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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8일)에는 1986년 5월 3일 당시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가 주최한 주부백일장 입상자들을 주축으로 태동, 약관(弱冠)을 훌쩍 넘긴 군산 '청사초롱문학동인회'(이하 청사초롱)의 스물한 번째 동인지 출판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청사초롱'은 86년 5월,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부 모임으로 출발하여, 87년 6월 12일 군산 신세계 다방에서 제1회 '시화전 및 문학의 밤'을 개최하고, 90년 창간호 <물빛으로 오는 노래>를 내놓은 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문집을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김재연 회장은 "소음 속에서 진실한 목소리를 가려듣기는 쉽지 않다고 하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을 글로 옮기는 문학, 특히 시와 수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마음이 통해서 공감할 수 있는 동인지가 되었으면 고맙고 행복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름(청사초롱) 폄훼로 한동안 고충이 있었는데, 'G20 정상회의' 기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품으로 지정되어 등으로 걸리고 마크로도 인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웠다"며 "이름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김순옥, 김재연, 박송월, 박정숙, 배환봉, 백승연, 백운순, 오경옥, 이경아, 이영순, 이효순, 조경숙, 최옥경, 최은수 회원이 1년 동안 틈틈이 써온 시, 수필 논평 등을 모은 동인지에는 소설가 라대곤(71세 채만식문학상 수상)의 수필 '향수(香水)'가 초대 글로 실려 있었습니다.

 

회원들 직업도 간호사, 교사, 학원 운영, 자영업 등 다양해 글에서도 오감이 묻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령층도 유치원생 자녀를 둔 40대 초반에서 귀여운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작품 소재로 다루는 70대 중반까지 다양했습니다.

 

전직 교사로 89년 8월 김해성이 발행한 한국시를 통해 등단한 이경아(63세), 86년 주부백일장에서 시 부분 장원을 차지하고 90년 1월 동양문학을 통해 등단한 백승연(67세), 93년 3월 포스트모던 시를 통해 등단한 조경숙(61세) 회원은 창립맴버라고 합니다. 

 

청사초롱의 큰언니 배환봉(75세) 시인에게 "딸 같기도 하고 며느리 같기도 한 회원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하시니까 정신연령은 50대 중반에 멈춰 있겠다"고 물으니 조용한 미소로 답하더군요. 그는 모임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갈 젊은 후배가 없다면서 30대 연령층이 많이 가입해주기를 희망했습니다. 

 

민주화 열기 속에 태동한 '청사초롱'

 

민주화 열기로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던 86년 당시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장을 맡아보면서 군산에 주부 문학의 산실 '청사초롱'을 태동시킨 이복웅 군산 문화원장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때(86년)만 해도 주부들이 글을 쓸 공간이 없었는데, 군산에서 최초로 주부 백일장 대회를 열었어요. 그런데 입상작들이 무척 좋은 거예요. 이대로 버려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소설가 홍석영, 시인 이기반, 시인 허소라, 최승범 선생, 이병훈 선생, 이건영 교수 등을 군산대학 세미나실에 모셔다 문학 강의를 열고 동인회를 구성했어요. 

 

모임 명칭도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순결, 청초함,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부덕 등을 상징하는 '청사초롱'으로 지었어요. 청사초롱은 첫날밤, 첫 만남, 나아가 고귀한 만남을 의미하니까요. 자녀를 키우면서도 창작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여러 회원이 중앙 문단에 나오게 되었고, 지금은 군산 여성문학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그때는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대부분 사람이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살림하는 주부가 창작활동을 하려면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모임이 어렵게 태어났다"면서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잘 버텨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처음에야 유치원생들 돌보듯 항상 함께 움직였지만, 지금은 모임의 고문이면서도 행사에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사람도 약관의 나이가 되면 자기 할 일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데 오죽하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아름다운 작품들

 

