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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몸에는 무선마이크가 채워지고, 기상에서 부터 취침 전까지 저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카메라가 동행했습니다. 저의 모든 행위에 카메라가 지켜보는 것은 생각한 것보다 불편한 혹이었습니다. 마치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과가 24시간 전국에 생중계되는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 버뱅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제 몸에는 무선마이크가 채워지고, 기상에서 부터 취침 전까지 저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카메라가 동행했습니다. 저의 모든 행위에 카메라가 지켜보는 것은 생각한 것보다 불편한 혹이었습니다. 마치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과가 24시간 전국에 생중계되는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 버뱅크가 된 것 같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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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꼬박 열흘 동안 한 TV프로그램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카메라와 무선마이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것은 EBS '다큐 인생2막'이라는 휴먼다큐멘터리입니다. 30분 2회분의 프로그램입니다.

지난달 저는 이 프로그램의 촬영 제의를 받고 '수용이냐 거절이냐'를 두고 하룻밤과 낮 동안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는 적지 않게 TV 프로그램을 찍었습니다. 태국의 국영방송 CH5에 30분물이 2회에 걸쳐 제작 방송되었고, 싱가포르의 위성방송 '채널8'에서 30분물이 제작되어 지난여름 동남아 각국에 방송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각기 다른 성격의 KBS, SBS, Arirang TV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해외에서 방송되는 방송물도 아니고 문화 프로그램의 5분 정도 한 코너로 방송되는 단신도 아닙니다. 총체적인 저의 삶에 미시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국내 공중파의 휴먼다큐멘터리입니다.

제작진에게 '가(可)' 또는 '부(否)'의 공을 하루빨리 넘기기 위해 이 방송 출연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져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게 셈이 되지 않았습니다.

휴먼다큐멘터리 촬영... 지난 삶을 돌아봤습니다

방송에 비친 저의 삶과 생각에 대해 시청자들의 대다수가 긍정해준다 하더라도,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단지 몇 사람의 비수가 저와 가족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이런 점을 경험했습니다. 작년 5월 저의 처가 출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종단에서는 출가 연한이 정해져 있고, 저의 처는 작년이 그 막다른 해였던 것을 한 스님에게서 들은 것 같습니다. 증득(證得)의 욕구가 강했던 처는 그 나이 제한이라는 제약 때문에 서둘러 출가 얘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연을 기사로 송고했습니다. 세상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답을 구해볼 심산이었지요. 많은 사람이 그 타당성과 불합리함에 대해 의견을 주셨습니다. 대개는 기사의 내용에 부합한 진지함으로 '가'와 '불가'에 대한 의견을 주셨지만, 일부는 당사자나 제게 큰 상처가 될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99개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내용이고, 단 한 개가 비수를 꽂는 얘기라 하더라도 그 한 번의 비수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긍정의 말보다 부정의 말에 더 크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이 방송이 혹 저와 우리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기지는 아닐지도 걱정이었습니다. 저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노윤구 PD의 한마디였습니다. 그는 첫 미팅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만약 제가 선생님을 촬영한다면 저는 항상 선생님의 편입니다."

저는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래, 내 편인 사람이 내 다큐를 찍는다면 난 적어도 기댈 사람은 있잖아."

 EBS 다큐 인생2막을 제작하고 있는 노윤구 PD(오른쪽)과 임인섭 AD
 EBS 다큐 인생2막을 제작하고 있는 노윤구 PD(오른쪽)과 임인섭 AD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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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을 비롯한 방송제작 14년의 베테랑의 노윤구 PD는 모든 상항에 대해 유연하고 노련했습니다.

피사체를 대하면서 항상 웃는 얼굴이었으며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상대에게 카메라 앞에 설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절대 과장하는 법이 없으며 아무리 욕심나는 장면도 상대가 결정하면 그대로 따랐습니다.

