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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0 특별상' 수상자로 월간 <노동세상>과 정연주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특별상'은 한 해 동안 좋은 기사와 기획 등을 통해 활약한 시민기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1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씩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0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1 2월22일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명예의숲)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정연주 전 KBS 사장
 정연주 전 KBS 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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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상입니다. 나를 현장 저널리스트로 복귀시켜준 상이니까요."
기자 정연주가 돌아왔다. 그는 <오마이뉴스>가 2010년 한 해 동안 기사를 써온 시민기자 가운데 특별한 활약을 한 이에게 주는 '올해의 뉴스게릴라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연말에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몇몇 지인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환하게 웃었다.

"나는 2003년 3월 말 <한겨레> 논설위원을 그만두고 이후 KBS 사장을 5년 반가량 했기 때문에 그동안 경영만 해왔고 저널리스트 활동은 중단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2009년 8월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저널리스트로 돌아온 것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이번에 나에게 상을 준 것은 내가 다시 현장의 저널리스트로 돌아온 것을 인정해주는 셈이지요. 그래서 내겐 참으로 특별한 상입니다."

정연주씨는 "전에 직업기자로서 여러 가지 상(1997년 한국기자협회 통일언론상, 1999년 서울언론인클럽 칼럼상 등)을 받아왔지만 이번 상을 받으니 그때보다 더 행복하다"면서 "특히 내가 시민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받은 상이기에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마이뉴스>가 나에게 다시 저널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들어 기사를 쓰려니 쉽지 않았지요. 그래도 써놓고 보니 보람을 느낍니다."

1946년 경북 월성에서 태어난 '기자 정연주'는 60대 중반이다. 2010년 한 해 동안 그가 매달 2∼3개의 심층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정연주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온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체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기자 정연주의 글쓰기는 정면승부였다. 그가 MB정권에 의해 어떻게 KBS에서 쫓겨났는지, 이 정권 들어 왜 KBS가 저토록 부끄러운 방송이 되었는지, 그의 체험을 통해 낱낱이 까발렸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정연주 몰아내기'에 연관된 정권 측 인사들과 정치권력에 아부해온 KBS 내부인사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그런데 그 부담스런 정면승부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천상 '기자 정연주'였기 때문이다.

"딱 한 줄을 쓰기 위해 4일간 자료 조사를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실한 취재를 통해 갖게 된 사실의 힘이 그에게 용기를 줬기 때문에 정면승부가 가능했던 것이다. '정연주의 증언'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28만4327회)를 기록한 <오바마가 부시로부터 받은 '치명적 유산'...MB와 부시의 닮은 점>(2010.7.1)은 부자 감세와 국방비 급증이 어떻게 국가부채 누적과 민생파탄으로 연결되는지 그가 직접 공을 들여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 기사는 지금도 계속 읽히고 있는데, (공들인 콘텐츠를 알아보는) 독자들이 정확하고 무섭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연주의 증언' 쓸 때마다 좋은기사원고료로 감동 전한 독자들

'기자 정연주 복귀 기사'에 313명의 독자가 111만8천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내왔다.
 '기자 정연주 복귀 기사'에 313명의 독자가 111만8천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내왔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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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장을 지내고 있던 정연주씨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제해임된 것은 2008년 8월.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면서 KBS사장실을 나서야 했던 그는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 8월 31일 '강제해임 후 첫 칼럼'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제목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엄기영 MBC사장에게 보내는 편지>.

그러니까 자신처럼 이명박 정권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를 위한 격려였다. 그런데 그건 엄기영 사장을 위한 격려편지에 그치지 않고 초법적 행위를 반복하는 MB정권에 대한 정연주의 대반격이었다.  기자 정연주는 그렇게 정면승부를 시작했다. 이 '기자 정연주 복귀 기사'는 28만9008명이 읽었고, 감동한 313명의 독자가 111만8천 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내왔다.

이후 '정연주의 증언'은 연속안타의 기록을 이어갔다. 기사를 올릴 때마다 수만 명의 독자들이 읽었고, 예외 없이 '좋은기사원고료'가 붙었다. <KBS의 '하나회'인 '수요회'를 아시나요> (2010.10.15), <이런 인물이 KBS기자랍시고 기사를 썼으니>(2010.11.14) 등 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특별한 증언에 독자들은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희망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2010년에 마지막으로 쓴 기사의 제목은 <"정연주는 사악한 놈" 욕해도 무방했던 KBS김인규 체제 몇 달 만에 '부끄러운 직장' 됐다>(2010.12.24). MB정권이 유린한 민주주의가 사장 한 사람 쫓아낸 데 그치지 않고 일터의 문화까지 바꿔가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 기사에도 어김없이 좋은기사원고료가 붙었는데 독자 정훈채씨는 원고료를 내면서 "글을 읽고 있노라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적었다.

