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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과 연결돼 가덕도에서 거제도로 넘어가는 부분의 거가대교 원경이다. 너무 지친 탓인지 고작 저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 거가대교 휴게소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원경 해저터널과 연결돼 가덕도에서 거제도로 넘어가는 부분의 거가대교 원경이다. 너무 지친 탓인지 고작 저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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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의 바닷길(?)은 당분간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세계 최대의 수심을 통과하는 해저터널이라는 둥, 다리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둥 신문과 방송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기에, 지난 19일 거가대교를 찾았다. 부산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사이 8.2㎞를 해저와 해상으로 연결한다는 거가대교.

주말인데다 12월 14일 개통하자마자 유명세를 치렀으니 교통 체증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해 오전 5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챙겨 길을 나섰다. 이곳 광주광역시에서 부산까지 쉬엄쉬엄 가도 세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니 오전 9시 이전에 정체를 피해 거가대교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밤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짓날을 코앞에 둔 까닭에 당일 새벽은 과연 오전 7시가 되어도 동이 틀 줄 몰랐다. 내 차만을 위한 전용도로인양 반대 방향의 차조차 거의 없는 고속국도를 거침없이 달려 예상대로 오전 9시 이전에 남해지선 고속국도 가락 나들목을 벗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과 수 분 후부터 겪게 될 고통을 짐작조차 못했다.

곳곳에서 아우성... 특히 화장실 문제는 심각

주차장이 된 도로 사이를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려 걷고 있다. 화장실을 찾아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도 보인다.
▲ 차라리 걷겠다는 관광객들의 행렬 주차장이 된 도로 사이를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려 걷고 있다. 화장실을 찾아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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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대교에 이르는 왕복 8차선 가락대로에 접어들자마자 사달이 났다. 주변의 공사장을 드나드는 덤프트럭과 레미콘 행렬에다 어디선가 나타난 대형 관광버스들이 거대한 성체처럼 넓은 도로를 장악해 버렸다. 그 많은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하나 같이 산악회 팻말을 달고 있었지만, 목적지는 모두 바다 밑이었던 셈이다.

그 틈새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승용차들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거가대로는 삽시간에 넓은 주차장이 돼 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량의 움직임은 더뎌졌고, 끝내 운전자를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차량에서 내려 걷는 상황이 벌어졌다. 네 시간여 동안 찔끔찔끔 간 거리가 고작 걸어가도 채 두 시간이 안 걸리는 7㎞였다.

간식은커녕 물조차 준비되지 않아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화장실 문제는 심각했다. 어린아이들과 남자들이야 대충 몸을 가린 채 길가에다 '실례'를 한다지만, 여자들은 해결이 쉽지 않았다. 가다 만난 딱 하나뿐인 주유소 화장실은 느닷없이 대목을 맞았고, 늘어선 줄이 흡사 전쟁통 난민촌 같았다.

도로 주변에 널브러진 공사장 자재 뒤에 쪼그려 앉아 볼일 보거나 다급한 몇몇 사람들은 아예 멈춰버린 대형버스 옆에 서서 해결했다. 정오를 넘어 오후 1시가 다 되었지만, 정체는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의 하소연에다 아이들이 배고픔에 칭얼대는 소리까지 얹혀졌다.

대로 주변엔 점심을 해결할 식당은커녕 과자부스러기 하나 살 만한 가게조차 없었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부산 신항역에 정차된 기관차와 컨테이너 박스 그리고 녹산공단에 입주한 성냥갑 같이 생긴 공장 건물들뿐이었다. 배고픔에다 지친 어린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한 건 동병상련의 고통을 겪고 있는 바로 옆 차량에 탄 사람들이었다. 챙겨온 간식과 물을 서로 나누었고, 정부와 지자체의 무대책을 성토하며 도로 위 '이웃사촌'이 됐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교통상황은 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도로 위 교통경찰조차 있으나 마나였다. 교차로에서 꼬리를 무는 차량을 막아 세우는 일 외에는 주차장인 된 도로를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더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또, 거가대교 교통 체증 문제 때문이냐'고 짜증 내듯 말했다. 하루 종일 경찰서 민원 전화가 북새통이었던 거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다섯 시간을 넘어서자 '꿈의 바닷길'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차량이 속출했다. 기실 콘크리트로 된 중앙분리대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유턴했을지도 모른다. 내 차 바로 앞 수더분한 인상의 아저씨도, 옆 차선에서 나란히 가며 손자를 안고 운전했던 할아버지도 결국 '고지'를 불과 몇 ㎞ 앞두고 '기권'하고 말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부산이나 울산, 창원 등지에서 온, 이곳과 비교적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었다. 하긴 광주나 대전, 심지어 서울이나 춘천에서 어렵사리 찾아온 나 같은 사람들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겠지만, 선뜻 운전대를 꺾을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또 한두 시간이 도로 위에서 지나갔다.

