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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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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선거는 단순히 4년 혹은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가 아니다. 6·2선거에서 야권이 패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폭주는 지금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2012년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의 회복 불능으로 엉망이 될 것이다."

백낙청(72) 서울대 명예교수(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는 <오마이뉴스> 신년 인터뷰를 통해 2012년 선거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일갈했다. 또한 백 교수는 연말 '흡수통일' 논란을 빚었던 통일부 업무보고와 관련해 "북한 주민을 정말 위하고 통일을 준비하겠다면 햇볕정책을 계속 진행하는 게 맞다"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녘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해줄 수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남한에 대한 적대감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백 교수는 한반도 위기 고조와 관련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자면, 군대를 안 다녀온 사람이 하도 많아서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대북응징' 같은 발언을 하는 게 아니냐"며 "병역이행 여부를 떠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실감하는 사람이 정부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개탄했다.

이 인터뷰는 유난히도 긴장이 고조되고 평화가 위협받았던 2010년 경인년을 지나 보내며,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인 지난 12월 30일 오후 4시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백낙청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 29일 종교계 및 시민사회 원로인사들이 '한반도 전쟁 방지와 평화정착'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시민사회 원로까지 참여했는데 어떤 배경이 있었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에도 우리 군이 사격훈련을 강행하고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전쟁을 막자는 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명진 목사 등 몇 분들과 상의해서 동참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전쟁 반대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보수와 진보를 초월해 한반도 평화 등 현안에 대해 폭넓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번 호소문 발표를 계기로 변화하는 게 아닐까.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이 시민사회의 충고나 호소를 받아들여 입장을 바꾸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외부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 한국이 계속 6자회담을 거부해 따돌림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어찌 됐건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 소리 했다가 저 소리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행태였기 때문에 앞으로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 통일부가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이로 인해 통일부가 사실상 '흡수통일'을 선언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이명박 정부의 전반적인 성향이 이번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드러난 것 같다. 그러나 흡수통일론은 비현실적인데다가, 흡수통일 전략을 실제로 추진하는 정부라면 그 속내를 감추는 게 옳다. 떠벌일수록 북측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중국도 한국 정부에 협조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에도 짐이 된다. 그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을 우선하는 접근을 하겠다'는 구상도 말 자체만 보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측 당국과 대화할 생각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 북측은 '인민과 당 사이에 한 치의 틈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남북대화의 주무 부서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면 대화가 될 수 있겠나.

또 통일부가 말하는 '북한 주민'이 북녘 주민 전체인지 아니면 실체가 불분명한 '반체제세력'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북녘 주민을 정말 위하고 통일을 준비하겠다면 햇볕정책을 계속 진행하는 게 맞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녘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해줄 수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남한에 대한 적대감도 줄일 수 있다. 또 북측 정권이 남북대결 구도와 미국의 압박을 빌미로 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그 사건의 본질, 그리고 차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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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3년차를 보낸 올해 평화이슈가 부상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으로 대표되는데, 올해 드러난 두 가지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둘 다 중요한 사건이지만 얼마나 동질적인 사건인지 가려봐야 한다. 천안함 사건은 누구나 수긍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 나는 적어도 국방부 당국의 조사결과만큼은 허점투성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들이 이미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외국의 과학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에 여러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런데 국방부의 최종보고서는 이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거나 억지 답변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제기했던 과학자들에 따르면, 최종보고서에 담긴 자료 상당수가 어뢰 폭발이 아닌 기뢰 폭발에 부합한다고 한다. 만에 하나, 이들의 주장처럼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격침되지 않았다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질적 차이가 있나.
"연평도 사건은 그 배경이 무엇이든 남북 간의 무력 충돌이다. 북측의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고 남북기본합의서 위반 사건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침몰 원인에 따라 남북문제가 아닌 국내문제로 출발했다가 뒤늦게 남북 간의 쟁점으로 바뀐 것일 수 있다. 연평도 사건에 대한 평가와 대응도 천안함의 진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천안함이 정부 발표대로 북한 어뢰에 의해 격침됐다면 연평도 포격은 용서 못 할 도발일 뿐 아니라 북한정권의 전반적 행태가 정말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군사적 전과로 보자면 천안함을 격침한 것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보다 더 큰 것인데 북측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딱 잡아떼다가 연평도에 대해서는 '불벼락을 떨어뜨렸다'고 자랑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나? 이대로만 보자면 북한은 합리적 계산능력조차 없는 집단이다. 그런 집단이 지금 핵무기까지 갖고 있으니, 군사적으로 단호히 대비해야 하는 건 물론이려니와 이런 집단을 어떻게 관리할지 참으로 난감한 과제가 된다."