'정연주의 증언'이 독자의 가슴을 움직인 것은 그가 'KBS의 내막'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전체'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위 기사의 부제목은 "KBS와 MB정권,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였다.

"지금 KBS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리고 그동안 일어온 일들이 그동안 이명박 정권이 해온 행태와 너무 닮았다는 점이다. 내 편이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관대하게 봐주고…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가혹한 처벌과 인사상 불이익을 서슴지 않아왔던 것이다."

기자 정연주는 KBS문제를 통해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조중동이 마치 일란성 쌍둥이인 것처럼 닮았다"고 폭로했다. 그래서 연재 '정연주의 증언'은 KBS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김우룡·최시중·안상수 '막말', 대통령이 뿌린 씨앗> (2010.3.25), <천안함 정치적 이용해 재미보겠다? 꿈 깨시라, MB...이미 몰락한 사람 있다>(2010.5.19) 등을 통해 그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MB정권과 보수세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의 기사들을 잘근잘근 씹어 음미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젊은 정연주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11년과 휴스턴대 경제학 박사(1989년)를 하면서 얻은 국제적 시야,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자유언론을 외치며 해직(1975년)당하는 과정에서 얻은 저항정신이 그가 요즘 쓰는 증언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자 정연주를 통해 살아 있는 리영희의 한 모습을 본다(그는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후 78년 동아투위활동을 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갔을 때 리영희 선생과 같은 사동에 있었다. KBS에서 강제해직당하기 전 리영희 선생으로부터 "이순신 장군처럼 명예롭게 죽어라"는 개인적인 격려편지도 받았다. - '정연주의 증언 1' 참조)

정연주씨는 1960년말 스물 다섯 살에 기자가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독재의 검은 발톱을 드러내기 전 암흑이 짙어가던 때, 나는 그 암흑 속에서 진실을 전하고,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혀보자고 기자가 되었다" (정연주 칼럼집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비봉출판사, 2002년)고 한다. 그러나 1975년 자유언론운동을 하다가 동아일보사에서 14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쫓겨났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정연주씨는 1989년 8월 <한겨레> 워싱턴특파원으로 언론현장에 복귀했다. 그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다시 그로부터 20여 년, 60대 중반이 된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담쟁이 정연주가 우리에게 손짓하네

지난 3월 1일 '민주주의 역사 현장을 함께 걷자'는 취지로 마련된 민주올레에서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지난 3월 1일 '민주주의 역사 현장을 함께 걷자'는 취지로 마련된 민주올레에서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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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씨는 요즘 표정이 밝다. KBS사장 강제해임과 관련된 2가지 소송에서 모두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MB정권은 정연주씨를 KBS사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검찰을 동원했고, 검찰은 2008년 8월 그를 비리사범으로 만들기 위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으로 기소했다. 보수언론들은 그의 '배임죄'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하나는 정연주씨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낸 KBS사장 해임무효 소송이다. 이것도 1심에서 "해임과정이 위법"이라며 해임취소 판결이 나왔고, 2011년 2월로 예정된 2심판결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연주씨는 여행, 드라이브, 음악감상, 그리고 젊은 이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요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족시켜주는 일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1주일에 한 번꼴로 하는 '2박3일간의 지방 강연'.

"나는 지방강연을 하면 절대 당일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꼭 그 전날 가서 구경하고, 강의하고, 또 다음날 구경하고 올라옵니다. 직접 차 몰면서 음악감상 하면서."

60대 중반의 청년 정연주는 이런 신나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요즘 무릎이 시원치 않아 높은 산을 못 올라갔는데 2011년엔 제주올레 전 코스를 끝내고 싶어요. 앞으로 3년 안의 목표는 지리산의 능선을 따라가면서 종주해보는 것입니다."

그의 목표가 어찌 지리산 종주뿐이겠는가. 3년 내에 그는 '정연주의 증언'을 통해 그토록 갈망해온 '비상식적인 보수정권의 종말'과 KBS의 정상화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연재의 첫 글에서 도정환 시인의 <담쟁이>를 인용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잎 하나는 / 담쟁이잎 수천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시대와의 정면승부를 통해 '2010 뉴스게릴라 특별상'을 수상한 정연주. 그는 오늘도 담쟁이가 되어 우리에게 손짓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대와의 정면승부를 피하고픈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일찍이 조중동을 '조폭언론'으로 규정(<한겨레> 2000. 10.11)하는 명칼럼을 쓰면서 "젊은 언론인이여, 일어나 조폭적인 사주들에게 저항하라!"고 했듯 그는 이제 인터넷 시민기자가 되어 후배들과 어깨동무하고 있다. '담쟁이잎 하나' 정연주는 47회째 '정연주의 증언'으로 높은 벽을 넘고 있고, 그의 글을 읽은 380만1676명(평균 7만7585명)의 독자들이 그를 따라 오르고 있다.


태그:#올해의뉴스게릴라, #특별상, #뉴스게릴라,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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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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