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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박용만 ⓒ 독립기념관

박용만은 이승만, 안창호와 함께 미주 3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이었다. 1912년 정치학 전공으로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와 하와이의 <국민보> 주필을 지냈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력투쟁론'이었으며, 네브래스카 주와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창설해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변절자라는 누명을 쓰고 1928년 동족의 손에 암살됐다.

 

올해는 국치(國恥) 100년으로 잉걸불과 같은 그의 삶과 투쟁을 재조명하고자 평전 <박용만과 그의 시대>를 엮는다... 기자 말

 

 어른들이 송사에 얽매 있을 때도 한인들의 새싹들은 자라고 있었다.
어른들이 송사에 얽매 있을 때도 한인들의 새싹들은 자라고 있었다. ⓒ 독립기념관

2월 11일 국민회관에서 벌어진 폭력사태에 대한 재판 중 이승만에 이어 증인대에 선 사람은 <국민보> 주필 유상기였다. 안현경이 여학생에게 전해달라는 2백 달러를 착복한 후 오리발을 내밀자 박용만파는 송금자인 본토의 서학빈에게 전보를 보냈다. 사실 여부를 알려 달라고 2월 초 급히 전보를 친 것이다. 서학빈 역시 그 돈은 오로지 여학생의 여비를 총회장 안현경에게 의탁한 것이었다고 답전했다. 자세한 전말의 편지도 보냈다. 그 전보와 편지를 이승만 파인 유상기가 보자고 하더니 탈취해서 달아났다.

 

기실 그건 한 편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드라마였다. 2월 11일 오후 5시 의회는 정회하고 사람들이 헤어지는 참이었다. 주필 유상기가 유동면에게 다가왔다.

 

"여학생의 전보와 편지를 당신이 가지고 있소? 어디 좀 봅시다."

"이게 관련자 세 사람이 인장을 누른 편지요. 우선 편지부터 보시오."

 

유동면이 내줬더니 유상기는 그걸 들고 다라나기 시작했다. 유동면은 빼앗으려고 유상기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다른 이승만 파 사람이 유동면을 등 뒤로 붙잡았다.

 

유상기는 뒤돌아 유동면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다시 다라나려 하자 그 앞에 있던 박용만파 사람이 왜 남의 편지를 가지고 도망하느냐고 제지했다. 그러자 이승만파 두 사람이 그 사람을 뒤로 와서 주먹으로 치고 의자로 내리쳤다.

 

때마침 총회관 내 <국민보> 사무실에서 일하던 김한경이 싸움을 말리려고 나섰다. 그러자 이승만파 사람들이 김한경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찼다. 또 접이의자로  그의 머리를 내리쳐 유혈이 낭자했다.

 

유동면은 이 광경을 보고 김한경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발길질을 했다. 이승만파 사람들을 흩어놓음으로써 김한경은 가까스로 위험한 지경을 면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 재판 과정을 3월 28일자 <신한민보>는 이렇게 전한다.

 

"변호사는 유상기에게 물었다. '2월 12일 일어난 분쟁에서 당신이 유동면씨(박용만파)가 가진 편지를 보자고 했는데 왜 보자고 하였느냐?' '신문에 내려고 보자 하였다.' '그 편지를 받은 후에 곧 달아나지 않았나?' '나는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했느냐?' '달아나지는 않았으나 걸음은 빨리 걸었다.' 하매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10여 명 배심원과 좌우편 변호사들과 일반 방청들은 곧 웃음판이 됐더라.

 

또 변호사는 유씨에게 '약소국동맹회의 연조를 받아먹은 일이 없느냐?' 물은 즉 유씨는 거기 대해 변명하기를 '돈은 받아먹은 일은 없고 다만 영수증을 떼어주고 돈을 받지 않았다.' 하는지라 이때 재판정은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변호사는 그것을 불계하고 또 묻기를 '그 돈을 다 의회에 들여 놓았느냐?' 하매 유씨는 대답하거늘 '그 돈은 다 의회에 들여 놓았는데 여러 대의원들은 나의 애매한 것을 아는 고로 의회를 닫은 후에 그 돈을 다시 내어주었다.'라고 하니 이는 대개 유씨가 고발한 편에 증인으로 문답한 것이다." (주(註) - 유 씨가 편지를 강제로 탈취한 것은 신문에 내기 위함 보다 증거물을 빼앗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이승만파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난동을 부렸다고 박용만 파를 고발했는데 외려 자신들의 비리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배심원의 판결로 박용만파 네 사람 유동면, 김석률, 김한경, 이찬숙은 무죄 석방됐다. 이승만과 안현경은 네 사람이 난동을 부렸다고 2월 15일 경무청에 고발했던 것이다.

