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10년을 마무리하는 2010년 한국 경제도 뜨거웠습니다. 여러 대북 악재 속에서도 증시는 3년여 만에 2000선을 회복했고 스마트폰과 트위터 열풍은 IT뿐 아니라 경제 사회 전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반면 현 정부는 4대강 사업 강행, 한미FTA 재협상, 새해 예산안 날치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다른 10년을 시작하는 2011년을 앞두고 <오마이뉴스>는 그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을 만나 2010년 한국 경제를 되돌아보고 내년을 전망해 보는 기획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말] |
"한국 갈 일이 아쉽게도 없네요. 뭐 스카이프 같은 것으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국경은 없었다. 이달 초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임정욱(42) 라이코스 대표에게 트위터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대뜸 영상 통화를 제안했다.
"미국 TV 뉴스에는 스카이프로 하는 인터뷰가 매일 같이 나와요. 좀 건조하긴 해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 강남과 상암동 오가며 인터뷰해도 하루는 잡아먹는데." 지난 21일 아침 7시 노트북 캠코더를 켠 채 인터넷 전화로 임 대표를 호출했다. 미국 동부시각 20일 오후 5시. 시차만 빼면 보스턴과 서울간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카이프를 이용하면 1시간 넘게 영상 통화해도 요금은 공짜다.
아이폰발 모바일 혁명, 토종 IT 서비스를 흔들다스카이프뿐만이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IT 서비스, 그리고 아이폰, 아이패드, 넥서스원 등 모바일 기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서 시작된 모바일 열풍이 한국 시장에서도 끊임없는 화두가 됐던 한해였다. 지난 1년 한국 IT 시장을 돌아볼 적임자로 굳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임정욱 대표를 택한 것도 누구보다 이런 변화를 있게 한 인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중앙대에서 열린 제5회 복잡계 컨퍼런스에서 재밌는 논문이 하나 발표됐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현우씨가 한국인 15만 명의 트위터 자료를 분석해 트위터에서 정보 영향력과 의제 설정자 역할을 하는 트위터리안 '톱 10'을 뽑은 것이다. 그 결과 임정욱 대표(@estima7)는 국내 언론사와 트위터 스타들을 제치고 양쪽 모두 상위권에 들어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임 대표가 한국에서 '트위터 정보통'으로 통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임 대표의 트위터 팔로어(구독자) 숫자는 3만 명으로 김연아 선수의 1/10에 불과하지만 그가 미국 현지에서 쏘아 올리는 IT 관련 정보들에 국내 트위터 사용자들은 수많은 'RT(리트윗; 전달 기능)'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8월 한국에 다녀왔을 때만 해도 모바일도 막혀 있고 '해외 서비스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국내 강자들이 잡고 있었죠. 미국에선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뜨고 구글이 혁신하고 있는데 한국은 딴 나라 얘기고 마치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지난 3월 5일 저녁 임 대표 방한에 맞춰 서울 한남동 다음 사옥에서 열린 '트위터 모꼬지'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별다른 홍보도 없이 트위터로 날린 모임 공지에 100명이 넘는 트위터 사용자들이 모인 것이다. (관련기사:
트위터에 빠진 사장님 "옆집 아저씨 같아요" )
"트위터-페이스북 경쟁은 토종 SNS에게 기회될 것"네이버, 다음과 같은 국내 강자들 앞에 구글조차 기를 못 펴던 한국 IT 시장에 미국 발 스마트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열풍이 불어 닥친 시점이었다. 불과 1년 사이 한국 트위터 사용자는 몇 만 수준에서 230만 명(트위터 한국인 인덱스;
http://tki.oiko.cc/count)으로 늘었다. 임 대표는 그 기폭제로 '아이폰'을 꼽는다.
