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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9일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 서울일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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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7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자리를 깔고 앉았다. 난방이 되고 있어 공기는 차지 않았지만 얇은 은색 비닐 장판만 깔아 놓은 대리석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왔다. 가로·세로 5m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노동자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30일, 밖에는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적게는 50대에서 많게는 70대 나이의 청소노동자들이 전기온열기구 3개와 두툼한 이불로 엄동설한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동국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임금 보장과 업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자, 지난 11월 30일 관련 용역회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새로운 업체가 이들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으면 10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실직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이 세 차례에 걸쳐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동국대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지난 28일, 신규 청소업체가 채용공고를 내면서 청소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높아졌다. 결국 지난 29일 오후 1시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본관 로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24시간 농성장을 지키며 고용승계에 대한 학교 측의 확답을 요구하고 있다.

여름에는 잡초제거, 겨울에는 제설작업까지 시키는 학교

30일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대학 본관 로비에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30일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대학 본관 로비에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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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그냥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그냥 그렇게 해야 되나 보다 하고 살았지.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야 알았어."

동국대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어린 축에 속하는 원종심(여, 54세)씨는 그동안 자신이 받았던 불이익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불을 덮고 있던 원씨는 기자의 질문에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그동안 월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에, 본래 업무가 아닌 부당 업무지시까지 받으며 고령의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노동 강도에 시달려 왔다.

주 40시간 근무에 법정 최저임금은 85만8990원이지만,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40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기본급 75만8990원밖에 받지 못했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10만 원 적은 금액이다. 여기에 시간 외 수당과 식대보조금을 더해 9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이 청소노동자 대부분의 유일한 월수입이다.

65세 이상 청소노동자의 경우는 법정 퇴직금의 70% 정도만을 지급받았고, 연차휴가도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청소 업무 외에도 여름철에는 잡초제거에, 겨울철에는 제설작업에도 동원되는 등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아 왔다.

법에 보장돼 있는 급여도 받지 못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원종심씨는 "회사에서는 오전 7시부터 근무하면 된다고 했는데 학생들이 나오기 전에 청소를 다 해놔야 하니 5시까지 출근해서 청소를 해야 했다"며 "아침 시간인 9시 30분까지 화장실, 독서실, 강의실까지 청소를 다 하지 못하면 밥을 못 먹으니까 일찍 나와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침 일 끝나고 나면 땀에 흠뻑 젖었어. 한 시간 동안 아침 먹고 나면 또 바로 일해야 돼. 건물로비랑, 계단이랑 먼지 닦고 틈틈이 화장실 청소도 계속 해야 되고. 한여름에 어떤 날은 밖으로 불러내서 화단에 잡초도 뽑으라고 한다니까. 남자들은 눈 오면 나가서 눈도 치워야 돼. 거기다 학교 축제니, 시험이니 무슨 행사가 있으면 일이 두 배로 늘어. 그래도 돈을 더 준 다거나 쉬는 시간을 주는 일은 전혀 없었어."

원씨에 따르면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하루 두 번 있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전혀 쉬는 시간이 없어 업무가 끝나는 오후 4시까지 약 9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원씨는 또 "이런 과중한 업무를 부담시킨 것은 회사가 아니라 학교의 관리자들"이라며 "학교 청소 담당 직원인 관리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의 업무 태도를 감시해 용역업체에 알렸고, 맘에 들지 않으면 혼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도 "한 번은 6시 15분에 나왔다고 학교 관리자가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며 거들었다.

수시로 폭언을 일삼는 학교 관리자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원성을 샀고,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부당한 처우에도 묵묵히 일하던 청소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횡포에 대항하며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 지난 10월 말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다.

건물 같고, 이사도 같은데 다른 회사?

30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해 이불을 덮고 있다.
 30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해 이불을 덮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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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동국대 청소노동자 116명 중 90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 등을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조가 80%에 가까운 가입률을 보이자 학교 측은 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노조에 따르면 학교 측은 조합원 모임이 개최되는 학생회관 등에 학교 직원들을 배치해 감시하고, 노조 모임 장소를 제공한 학교 동아리 책임자에게 직원이 욕설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제 모습을 갖추자, 이번에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학교가 업체와 재계약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지난 11월 30일, 계약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청소업체에 계약해지가 통보됐다.

이에 대해 청소노동자노조는 "비록 계약기간이 1년밖에 안 되지만 보통 청소용역회사는 학교와 2년 이상 용역 업무를 유지한다"며 "10여 년간 1년밖에 하지 않은 회사를 계약 해지한 사례는 없다. 노조 결성에 따른 의도된 계약해지"라고 주장했다.

신규업체와 계약이 해지된 업체가 밀접한 관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문순 서울지역일반노조 법규부장은 "신규업체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니 기존업체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신규업체 대표가 계약이 해지된 회사의 사내이사로 등록돼 있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학교 측이 서로 다르지 않은 회사와 재계약을 하면서 회사가 바뀌는 것을 핑계로 청소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할 수 있다는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동국대학교 측에 반론을 듣기 위해 담당 부서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담당자가 계속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회신을 부탁했지만 업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편, 동국대학교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나섰다. 학기가 끝나기 전인 지난 12월 중순, 학교 내에서 청소노동자 고용승계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한 결과 9,362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동국대학교 학생 수가 1만2000명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전폭적인 지지다.

이날 농성장에도 10여 명의 학생들이 나와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을 돕고 있었다. 이윤하(27, 사학과)씨는 "아버님, 어머님들도 같은 동국대학교 구성원"이라며 "이분들이 있어 깨끗한 환경에서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데, 함께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성신여대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하자 학교 측이 재입찰을 통해 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65명을 집단해고한 바 있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고, 학교 측은 2주 만에 전원 원직복직을 약속하고 이를 실행했다.


태그:#동국대,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 #파업,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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