-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대북 응징발언, 확전 불사 같은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반도 긴장 고조는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을 코흘리개도 아는데 이 정권은 왜 자꾸 긴장을 고조시키는 걸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군대를 안 다녀온 사람이 하도 많아서 전쟁이 뭔지 모르고 그런다는 말도 있다. 병역이행 여부를 떠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실감하는 사람이 정부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교양이 부족한 것이다. 또 남북이 다 전쟁은 원하지 않고 미국이나 중국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러는 면도 있을 것이다. 전쟁만 안 난다면 남북대결 수위를 높이는 것이 현 정권이나 그 지지 세력에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 한나라당은 안보위기를 틈타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지금 정부·여당이 예산안 날치기 후폭풍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연평도 사건이 없었다면 새해 예산안을 이처럼 일찍 날치기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국내에서 수구 세력의 아젠더(의제)를 밀어붙이는 데 '안보위기'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 민간인 사찰 과정에서 청와대가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 이후 20년 만에 민간인 사찰 사건이 터진 셈이다. 그러나 여러 사건에 묻히고 말았다.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 아닌가. 
"민주당 등 야당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탓하는 이도 있으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야당으로선 가장 다루기 쉬운 문제였으니까. 불법이 명백하고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동조하는 세력이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기엔 지금 여건이 너무 나쁘다.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 때만 하더라도 조·중·동이 요즘 같지 않았다. 국회 역시 당시 3당 합당으로 구도가 바뀌긴 했지만 '여소야대'로 출발했었고 당시의 평민당이 지금의 민주당보다 의석비중이 컸다. 기막힌 얘기지만, 국회·언론·검찰 등 지금의 여건이 20년 전 노태우 정부 때보다 못 한 셈이다. 하지만 민간인 불법사찰은 덮는다고 덮일 사건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연평도 사건 등으로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떠오를 거라 본다."

-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집단을 원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정당은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들 수 있겠나.
"국민들이 믿고 맡길 정당이 마땅히 없다는 게 '반MB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2012년 정권교체를 자신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또 야권이 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 대신 무엇을 하겠다는 게 뚜렷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일단 야권이 2012년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아젠다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규합할 방법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여기저기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금년 내에 상당히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권교체 못하면 지방선거에서 국민 보여준 성숙함 헛것 된다"

- 2012년 양대 선거가 치러진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다. 이를 앞두고 2011년 정치격변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선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0년 지방선거도 그랬지만 2012년 총·대선은 단순히 4년 혹은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가 아니다. 6·2선거는 어찌 보면 우리 역사의 갈림길에 해당했다. 야권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마음 놓고 폭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역사적 의의와는 별도로 현장의 실감으로는 '한숨을 돌린 정도'에 불과했다. 2012년 선거는 이 같은 숨 가쁜 일상에 종지부를 찍을 기회다. 2012년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한다면 올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보여준 성숙함과 열망도 헛것이 된다.

일부에서는 '꼭 2012년이어야 할 필요가 있냐'며 장기적인 대응을 주장하지만 한국현실의 특수성을 잘 모르는 주장이다. 한국사회는 정상적인 선진사회처럼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고 속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87년 6월항쟁을 통해 일단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여전히 분단체제 아래서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 민주화 세력이 2012년 선거에서 지난 대선과 총선의 패배를 만회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의 회복 불능으로 엉망이 될 것이다."

- 이명박 정부가 2012년 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남북관계를 더욱 파탄으로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 위험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87년 이후 한국사회에선 선거의 공간이 열려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임기를 얼마 안 남긴 대통령이 마음대로 무엇을 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 2012년 총선에 입후보할 국회의원이나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집권하겠다는 인사들은 선거에서 자기가 잘 될 것을 우선시한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해도 따라올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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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진보집권전략을 논의하면서 야권단일정당론과 진보대통합정당론이 부상하고 있다. 87년 체제로 말하자면 민주대연합론과 독자후보론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의 재판이 되면 2012년 선거에서 민주진보가 승리할 수 있겠나.
"현재 진보통합 논의는 87년의 '독자후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 내에서 독자노선을 고집하는 이들은 소수로 국한돼 있다. 지난 29일 창립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도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세력이 먼저 통합한 뒤에 민주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입장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경험을 되돌아보면 시민회의의 진보통합론이 일리가 있다. 당시 민주당은 과감하게 양보해서 폭넓은 연합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인데도 그러지 못했다.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별다른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진보'를 내세운 이들만이라도 우선 결집해 민주당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만드는 게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돕는 일이다.

물론 진보세력의 통합이 기계적 결속으로만 진행돼선 안 된다. 통합의 과정에서 진보의 자기쇄신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처럼 분열된 이면엔 자신들만 옳다고 하고 남들과 소통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습성들이 있다. 통합과정에서 이를 씻어내야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고 민주당으로서도 진정 두려우면서 손잡고 싶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촉진자 역할을 했던 '희망과대안'이 12월 29일 신년사를 통해 각 정치세력들의 "구체적인 결단"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보정당은 통합을 전진시키라는 주문이다. 포괄적 주문인데 구체화하자면 민주당이 무엇을 얼마나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또 진보정당은 어디까지 통합에 나서야 한다고 보나.
"그 문제는 각 정당이 결정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시민들이 갖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회의가 구상하고 있는 바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또 문성근씨 등의 '백만송이 국민명령' 운동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다른 어떤 연합정치 운동보다 더 적극적으로 '보통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운동이라 보기 때문이다."