"아이폰이 시장에 자극을 줬어요. 지난 3월 한국에 갔을 때는 내가 아는 IT 업계 사람들 대부분 아이폰을 쓰고 있었고 활용 수준도 높았어요. 9월에 갔을 때는 갤럭시S가 나오면서 스마트폰이 더 발달했고 아이패드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한국만큼 변화 속도가 빠른 나라도 없구나, 감탄했죠."'해외 서비스의 무덤'이라던 한국에서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싸이월드나 미투데이 같은 토종 SNS 자리를 넘보고 있다. 과연 한국 지사조차 없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한국 대표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성공한 거 같은데요. 다만 '제로섬 게임'이라고 할 순 없어요. 전자책(e북)이 되면 종이책이 없어질 거라 걱정했지만 없어지진 않고 약해지며 같이 가잖아요. 트위터, 페이스북이 뜬다고 싸이월드 같은 한국 서비스가 사라지지 않고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는 거예요. 그만큼 토종 SNS도 자극받고 경쟁하면서 거꾸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감각도 키울 수 있는 거죠." "삼성전자 스마트폰 약진한 건 사실... 민족주의적 접근 무의미"이와 같은 글로벌 IT 서비스의 약진은 애플 아이패드, 아이폰4, 구글 안드로이드폰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지어 아이패드 국내 출시를 기다리지 못한 사용자들은 미국에서 제품을 공수해 오기도 했다.
또 아이폰 대 갤럭시S, 아이패드 대 갤럭시탭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결과적으로 스마트 기기 보급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성이 지난 1년 동안 놀랄 정도로 쫓아왔어요.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는데 한국에 들어온 아이폰에 자극 받은 지 얼마 안 돼 갤럭시S를 미국 4개 통신사를 통해 내놓았죠.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져 우리 회사 미국인 직원들도 HTC, 모토로라와 함께 삼성 제품도 제법 많이 쓰고 있어요.갤럭시탭이 미국 현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온 건 정확한 사실이에요. 안드로이드 태블릿 가운데 처음 제대로 만든 물건으로 주목 받았고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갤럭시탭이 좋다 나쁘다 논란이 벌어지며 아이패드 대항마로도 인정받고 있어요."임 대표는 삼성은 한국산, 애플은 외국산이란 이분법적 접근은 글로벌 시대에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애플이나 삼성 얘기만 나오면 트위터에서 많은 분들이 흥분해요. 애플 칭찬하면 '애플빠'냐, 애플 광고해 주는 사람이냐 그러고 삼성 칭찬하면 삼성 싫어하는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해서 중립적이려고 해요. 순수한 사용자 입장에서 좋은 거 좋다고 하는 거죠.이곳에선 의외로 삼성이 한국 회사인지도 잘 몰라요. 이곳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 제품인지 상관없는 거죠.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우리 거니까,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만들었느냐가 거의 의미 없는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광고 시장 안 받쳐주면 미디어 혁명 불가능"95년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다음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을 거쳐 지난 2009년 라이코스 대표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변혁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임 대표에게 요즘 미국 미디어 시장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도 스마트TV와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할 2011년 '미디어 빅뱅'을 예상하고 있다.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사조차 유력한 종편 후보로 꼽히지만 임 대표는 정작 새 매체 만들기에 치우쳐 광고 시장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미디어 산업은 한국보다 몇 십 배 큰 시장이다 보니 다양성과 규모의 경제에서 나오는 여러 시도가 가능해요. 반면 광고 시장이 받쳐주지 않으면 미디어 혁명이 불가능한데 한국에선 간과하고 있어요. IPTV든 종편이든 광고 시장이 새 사업 모델을 받쳐줄 수 있느냐가 문제예요. 그런 면에서 미국은 충분히 변화 동인이 있어요.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인터넷 광고 시장이 처음 신문 광고 시장을 제쳤다고 해요. 광고주들이 냉정하게 광고 효과 있는 시장으로 가기 때문이죠. 다른 정치적 고려가 없기 때문에 구글이 클 수 있는 거죠."임 대표는 미국 인터넷 광고 시장이 클 수 있었던 건 구글 등장 이후 광고 효과 측정과 타깃형 광고가 가능해진 점을 꼽았다.