    

3월 8일의 법정에서 이승만의 고발이 기각되고 박용만파의 피고소인 네 사람이 석방되자 이승만은 <국민보>에 자신의 심경을 두루 밝히고 박용만에 대한 견해도 공표했다. 그 전문이 <신한민보> 3월 14일자에 실렸다.

 

 난파선처럼 파도에 휩쓸리는 하와이 동포사회
난파선처럼 파도에 휩쓸리는 하와이 동포사회 ⓒ Gaeddal(저작권 해제)

"박용만씨를 해하려 한다는 말을 볼진대 우리 알기에는 박용만씨를 해코자 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는 하나도 없고 저자들이 저희끼리 선동하여 박용만 씨의 형편을 점점 어렵게 만들 따름이라.

 

1915년 풍파 시에도 박씨가 미주에 갈 때에 박씨를 돕는 자들이 국문과 영어신문에 드러내어 떠들기를 이승만이가 박용만을 죽이려 해 박용만이가 피해 미주로 갔다 하며 미주에서 어떤 못된 자의 구타를 당한 후 전보 내왕과 국문 영문 신보에 또 드러내어 이승만이가 자객을 보내어 박용만을 죽였다고 떠드는지라 더 어리석은 자들의 소견은 이것을 다 이승만이가 뒤집어쓰고 박용만은 우뚝하게 드러날 줄로 알았지만은 앉아보건대 박씨를 해롭게 한 것뿐이라.

 

지금에 또 이런 허무한 낭설을 조작하여 인심을 선동하는 것은 누구를 지목함인지 모르거니와 이런 일의 결과는 손해가 필경 박용만씨에게 밖에로 돌아갈 곳이 없을지라.

 

우리 보통 동포들은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고 중요한 기관과 좋은 기회를 박용만씨에게 여러 번 맡겼나니 박용만씨가 또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고 동포의 공동히 원하는 사업에 합동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기만 바랐는데 지금까지 해 오는 것을 볼진대 박씨가 저자들을 따르는지 저자들이 박씨를 따르는지 함께 덩어리가 돼 피차 떨어지지 못하며 해마다 동포의 원하는 바는 절대적으로 반대해 번번이 풍파를 일으키니 박용만씨는 비록 그 중에 간섭이 없다한들 어찌 동포의 책망을 면하리요.

 

한인 전체가 이 사업을 이루려 할수록 저자들의 반대는 우심하며 저자들의 반대가 우심할수록 박씨에게 돌아가는 책망이 우심한지라 만일 박용만씨가 이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면 시세에 어두운 인도자요 알고도 짐짓 모르는 채 할진 데는 모든 동포에게 책망을 들어도 칭원할 수 없도다."

 

 1918년 테러가 또 벌어졌지만 그 4년 전 '알로하 카니발' 때 만 해도 국민회는 퍼레이드에 꽃차를 띄웠다.
1918년 테러가 또 벌어졌지만 그 4년 전 '알로하 카니발' 때 만 해도 국민회는 퍼레이드에 꽃차를 띄웠다. ⓒ 독립기념관

1월 15일 열린 국민회 대의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박용만파 네 사람이 고발을 당하고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박용만파는 우선 각 지방의 동조자들끼리 2월 10일 연합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연합회 이름으로 총회장 안현경의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하며 관철될 때까지 회비납부를 거부하기로 했다.

 

<국민보>는 총회장을 옹호해 공리를 죽이고 공론을 압박하며 다만 총회장의 죄악을 가리기로만 진력하니 신문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비판했다. 연합회가 존속할 때까지 자체적으로 '연합회 공고서'를 발행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이상묵은 196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고 1969년 이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거주하고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인으로 데뷔한 후 모국의 유수한 문학지에 시들이 게재됐다. 시집으로 '링컨 生家에서'와 '백두산 들쭉밭에서' 및 기타 저서가 있고 토론토 한국일보의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 선생' 다음 카페(후손이 꾸민 명작 카페)
방선주 저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안형주 저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김현구 저 'The Writings of Henry Cu Kim'
신한국보, 국민보, 공립신보, 신한민보, 단산시보 등 1백 년 전 고신문들.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자료들.
독립운동가 열전(한국일보사) 등등.


#박용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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