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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요즘 너무 바쁘세요. 봉사공연 다니시느라."

"연말이라 너나없이 바쁜 계절이잖아요? 그냥 바쁜 척하는 거죠, 호호."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하자 일행은 많이 바쁘다는데 정작 본인은 그냥 바쁜 척한다며 웃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이 되면 너나없이 모두들 바쁘다고 말한다. 무슨 모임이니 송년회니 하는 일정들과 함께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 때문에 마음까지 바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봉사하는 공연으로 정말 바쁜 사람이 있었다. 국악인 이혜용(여, 50)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런저런 뜻있는 행사에 참여한 몇 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한 것은 국악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빛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공연료를 받는 자리도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자리에 봉사하는 모습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악인 이혜용씨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 청량리에 있는 동대문노인복지관에서였다. 그곳에서 그의 역할은 대부분 70세 전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20여명 에게 무료로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복지관 정규 프로그램에서는 비록 적긴 하지만 일정액의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20여 명의 노인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수가 전혀 없는 동아리 모임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시간 30분 동안 그는 노인들에게 장구와 징, 꽹과리와 북으로 연주하는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금방 가르쳐 줘도 잊어버리거나 동작이 따라주지 않아 도무지 가락이 맞지 않고 엉망인 것이다.

 

같은 가락을 며칠에 걸쳐 아무리 애써 가르쳐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짜증이 날 것도 같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그런 짜증스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항상 벙글벙글 웃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짜증나지 않느냐고 묻자 '노인들인데 그러려니 하고 가르쳐야지 짜증내면 되느냐'며 그냥 노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인들과 더불어 즐겁게 연습한 사물놀이는 복지관 종합발표회에서 멋진 공연으로 수백 명의 관중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10여 분 동안 진행된 공연은 노인들이 완전히 소화하기에는 벅찬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툴기는 했지만 노인들은 즐겁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공연에 임했다.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솜씨가 서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앞에서 이끌어주는 이혜용 선생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우리들 수준으로는 아직 공연 못해요, 이혜용 선생님이 아주 재미있게 우리들을 이끌어주기 때문에 가능하지요."

"선생님이 앞에서 이끌면 저절로 힘이나요."

 

공연에 참가한 할머니 두 분의 말이다.

 

그렇다고 이혜용씨가 어정쩡하게 공부하여 그저 재미있게만 가르치는 얼치기 선생님은 절대 아니다. 이혜용씨는 국악고등학교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정통 국악인이다. 그리고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10여 년간 거문고 연주자를 역임하였고, 한소리 국악예술단 단장과 동대문구 문화예술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중견 국악인이다.

 

그런데 그 정도 관록이 있는 국악인이면 어느 공연에 참가하더라도 충분하고 깍듯한 보수와 예우를 받을 만한데도 그는 예우나 보수에는 초연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비록 무료봉사일지라도 노인들이나 장애우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연이면 기꺼이 달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었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부설 장애인복시시설 장애우들을 위한 송년모임 공연도 그랬다. 대부분 성인인 지체장애인들을 가르쳐 모듬북 공연을 함께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대부분 20세 전후로 신체적으로는 모두 성장한 어른들이었지만 지적수준과 정신연령은 3~4세 정도인 장애우들은 공연을 할 때도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툭툭 튀어나와 춤을 추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기처럼 칭얼거리며 울기도 했다. 그렇지만 장애우들은 6개월간 이혜용 선생에게서 모듬북 연주를 배우며 익힌 어설픈 솜씨로 즐겁게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비록 장단과 가락이 맞지 않고 매우 서툴렀지만 이혜용 선생을 바라보며 즐겁고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더구나 어설픈 연주를 하는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웃음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은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한 모습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에도 그는 장애우들을 친자식을 돌보는 엄마처럼 아껴주는 모습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깨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 칭찬과 격려하는 말로 장애우들에게 자신감과 안정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장애우들과 함께 연주한 모듬북 공연이 끝난 후에는 우리가락 가야금 병창으로 노래 세 곡을 불러 장애우들과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듬뿍 안겨주기도 했다. 밝게 웃음 띤 얼굴로 공연하는 그의 표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이 넘치게 했다.

 

천주교 성당에서 있었던 노인대학 방학식에서도 그랬다. 100여 명의 할머니들과 함께한 이혜용 선생은 예의 부드럽고 밝은 웃음으로 할머니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가야금 병창은 전통 우리가락이어서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호응했다.

 

특히 사물놀이 공연 중에는 웃음 띤 얼굴로 박수를 유도하여 할머니들의 박수소리와 사물놀이 장단이 함께 어우러져 분위기를 한결 높여주었다. 노인들과 장애우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다.

 

"요 며칠 사이 포천과 천안에 있는 노인들 요양원에도 위문공연 다녀왔어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불교행사나 일반 행사 가리지 않아요."

 

함께 공연에 참가한 일행의 말이다. 국악인 이혜용씨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물론이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국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료봉사공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한 대우를 받는 공연도 많았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곳에는 기꺼이 무료공연에 나서는 것이다.

 

"함께 배우며 가르치고 공연하는 노인들이나 어린이들, 장애인들이 제게는 모두 소중하고 정다운 사람들이지요."

 

그의 표정에서는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듬뿍 배어나오고 있었다.

 

"오후 공연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봉사공연이 유난히 많아 연말이 더욱 바쁜 국악인 이혜용씨는 동대문노인복지관에서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바삐 자리를 떴다. 국악계에서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세밑은 봉사와 공연으로 여간 바쁜 모습이 아니었다.


#이혜용#국악인#노인#장애우#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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