"불행히도 한국은 미국에 비해 인구도 적고 지역이나 인종 다양성이 떨어져 타깃형 광고가 힘들어요. 서울에만 광고하면 모든 한국 사람이 보는 식이니 광고시장 자체가 동적이거나 정교하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미국은 인터넷 광고 시장이 커 다양한 미디어와 새 애플리케이션이 성공하면 광고가 붙어 돈 벌고 혁신되고 창업으로 이어지는 거죠. 인터넷 시장 선진화도 중요하지만 광고 시장이 선진화되고 광고 시장이 해외에 열려야 해요. 외국 것도 들어와야 해외 기업들이 광고를 하게 되죠. 한국은 큰 광고주들이 너무 적어 당장 삼성, LG 두 회사만 광고 안 해도 힘들잖아요."
2011년 라이코스, 그리고 IT 시장 전망은?임 대표는 지난 9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인터넷코리아컨퍼런스'에 참석해 지난해 3월 라이코스 대표 취임 후 미국 IT 사업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음 자회사였던 라이코스가 지난 8월 36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426억 원)에 글로벌 IT 기업인 인도 와이브랜트로 넘어간 직후였다.(관련기사:
"실리콘밸리 창업가, 한국에선 중퇴생 취급" )
90년대 야후와 함께 세계 인터넷 검색 시장을 장악했던 라이코스지만 지금은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5년 전 월 평균 4000만 명 수준이던 사이트 방문자수도 1600만 명으로 줄었고 한때 1000명이 넘던 직원 수도 50여 명에 불과하다. 임 대표 취임 뒤 구조조정 총대를 멘 덕에 지난해 라이코스는 15년 만에 첫 흑자 이후 회사 실적이 좋아져 90억 원대 영업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엔 새롭게 시도했던 일들을 구조조정 해 비용 깎아 흑자를 냈고 올해는 운 좋게 좋은 거래를 가져오고 시장 변화에 잘 대처해 매출도 20% 이상 늘고 큰 이익을 낸 거죠. 내년엔 인수한 회사와 시너지를 내고 다시 라이코스를 주목하게 만드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성장하는 게 과제죠."마지막으로 임 대표는 라이코스 CEO로서 내년 IT 시장 전망을 쉴 새 없이 풀어내며 인터뷰를 마쳤다. 주로 미국 시장에 초점을 맞췄지만 한국도 곧 시간 문제라는 건 이미 스마트폰-SNS 열풍이 증명하고 있다. 물리적 시차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인터넷 세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크롬 노트북과 애플 맥북 에어에 담긴 뜻은?
-임정욱 대표가 본 2011년 IT 시장 전망-아이패드처럼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시도는 보기 힘들 거예요. 구글 크롬 노트북도 이미 나왔고 나올 만한 것은 다 나온 분위기예요. 미국은 모바일이 더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고 아이폰이 버라이즌에도 보급되며 구글 안드로이드폰과 용호상박 전투를 벌일 거예요. 윈도폰7은 아직 존재감이 없어 어찌될지 궁금하고요.
미디어 출판 쪽에선 태블릿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가속화될 거예요. 특히 전자책이 놀랄 정도로 더 성장하지 않을까요. 크리스마스 시즌 이북이 엄청 나갔어요. 책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이 많아 킨들을 선물하면 너무 좋아해요. 미국은 오프라인 서점이 본격적으로 문 닫는 추세 가속될 수 있겠다 싶어요.
클라우딩 컴퓨팅(응용 프로그램을 PC에 저장하지 않고 서버에 있는 프로그램을 PC로 불러내 사용하는 방식... 편집자 주)이 가속화될 텐데 과연 대세가 될지도 관심이고요. 크롬 노트북 성공은 미지수지만 그런 맥락(클라우딩 컴퓨팅에 최적화된 크롬 운영체제...편집자 주)은 맞는 것 같아요. 맥북 에어가 보여준 것처럼 맥북 라인이 변해가고 있고 다른 노트북도 쫓아가는 분위기로 갈 거예요.
미국 TV 시장에선 사람들이 케이블TV를 끊는 '코드 커팅(cord cutting)'을 가장 걱정해요. 로쿠(Roku) 박스를 이용하면 훌루(Hulu)와 넷플릭스(Netflix) 같은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를 TV에 연결해서 볼 수 있거든요. 로쿠 박스는 영상도 HD급이고 훌루 광고도 TV 광고처럼 나와요. 광고 중심축이 넘어가면서 미국 미디어 업계도 큰 홍역이 예상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