한 '구다리(시나리오에서 줄거리의 큰 사건을 의미)'를 건지면 조용히 안도했습니다. 방송에 대한 기대를 주지 않기 위해 편집에 쓰임이 없겠다 싶은 내용이나 상대 앞에서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반복 질문을 했습니다. 그것은 인터뷰이에게 내용을 검정하는 기회를 허락하고 방송용 편집에 알맞은 짧고 '임팩트' 있는 말을 채록하기 위함인 듯싶었습니다.

꾸준히 주인공을 따라가는 인내와 피사체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성실성이 그의 내공의 원천이었습니다.

 저의 처가 붉은 포대기로 첫 딸 나리를 엎고 있는 24년 전 행복한 모습. 이번 다큐는 간과되었던 소소한 행복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저의 처가 붉은 포대기로 첫 딸 나리를 엎고 있는 24년 전 행복한 모습. 이번 다큐는 간과되었던 소소한 행복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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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다큐 작업을 통해 제가 그동안 간과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가족과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가족은 언제나 제 곁에 있을 것이라 여겼고 마음만 먹으면 항상 함께하는 시간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일이 우선이었고, 잡지사의 그 많은 밤샘은 물론이고 여행도 늘 혼자였습니다.

가족, 더 세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제 교육관에 따라서 간섭보다는 방목이었고 비호보다는 방치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점이 매우 외로웠던 것 같았습니다. 처가 이번에 말했습니다.

"영대의 지난 10년간의 소원은 다른 가족들처럼 김밥을 싸서 모든 가족이 함께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는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왜 내게 말을 안 했소?"

"말했다면 당신이 그 말을 들었을 것 같아요?"

아내와의 이 대화는 순전히 이번 다큐 덕분입니다. 노 PD는 틈만 나면 저희의 과거에 대해 물었고 그 과정에서 저도 몰랐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과거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번 다큐 작업을 통해 "문화적 욕망을 유보하지 말자"고 처와의 결혼 전 언약이 있었음에도 가족들은 유보한 것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 PD께서는 저와 열흘 동안의 동거를 통해 우리 가족들의 그 유보된 행복을 찾아주었습니다.

저와의 동거를 통해 제작진은 저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했지만 저는 그 제작진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전 작업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PD라는 직업의 애환을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과 몸을 함께 써야 하는 노동 강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늘 집 밖에서 살아야 하는 불규칙한 생활로 가족들에게는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잘 못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노PD 스스로도 저와의 열흘을 통해 스스로 결심한 것들을 고백했습니다. 첫째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경험의 숙성이고 오감으로 습취한 것들의 완전한 소화이며 궁극의 완성이니까요. 그동안 만나 온 사람들에 대한 정리와 기록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둘째는 문화적인 것, 그리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욕망에 불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문화, 예술 그것은 유보되어야 할 사치가 아니라 우리 삶의 깊은 산속 옹달샘의 물 한 모금이며 잣나무 숲속의 산소 한 줌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노 PD는 제게 사람의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파괴적인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 편입니다."

EBS 휴먼 다큐멘터리 '다큐 인생2막_이안수 편'
방송안내
EBS의 휴먼 다큐멘터리 '다큐 인생2막-이안수 편'은 1월 10일 월요일 밤 10시 40분에 1편이 방송되고 11일 화요일 밤 10시 40분에 2편이 방송될 예정입니다.

그 방송에는 저의 과거와 현재, 노동과 보람, 가족의 희생과 인내, 현재의 꿈을 일군 얘기와 감사, 그리고 다시 꿈꾸는 미래가 담기게 될 것입니다.

방송시간
방송시간 : (본방송) 1월 10일(월요일) 제1편 | 밤 10시 40분 ~11시 10분
                 1월 11일(화요일) 제2편 | 밤 10시 40분 ~11시 10분
          (종합) 1월 16일(일요일) 낮 1시 40분 ~ 2시 40분
          (전주 재방송) 19일(수요일), 20일(목요일) 오전 7시 ~ 7시 30분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 다시보기로 언제든지 재 시청이 가능하며 DMB로도 제공됩니다.

관련정보 바로가기
EBS 다큐 인생2막 | http://home.ebs.co.kr/life2/index.html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 됩니다.



#EBS#다큐인생2막#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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