'바가지' 알밤 장사꾼이 구세주가 되는 현실

식당도 가게도 없는 도로에서 알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부르는 게 값이었고,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 대목을 맞은 알밤 장수 식당도 가게도 없는 도로에서 알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부르는 게 값이었고,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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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교통경찰의 호루라기보다 시끄러운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좁은 차선 사이를 옮겨 다니며 어른 손톱만한 군밤을 파는 장사꾼들의 호객 행위로 도로가 더욱 어수선해졌다. 교통 체증을 뚫고 길목마다 자리잡은 그들의 '순발력'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렇잖아도 꽉 막힌 도로에서 인도 쪽 차선 하나를 차지한 채 버젓이 장사하고 있는 그들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점심을 걸러야 하는 사람들, 특히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쌌다. 고작 손톱만 한 알밤 스무 개 남짓 들이 한 봉지가 5000원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000~3000원에 팔리는 그것이 이곳에서는 '시장 논리'대로 두 배로 뻥튀기돼 팔리고 있는 셈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대목을 맞은 장사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로변에 마트나 편의점, 아니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있었더라면 그들의 횡포가 그와 같지는 않았을 테지만, 가격을 서너 배 더 올려 받는다고 해도 팔릴 만큼 도로 사정은 절박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고,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가락 나들목에 들어선 지 여섯 시간을 넘긴 오후 3시경, 거가대교가 시작되는 눌차도에 가까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녹산공단을 갓 벗어나 거가대교에 오를 무렵, 도로가 왜 그토록 막혔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교차로마다 새치기를 하려는 얌체족들과 그것을 방치한 채 애꿎은 신호등 조절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교통경찰들의 무기력함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던 거다.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대부분의 공단이 그러하듯 거가대교 입구의 녹산공단은 도로가 바둑판 모양으로 뻗어 있어 대략 200~300m 간격으로 네거리 교차로가 나 있다. 그곳마다 거가대교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그 차들 대부분이 꽉 막힌 가락대로에 줄지어 서 있다가, 앞선 교차로에서 슬며시 벗어나 주변 도로를 타고 다음, 그다음 교차로를 통해 진입하려는 얌체족들이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바닷길

광주광역시에서 부산광역시 가락 나들목까지는 세 시간, 가락 나들목에서 녹산공단 입구까지는 네 시간. 그야말로 교통 지옥이었다.
▲ 네 시간에 고작 7킬로미터? 광주광역시에서 부산광역시 가락 나들목까지는 세 시간, 가락 나들목에서 녹산공단 입구까지는 네 시간. 그야말로 교통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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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차로마다 차들이 엉켜 꼬리를 물면서 거가대교에서 부산 방향으로 나오는 차들의 통행마저 막는 상황이 연출됐고, 도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녹산공단의 도로와 교차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교통경찰은 이를 충분히 예상해 진출입 교차로를 사전에 통제하고 흐름을 원활하게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다.

도로변 가로등마다 '꿈의 바닷길' 개통을 경축한다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2011년은 거제 방문의 해'라며 들떠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칠게 말해서, 달랑 거가대교 하나 믿고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의 배짱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곳곳에 형형색색의 현수막을 내걸고 방송이나 신문에 광고를 내보낼 정성과 예산이 있다면, 우선 거가대로에 이르는 도로변에 간이 화장실과 휴게시설 몇 개라도 설치해 달라. 교통경찰에게도 바란다. 밀려드는 차량을 한숨 쉬며 멍하니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실시간 교통상황을 서로 연락해 운전자들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

개통된 지 얼마 안 됐으니 적어도 당분간 주말이나 연휴 때에는 전국의 차량들이 몰려들 테고, 경찰이고 지자체고 아무런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있다면 '지옥'과 같은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천신만고 끝에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를 빠져나와 통영에 이르러서야 '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아침과 점심은 준비해 간 간식으로 대충 때웠고, 오후 여섯 시가 돼서야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통영에서 출발해 고속국도를 타고 광주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저녁식사를 했던 그 짧은 시간을 빼곤 16시간 동안 자동차 안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꿈의 바닷길'이 아니라,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바닷길'이었다.


태그:#거가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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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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