직업과 나이가 층층인 만큼이나 작품도 분광기에 나타나는 보석 색깔처럼 스펙트럼이 넓고 아름다웠습니다. 같은 소재를 놓고도 가치관과 이해가 달라 오해를 불러오기 쉬운 문학의 맹점을 보완해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아들과의 대화를 시로 표현한 <자화상>과 <행복 나누기>, 어버이날 부모 산소에 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해후>, 미국으로 떠난 문우와 화장대 서랍에서 풍기던 '엄마 향'을 분꽃으로 노래한 <꽃향>은 동병상련을 느끼게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박석들에 적힌 수많은 추모 댓글을 보고 느낀 감정을 시로 표현한 <울며 웃는 박석>과 천안함에 매몰된 꽃잎들을 안타까워하는 <더 늦기 전에>는 현직 대통령의 만용에 일침을 가하고, 독일의 쾰른 성당과 노천카페 부근 풍경을 담은 <라인강가의 오후>는 멀어져만 가는 평화통일을 붙잡으려 외치는 절규로 느껴졌습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압록강 철교를 아슴하게 그린 <끊어진 철교>, 생활에서의 소통과 단절을 어항의 열대어를 통해 그려낸 <유리벽>, 새만금의 꿈이 세계로 펼쳐나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새만금 그 역사>는 작품의 다양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수필 <미결수 K>와 <가장 불행해 보이는 이의 가장 행복한 이야기>, <동행의 아름다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느끼는 고소하고 달콤한 부부애와 갈등, 인류의 보편적 사랑, 짜릿한 감동과 애처로움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책자여서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었는데요. 책갈피 사이사이에 문학의 꿈을 쏟으면서 원고지와 싸웠던 흔적들이 엿보여서 그런지 작품들 내용이 생활에 자양분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짠순이 주부'들로 뭉친 문학모임, '청사초롱'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식당에 갔더니 썰렁하기에 스물한 번째 출간인데 축하 화분은커녕 현수막 하나 볼 수 없다니까 하나같이 "절약해야죠!"라고 하더군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는 회원도 있었는데요. "진짜 짠순이 주부들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회원들끼리 저녁을 먹으면서 자축하는 자리에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눌러앉아 있었던 이유는 작년 11월 말 스무 번째 출판기념회 때 취재요청을 받고 명함까지 내주면서 참석하겠다고 했다가 갑작스러운 일이 터져 1년 후로 미뤘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청사초롱'은 군산지역의 3대 여류문학 모임 중 가장 먼저 발족했고, 문학연수회, 문학 기행, 시화전 등에 연례행사로 참여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학에 대한 열망이 높고 친목이 두텁다는 게 선후배 문인들의 중평입니다. 더욱 정진하고 발전하기를 빌어봅니다.   

 

자작시 <상실시대>에서, 땅도 권력도 잃을 게 없으니까 마음도 편했다며 스스로 가난을 위로하며 살아왔다고 담담하게 밝히면서 70대 중반을 '가을'로 표현한 청사초롱 큰언니이자 군산 여성 문학의 대표주자 배환봉 시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덤, 그 희비의 갈림길

 

콩나물 천 원 값에도 한 줌의 덤이 흐뭇했고

엿 한 가락에도 인정은 정말 달콤했다.

평생 덤을 넘보며 살아온 인생인데

 

누가 언제 보이지 않는 線 그은 것인가

이쯤에서는 내 인생이 이제 덤이란다.

죽어도 그만이고 더 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삶의 뒤안길, 그 덤이란다.

 

콩나물의 덤은 그리도 흐뭇했건만

손가락 마디만큼의 엿가락은 그리도 달콤했건만

거창한 내 인생의 덤은 왜 이리 씁쓸하냐.

 

지리산 중턱 한 무더기 회색 고사목들

그 어느 사월에 칡덩굴이 몸을 감고 뻗어 올라

제 생명인 듯 착각하던 모습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세우더니

오늘 그 모습이 어찌 내게와 머무는가.

 

덤이라는데

이제 내가 의미를 새겨야겠다.

덤으로 받았으니 그냥 주자 그리고 그냥 나누자

여유, 그것이 덤이 아니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 청사초롱, #주부문학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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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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