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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요는 각각의 지역별로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통상 경기·서도·남도·동부 등 네 군데 권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바다 장벽으로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떤 지역과도 다른 나름의 민요 문화를 이루어 온 곳이 있으니, 바로 제주도이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져 제주의 독특한 문물이 외부에 많이 알려져 있으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제주 민요를 제대로 접해 본 외지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근대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축음기가 유행의 총아로 각광을 받던 1930년대에도 다른 지역 민요는 많은 분량이 녹음되어 음반으로 발매되었지만, 제주 민요 음반은 불과 몇 장밖에 확인되지 않았다. 1934년에 이난영이 부른 <별오돌독>, 1935년에 나온 고복수의 <가리감실>과 오비취와 신숙이 함께 부른 <이야웅타령>이 전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음반에 실린 이들 제주 민요는 현지의 토속민요 그대로가 아니라 대중음악가들에 의해 다듬어져 전문적인 가수들이 신민요처럼 부른 것인데, 모두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오케레코드에서 문예부장을 맡아 음반 기획을 총괄했던 김능인이 일찍이 새로운 음악 자원으로 제주 민요에 주목해 직접 현지 조사까지 했기에, 그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로 또 한동안 제주 민요는 음반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3월에 민속학자 송석하가 두 주에 걸쳐 제주도를 답사하며 토속민요를 녹음하기는 했으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잠시 소개되었을 뿐, 음반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첫 국산 음반이 1947년 8월에야 겨우 생산되었으므로, 당시는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이후 LP음반 시대가 열린 1960년대 뒤로 넘어가서야 제주 민요 음반이 다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므로, 첫 음반이 발매된 1930년대 중반 이후 최소한 약 30년 정도는 제주 민요 음반의 공백기였던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그러한 통념과 달리 LP음반 이전 6·25전쟁 전후한 시기에도 제주 민요 음반이 발매되었음이 자료 발굴을 통해 이번에 확인되었다.

'너영 나영'의 옛 버전 '니리낭실' 음반 발견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발매된 제주 민요 음반 <니리낭실>
▲ <니리낭실> 음반 딱지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발매된 제주 민요 음반 <니리낭실>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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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전 음악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는 음악 사이트인 가요114에서는, 최근 회원 소장 자료를 정리하면서 제주 민요 <니리낭실>이 녹음된 음반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음반은 코로나레코드에서 발매한 것인데, 코로나레코드는 1949년 무렵 부산에서 설립되어 1950년대 초·중반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음반회사이다. 다른 코로나레코드 음반과 달리 <니리낭실> 음반에는 음반번호가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회사 초창기에 발매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구체적인 시기가 언제이든 광복 이후 첫 번째로 나온 제주 민요 음반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제주 민요 중에는 <니리낭실>이라는 곡이 없는데, 음반을 직접 들어 본 결과, 오늘날 <너영 나영(느영 나영)>이라 불리고 있는 것과 같은 노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영 나영>의 후렴은 보통 '너영 나영 두리둥실 놀구요'로 불리고 있으나, <니리낭실>의 후렴은 '너녕 나녕 니리낭실 ○○'로 되어 있다. 각각 후렴의 다른 부분을 제목으로 취한 셈이다. 후렴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곡조와 사설에도 약간씩 다른 부분이 있으므로, <니리낭실>은 <너영 나영>의 옛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임난림이라는 가수가 주창(主唱)을 맡은 <니리낭실>은 1930년대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초기 제주 민요 음반과 마찬가지로 가창이나 반주가 신민요 분위기를 띠고 있다. 제주 문화의 토속성을 온전하게 담은 자료는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약 60년 전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작된 음반이라 곡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가요114에서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소리를 복원하고 조만간 자료를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한다. <너영 나영>과는 또 다른 고졸한 맛의 <니리낭실>이 한 갑자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태그:#니리낭실, #제주, #민요, #코로나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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