몸체만 남았음에도 그 위용에 눌려 경외심이 인다. 그 앞에서 한동안 경배하고 등산길로 접어든다.

용문산은 바위산이었다. 깊은 계곡입구인 절 뒷길로 접어드니 각을 세운 굵은 바위들이 젊고 살아있는 산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젊은 기를 받은 수 있는 것은 좋았으나 날카로운 바위들은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 중심이 잘 잡히지 않은 몸을 조심하여 길을 나아간다. 용문산을 소개하는 책자에 산행코스가 험하다고 해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상까지 3.2km 거리는 약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산에 다닌 경험에 의하면, 코스가 길고 짧고, 험하고 완만하고를 떠나 등산은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들다. 한두 시간 지나야 시쳇말로 발동이 걸린다. 한 시간 반 정도 묵묵히 걷다 보니 '마당바위'에 이르렀다. 지도에 표시된 첫 번째 이정표 지점이다.

겨울철이라 계곡에 물이 많지 않았지만 젊은 바위돌에서 풍기는 기운이 강했다.
▲ 용문산 계곡 겨울철이라 계곡에 물이 많지 않았지만 젊은 바위돌에서 풍기는 기운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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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바 한 개를 배급 받은 나는 황송한 마음으로 꼭꼭 씹어먹었다. 힘이 갑절로 솟는 것 같다. 초콜릿을 비롯한 과자들은 나 같이 혈당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먹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급한 체력 소모로 저혈당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에서 한 개 정도 허용된다.

마당바위에서 한 시간 정도 급한 경사길을 오르다 보니 용문봉에서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마루금가 나왔다. 지도로 고도를 산정해보니 950m가 넘는 능선의 안부다.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기온이 급히 떨어지고 시계도 불량해진다. 저 넘어 용화산 정상이 있겠지만 보여야 할 곳에서 보이지 않으니 내심 불안해진다.

간간이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용문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9시 반 경에 시작했는데, 낮 12시가 넘고 있다. 시간에 쫓길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다. 가끔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며 길을 재촉한다.  우리가 힘들어 보이는 모양이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격려의 말을 던진다. "고생하셨습니다. 다 오셨습니다."  

정상에 서린 짙은 운무 때문에 전망이 없어 서운했지만 나무가지의 설화로 변하는 안개는 또 그런대로 좋았다.
▲ 용문산 정상에 선 집사람 정상에 서린 짙은 운무 때문에 전망이 없어 서운했지만 나무가지의 설화로 변하는 안개는 또 그런대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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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습기 때문에 얼음으로 피복한 은행잎 모형과 표식천은 잘 어울리는 앙상블이었다.
▲ 정상의 은행잎 조형물 안개의 습기 때문에 얼음으로 피복한 은행잎 모형과 표식천은 잘 어울리는 앙상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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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반이다. 몇 년 전까지 군사지역이라 출입을 통제했던 흔적인 철조망 출입구를 넘어서니 용문산 정상이다. 짙은 안개와 함께 몰아치는 찬바람은 서 있기 조차 힘들다. 정상 표시석을 잡고 힘껏 들이키는 찬 공기는 허파꽈리의 잔주름 속까지 파고든다. 아주 찬 느낌은 서기(瑞氣)에 닿아 있는 것 같다.

하산길

정상에 세워진 철로 만든 나뭇잎 조형물과 거기에 매달아 표식천은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향하는 염원의 상징 같다. 슬며시 손을 대본다. '차다'는 느낌이 '춥다'는 느낌으로 바뀐다. 서둘러 하산하다 보니 장군봉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다.  바람막이 바위 뒤로 돌아가 준비해온 점심을 꺼냈다. 얼음덩어리가 된 밥이 사각거린다. '밥은 사람을 움직이는 연료다.'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다. 

왔던 길로 내려가면 좋으련만, 원기를 회복한 집사람이 장군봉쪽으로 하산길을 바꾸잖다. 걸어야할 거리가 적어도 3~4 km 늘어난다.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화악산 등반 때와 달리 비상식, 압박붕대, 무릎보호대, 손전등이 준비되어있다. 나침반, 비박장비가 없고 방한복이 미흡하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장군봉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급히 떨어진 기온과 안개는 합작으로 설화의 천국을 만들었다. 그 속을 걷는 우리는 당연히 신선이 되었고 ......
▲ 장군봉 하산길 급히 떨어진 기온과 안개는 합작으로 설화의 천국을 만들었다. 그 속을 걷는 우리는 당연히 신선이 되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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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도 못 가 시계는 5~6m 이내로 좁아 든다. 불안한 생각이 스쳐가지만, 갑자기 설화(雪花)가 만발한 환상의 세계가 됐다. 좋은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볼 욕심으로 이리저리 해 메고 다니다 보니 능선에 있어야 할 강한 바람이 없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위로 나 있다.

주위를 자세히 살피며 상황을 판단해보니 우리는 분명히 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길은 선명하다. 능선의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로 판단하고 계속 전진했다. 급히 계곡 쪽으로 떨어진다. 시간은 2시가 조금 지났다. 장군봉 코스를 벗어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도를 놓고 판단해보니 상원사로 바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분명히 지도에도 등산로로 표시되어있고 처음엔 선명한 등산길이었지만 내려갈수록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길어 없어졌다. 집사람의 등반대장에 대한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젊을 때 다소곳한 아낙이 아니다. 할말도 없다. 화악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용화산에서도 길을 잘못 들었다. 강원도나, 서울 이북의 경기도에는 산이 무척 많다. 그래서 인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도 이정표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겨우 찾은 길이 자주 끊긴다. 칼날 같이 날이 선 길이 아닌 바위너덜 위를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은 지체되고 집사람 불평은 늘어간다.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험한 하산길이다. 등산용 지팡이로 가시덩쿨을 치면서 전진해보나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보통 어려움이 아니다. 고장 난 집사람 무릎상태가 걱정스럽다.

고도를 낮추니 시계가 양호해지면서 건너편에 장군봉으로 판단되는 절경의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산이 많은 지역이라지만 이런 아름다운 계곡을 지나는 등산길이 없을 수 없을 것 같다. 갖은 고생을 하며 2시간 급한 경사길을 내려왔다. 사찰로 보이는 건물이 나타난다.

반갑고, 궁금하고, 야속하다.  험한 고생 끝이라는 생각에 반가웠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절은 도대체 무슨 절일까? 우리가 가야 할 용문사까지는 얼마나 떨어졌는지 퍽 궁금하다. 이 사찰의 의도적이거나 또는 방치에 의해 기존의 등산로가 폐쇄 지경이 됐다. 하산 도중 안내판은 커녕, 표식천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등산로는 사찰 안으로 연결되어있고 사찰의 윗부분은 수행공간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있었다. 이게 부처님의 뜻인가 싶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용문사까지는 2.5km 떨어져 있고 시간은 4시에 가깝다. 서둘면 용문사까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발자국도 더 못 가겠다는 집사람을 달래면서 한 시간 반 정도 다시 산길을 다시 오르내리다 보니 이침에 떠난 용문사이다. 은행나무가 보이고 우리가 타고 온 트럭이 곁에 있다. 주차장까지 몇 km 더 걸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너무도 절실한 고마움이었다.

용문사 앞 전통찻집에서 등산 후 마시는 한잔의 차 맛은 아주 각별했다.
▲ 전통찻집 용문사 앞 전통찻집에서 등산 후 마시는 한잔의 차 맛은 아주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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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 매장에서 등산용 내비게이터를  주문했다.


태그:#용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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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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