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어떤 아이들 보면서는 진짜 충격 먹었어요. 이런 아이들 데리고 하루 4, 5시간씩 가르치는 선생님들 참 존경스러워요."22일 오전 2, 3교시 6학년 학생들 앞에서 직접 수업을 담당한 이명숙(53) 서울 양화초 교장. 그는 수업 뒤 "6학년 선생님들 한 해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사-학생간 '매질' 논란으로 학교가 술렁이는 이 때, 가르쳐 보지 않고서는 얻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한 셈이다.
대형 화면 앞에 선 몸집 작은 교장지난 해 3월 공모 교장으로 양화초에 온 이 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4-6학년 학생 700여 명 앞에 섰다. 모두 6시간에 걸쳐 수업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전국 1만여 개 초중고에서 수업하는 교장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 서울 한성여중 교장 시절 일 주일에 네 시간씩 수업을 담당한 고춘식 전 교장은 최근 계간<우리교육> 겨울호에 쓴 글에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고 선생님 곁으로 다가가는 방법으로 교장이 직접 수업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하는 교장은 주변 학교 교장에게 눈 흘김을 당하기 일쑤다. "수업하려면 왜 교장을 했냐"는 것이다.
이날 3교시 올해 이 교장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양화초 시청각실을 찾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6학년 6반부터 10반까지 5개 반 150여 명. 대형 프레젠테이션 화면 앞에 마이크를 잡고 선 이 교장의 몸집은 무척 작아보였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글로벌 시민과 우리의 진로'. 이 교장은 이렇게 입을 뗐다.
"이 시간은 어려운 수학문제에 머리 싸맬 이유도 없으니 편안하게 교장 선생님과 눈을 맞추면서 들었으면 좋겠어요."대부분의 6학년 교사들은 시청각실에서 나갔다. 이 교장이 수업하는 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 교장은 직접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돌려가며 미국의 가정교육과 예절교육 등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좋은 점은 배우고 어려운 점은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이 교장의 목소리는 무척 차분했다.
수업 시간 절반인 20여 분이 지나자 속삭이는 아이, 하품을 하는 아이, 눈을 감고 있는 아이들이 더러 나타났다. 이 교장은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딸 이야기, 남편 이야기'와 같은 개인 경험담을 중간 중간에 섞었다. "잘 듣는 학생은 나중에 선물을 주겠다"는 유혹의 말도 덧붙였다.
수업하려면 왜 교장됐냐고? "학생 알기 위해 수업할 것"
수업 끝나기 10분을 남겨 둔 시간. 이 교장은 다음처럼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퇴임했을 때 꿈이 하나 있어. 전통음식연구소에서 공부한 뒤에 자격증을 따서 학교에서 전통음식을 만드는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이에요. 꿈을 갖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나도 열심히 할 테니 여러분도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이어 자신의 수업료 못 내던 초중고 시절 얘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양화초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소속 학교다. 이 교장은 "가정이 어려워도 꿈을 갖고 살면 못 이룰 게 없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이제 상품을 주는 시간. 이 교장이 준비한 상품은 모두 8개다. 수업 중간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도 이 시간만큼은 손을 번쩍 들면서 아우성을 쳤다. 수업이 끝난 뒤 이 교장은 다음처럼 털어놨다.
"지난해엔 반별로 돌면서 했는데 이번엔 여러 반을 모아서 하다 보니 레포(공감대)도 형성이 되지 못하고 수업 준비도 덜 된 것 같아 부끄러워요. 하지만 학생들의 상황도 파악하고 선생님들 힘든 것도 알기 위해 내년엔 또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준비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윤근혁 기자는 서울양화초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