- '백만 민란'의 경우 12월 29일 현재 4만9천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5만 명이 모이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거나 야5당 당사를 포위하고 촛불시위를 하겠다는 제안도 나왔는데 효과가 있을까.
"야권이 모두 꼭 하나의 정당이 돼야 한다는 목표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열성적인 행동대원 100만 명이 모인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적으로도 그만큼 안 되고 내용상 '단순한 지지서명자'가 많다면 정당들더러 하나가 되라 해도 모든 정당이 말을 들을지 의문이다.

목표에 좀 더 유연성을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들라'는 것과 그 정당의 운영규칙 외에는 다른 아젠다가 없는 것 같은데, 5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그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의제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민란' 측에서도 곧 '가치논의'를 하겠다는 걸로 아는데 나는 좀 더 빨리 했으면 한다. 그래야 운동의 응집력과 실천력이 강화되고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띨 수 있게 된다."

- 2012년 선거 전에 섀도우 캐비닛(예비내각)을 미리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섀도우 캐비닛을 전제로 총선과 내각의 후보를 정하자는 내용이다.
"'섀도우 캐비닛'은 한국의 정치현실에 잘 안 맞을 것 같다. 야권이 공동정부에 합의하고 그 운영의 원칙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을 미리 특정 자리에 배치하면 국민정서상 '나눠먹기'로 보일 수 있다. 또 보수언론이 얼마나 신나게 이 점을 공격하겠나. 또 내각진용을 미리 노출시켜 득표력을 높일 수도 있지만 한자리 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끼리 입각함으로써 새 정부의 참신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 6·2 지방선거의 최대이슈는 무상급식이었다. 보편적 복지를 필두로 복지국가 담론이 핵심 화두로 부상했는데, 2012년 진보의 이념과 노선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학교 무상급식은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었다. 국민의 정의감을 건드리기도 했다.  '왜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이느냐',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이 집권했는데 너무 야비한 것 아니냐' 같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총선이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야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복지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되고 국민 다수가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발전이지만 복지 자체가 선거승리의 호재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복지문제 외에 어떤 이슈가 2012년 선거의 쟁점이 되겠나.
"다음 선거에 MB가 안 나오긴 하지만 '반MB정서'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가 되리라 본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제대로 드러내고 정리하는 문제가 2012년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복지문제를 민주주의 및 평화 문제와 제대로 배합해서 그걸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간명한 구호를 만드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 되지 않을까. 다만 구호 만들기는 정치권의 선수들 몫이고 나는 원론적인 이야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 문제가 다 얽혀 있다. 복지문제도 민주주의 문제와 결합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단순히 세금을 더 걷어서 국가와 지자체가 더 많이 나눠주겠다는 방식으론 관료조직만 키우게 될 것이다. 선진국이 경험했던 '복지병'을 앓게 될 가능성도 높다. 복지 혜택을 받는 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우리 현실에 맞게 유도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평화문제도 복지문제와 따로 가는 게 아니다.

복지정책을 시행하려면 정치적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평도 사건처럼 남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런 동력이 마련되겠나. 이처럼 민주주의 심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과제 등을 복지문제와 함께 잘 고민해서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구호까지 만들어내는 정치인이 2012년에 승리할 것이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한국형 복지'를 들고 대선 행보에 나섰는데 이 역시 한계가 있다고 보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복지의 내용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걸로 그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박 전 대표도 MB의 실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 사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것 외엔 날치기를 포함해서 그가 뚜렷하게 자기 입장을 밝힌 바가 없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선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었지만 4대강사업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 '창비주간논평' 신년 칼럼을 통해 "2010년의 시련을 딛고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 시작하는 해"로 2011년을 규정했다. 백 교수가 생각하는 '상식과 교양의 회복'은 무엇인가. 또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
"일단 '전쟁은 안 된다'는 명제가 이 시대의 기본적인 상식이자 교양이다. 이것조차 부정하는 '보수'라면 진정한 보수주의와 무관하다. 제대로 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 국가재정을 알뜰히 꾸리는 것도 보수주의의 기본이며 '진보'도 공유해야 할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4대강사업을 절차를 무시해가며 추진하고 국가재정을 낭비하고 그 부담을 수자원공사에 슬쩍 떠넘긴다거나 수자원공사가 진 빚을 보전해주기 위해 친수구역특별법과 같은 악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은 보수주의자가 아닌 파괴적 급진주의자의 행태다. 조·중·동의 인정이 아니라 양식 있는 국민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정부라면 당연히 이런 행태를 시정해야 할 것이고, 정부가 그러지 않을 때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국민 모두가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 위해 합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2012년 , #신년인터뷰,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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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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