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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월 4일), 대구에서 신보영 선생님과 친구 분이 오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하는 엄마끼리의 감성체험 여행이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모티프원의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걸음을 멈추시고 훌연 이오덕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마치 이오덕 선생님의 서재에 들어온 것 같아요. 제 친구가 이 선생님의 딸이었거든요. 그래서 간혹 이 선생님의 서재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답니다. 제 친구는 결혼 후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선생님의 서재가 이오덕 선생님의 서재에서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해주었어요."

 

평생을 아름다운 우리말과 문장을 찾아 바로잡고 되살리는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권정생 선생님과 함께 아동문학에 몸 받치신 이오덕 선생님은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이 샘 솟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의 오래된 여러 저작물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장 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등.

 

자녀들이 잠든 시간 두 어머님께서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오늘(5일) 아침 방금 기상한 막내가 눈을 비비며 서재에 있는 제게 왔습니다. 어제부터 서재를 들락이며 제게 흥미를 보였던 친구였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로 시작한 이 친구는 점점 제게로 다가오면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로. 그리곤 제 옆에서 말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선물주세요."

 

갑자기 산타가 된 저는 참 난감했습니다. 미처 이 친구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곧 글자를 읽게 될 이 친구를 위해 글자가 있는 동화책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스니다. 결국은 동화책 대신 출산·입양·위탁으로 얻은 아이들을 멋진 화원처럼 조화롭게 가꾸어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는 이야기인 <하나네 집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책을 서가에서 뽑았습니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서명을 하기 위해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수줍어서 몸을 살짝 비틀면서 정다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에는 '정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직은 '다'자와 '빈'자가 헷갈리는, 이제 막 이름쓰기를 배우는 참 귀여운 다빈이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산타 할아버지'라고 적어서 건넸더니 옆구리에 끼고 좋아라, 자기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다빈이는 산타를 만난 것일까요?

 

아무튼 저는 다빈이가 이 세상에는 분명 산타가 살고 있다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믿기를 바랐습니다. 산타가 허구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동심을 졸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이가 어른으로 편입되는 시간이 늦을수록 행복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 어린 아이 때의 맑은 영혼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이 어른으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섬돌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빈이는 눈에 눈물 두 방울을 달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다시 대구로 떠났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겠다는 주장으로 엄마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거든요. 그 대립은 바깥의 찬 공기를 염려한 엄마의 승리로 끝났고, 다빈이는 그 패배가 서러웠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더 큰 서러움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다빈이는 오늘 아침 엄마의 강제가 최근 겪은 일중 가장 서러웠던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산타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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