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이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1년여만에 또다시 대규모 정리해고 방침을 밝힌 가운데,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야당들이 공동 대응하며 '한진중 살리기'에 나선다.
한진중 사측은 지난 15일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에 공문을 보내 '인력조정 관련 노사협의 참석'을 요청했다. 사측은 내년 1월 5일자로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고, 2월 7일자로 400여명을 정리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해 온 것이다. 현재 생산직 노동자는 1200명 정도로, 대부분 노조에 가입해 있다.
한진중 사측은 지난해 말에도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다가 노조와 심한 갈등을 빚고, 올해 2월 말 '정리해고 중단'에 합의했다. 한진중은 2009년 12월 희망퇴직 349명, 정년퇴직 61명, 2010년 2월 희망퇴직 60명을 포함해 당시 470명이 회사를 떠났던 것.
한진중 사측은 1년여만에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다. 사측은 수주를 하지 못해 2011년 6월 이후부터 '업무량 고갈'인 데다 '수주 경쟁력 저하', '경영실적 악화'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한진중 살리기 부산시민대책위' 결성 20일한진중 영도조선소는 부산지역 최대 기업체이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생민주부산시민행동'과 민주노총 부산본부, 금속노조 부양지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부산시당 등 야4당은 '한진중 살리기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부산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오는 20일 영도조선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연다.
민생민주부산시민행동은 "이번 한진중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은 한진중이 장기적으로 영도조선소를 축소․폐쇄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 "영도조선소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전국 100위 내 사업장으로 부산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이다. 영도조선소의 축소․폐쇄는 조선기자재산업 중심의 부산이 몰락하는 계기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이날 출범 기자회견에는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인사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진보신당 부산시당에 따르면, 조승수 대표는 이번 한진중 구조조정과 관련해 "해마다 정리해고 하겠다고 덤벼드는 기업은 한진중 밖에 없을 것 같다"며 "경영이 어렵다면서 1년 동안 정리해고 말고는 다른 대안을 만들지 못한 무능한 경영진부터 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조 대표는 "말로는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수빅 조선소를 통한 저가입찰에만 목매달고 있는 것이 현 경영진"이라며 "글로벌 기업이라는 한진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행태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며 한진중 사측을 비판했다.
한진중의 정리해고 통보 이후 민주노동당 부산시당과 진보신당 부산시당은 각각 성명을 내고 한진중 사측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금속노조 지부 "정리해고 하루 뒤 주식 배당 결정이 뭐냐"
한진중 사측이 구조조정 방침 다음 날인 16일 주식 배당 결정을 내리자 노동계가 비난하고 나섰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양지부는 "한진중은 16일 오후 5시 58분에 '주식 1주당 0.01주'를 배당한다"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정리해고 방침을 밝힌지 하루만이다.
배당주식총수는 47만7883주이며, 17일 현재 1주당(액면가 5천원) 매매가는 3만6000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어, 174억 이상을 주주들에게 배당한다는 것이다.
노조 지부는 "생산직 1200명 가운데 1/3인 400명을 경영이 어려워 정리해고 한다면서도 파렴치한 경영진은 거액의 주식배당을 결정했다"며 "전자 공시된 한진중 3/4분기 보고서에는 4명의 사내이사가 1인당 1억9900만원의 임금을 받았는데, 모두 7억9900만원이다"고 밝혔다.
4명의 사내이사는 조남호 회장(대표이사), 이재용 사장(조선부문 대표이사), 조원국 상무(조선영업본부장, 조남호의 아들), 송화영 사장(대표이사, 건설부문)이다. 3/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익잉여금이 1055억5950만원에 이른다.
노조 지부는 "한진중 사측은 경영실적악화의 책임을 스스로지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살인과도 같은 불법적인 정리해고를 2년째 저지르고 있다"며 "수주가 안 된다면 조선수주 담당 상무와 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데 9개월 동안 2억원에 가까운 임금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노조 지부는 "이번 구조조정이 끝나면 부산경제를 망치고 노동자 일자리를 통째로 없애는 공장폐쇄 수순으로 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존재하고 있다"며 "죽음과도 같은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 총파업을 포함한 모든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지회, 20일 파업 출정식 ... "정부-부산시 나서라"노조 지부․지회는 17일 "구조조정 관련 협의에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사측에는 "현 사태를 유발한 책임자를 경질할 것"과 "희망퇴직→정리해고를 철회할 것", "2009년, 2010년 성과에 대한 성과급을 배분할 것, "물량을 확보하고,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가져간 8척의 배를 영도조선소로 돌릴 것" 등을 요구했다.
노조 지회는 20일 오전 한진중 영도조선소에서 파업 출정식을 갖는다.
정부와 부산광역시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 지회는 "한진중 조남호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 동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한진중 경영진의 오판에 적극 개입하여 국내조선산업과 국내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부산시도 말로만 부산경제 운운하지 말고,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서 영도조선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