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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2시 군포시청 대회의실에는 약 250여 명의 시민들이 도종환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시인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포시는 '책 읽는 군포' 추진의 일환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밥이 되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좌를 주최하였다. 이 날은 도종환 시인이 강연자로 초청되어 시민들에게 '시에게 길을 묻다'라는 내용으로 두 시간에 걸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같이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비가 내리던 4월의 어느 날. 시인은 길에서 달콤한 향기로 부름을 받았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저마다 모두 자기 방식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꽃은 향기로, 벌은 춤으로 말한다"고 말한 시인은 향기를 따라 골목길 라일락 앞에서 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향기로 나를 불렀는가? 시인은 잠시 꽃과 대화를 나눴고 '라일락 꽃'이라는 그의 작품은 만들어졌다.

 

시인은 '라일락 꽃'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꽃은 최선을 다해서 핍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서 피는 꽃은 없습니다. 멈추지 않고 피고, 끝없이 살아 움직이며 핍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와 비교했을 때 열심히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라일락은 자신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꽃을 피우며 남에게는 아름다움을 준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라일락과 비교해서 나는 과연 열심히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효용의 가치, 경제적 가치로 재는 현실

 

꿩이 새끼를 데리고 종종 걸어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부모와 자식, 가족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인은 '꿩이 새끼를 데리고 걸어가는 예쁜 장면을 보면서도 샤브샤브가 생각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볼 때 효용성,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인은 우리의 관점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경계하자고 덧붙였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 전체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학생이었습니다."

 

이 날 강의에는 30여 명의 고등학교 문예창작반 학생들이 자리했다. 학생들은 잘 들어달라고 당부한 시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 책과 친해진 인연을 털어놓았다. 시인은 중학생 때 부모님이 사업을 실패하여 객지로 떠나고 집안이 해체되는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어려운 형편이었던 시인은 도서관에 가서 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인의 주변에는 언제나 읽을거리가 있었다. 늘 책을 읽고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사유의 눈이 생기고 다시 그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고 시인은 강조했다.

 

내 시가 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2주 전 출판사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에 거절했더니 책을 만드신 수녀님들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고 한다.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더니 추천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이 이야기했다.

 

학교 다니다가 잘못을 저질러 소년원에 갔다가 6개월간 수녀원에서 교화기간을 지내는 10대 소녀들을 지도하는 수녀님들. 가슴 한 가운데 고통의 블랙박스를 내장한 소녀들은 시설에서 견디지 못하고 툭하면 뛰쳐나갔다고 한다. 어느 날 말썽꾸러기들 중 한 명이 수녀님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어드린 후 "개화하기 전에는 이렇게 흔들리고 젖는 것이래요. 수녀님 사랑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썽꾸러기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이 내 시였다는 점에서, 한 편의 시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너무 고마웠다고 시인은 말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수강생들은 시인과 함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하는 시간을 가지며 시인이 되는 시간을 가졌다. 시를 읽어본지 오래된 중년의 어머님들부터,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까지 한 구절, 한 구절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내려 간다. 강연 시작 전 김윤주 군포시장은 인사말을 대신하여 시인의 작품인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독하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강사부터 수강생, 그리고 시장까지 그 자리에 모인 모두 '시인'이 되었다.


태그:#도종환, #군포시, #밥이되는인문학, #흔들리며피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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