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전야, 30년 만의 혹한 추위와 가로수를 휘감은 트리전구 불빛이 반짝거리는 시내 도로는 차량으로 꽉 막혀서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버스정류장에서 머리를 차도 쪽으로 빼꼼 내밀고 오지 않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며 발은 동동 제자리를 뛰고, 정류장 한 편의 분식 포장마차는 몇 겹으로 둘러싼 사람들 머리 위로 하얀 김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가족들과 성탄절 파티를 할 네모난 케이크 상자가 손에 손에 들려 있다.
겨울철 길거리 음식의 대표격인 어묵과 국물 한 컵이면 잠깐이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어서 추운 날에는 그 비릿하면서도 MSG(L-글루타민산나트륨 화학조미료)로 맛을 낸 감칠맛 향의 어묵 꼬지가 간절하지만 포장마차를 둘러싼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버스도 포기한 채 집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일주일 전, 아들의 방학식 날 한 학부모가 어묵 꼬지를 준비했는데 추운 날씨에 대박 인기를 끌었다. 집에서 직접 멸치육수를 만들고 기다란 대나무에 길고 둥근 어묵, 납작한 어묵을 접어서 꽂는 솜씨와 맛이 보통이 아니어서 물었더니 화원을 하느라 연탄난로를 피우는데 난로 위에 항상 어묵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성탄절이면 뭔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을 의례히 했던 터라 이번에는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방학식 때 먹었던 어묵을 추천했더니 모두 좋다고 한다. 다만 그때와 같은 분위기와 맛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어묵 맛은 국물에서 좌우되기에 지난가을에 마리당 천 원에 구입한 꽃게와 무, 청양태양초를 기본 양념으로 해서 푹 끓였다.
대나무 대신 나무젓가락으로 어묵을 꽂고 간장과 고추장 양념을 만들 때는 끓인 어묵국물을 이용하면 맛이 더 좋다. 국물의 담백한 맛을 위해서는 어묵을 끓인 물에 살짝 한번 데쳐내어 찬물에 담그면 기름기와 화학조미료 맛을 걷어낼 수 있다. 푹 끓인 국물의 간을 맞출 때는 조금 싱겁게 해야 하는 이유는 어묵을 넣고 끓이면 국물이 줄어들고 간이 세지기 때문이다.
국물을 계속 끓이면서 어묵이 통통하게 부풀어 부드럽고 진한 맛이 배도록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이면서 먹는다. 몸이 추위를 느껴야만 제대로 된 어묵 맛을 느낄 수 있기에 보일러를 끄고 창문을 열고 싶었으나 이날은 그냥 있어도 춥다. 평소에 화학조미료 음식과 어묵을 자주 먹지 않아서 몇 개 만에 속이 좀 거북했으나 그 맛(?) 때문에 자꾸 손이 갔다.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도 점차 바닥을 보이고, 뜬금없이 아내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돌아가면서 해보자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서로 덕담을 해보자는 취지였던 것 같은데 방학 후 집안에만 있는 아들에게 아내가 조언한다는 것이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중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알고 아들의 기분을 맞춰준다는 것이 더 큰 잔소리가 되고 말았다. 나를 타박하는 아내와 눈을 흘기는 딸, 그리고 심통이 난 아들, 국물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냄비는 금세 달아오르게 할 수 있지만, 이미 식어버린 이 분위기 이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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