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이 전남 화순 효성노인복지센터장. 요양보호사이기도 한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어느 가을이었다. 지인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손님으로 찾아온 그녀를 만났다. 그때 그녀는 화순관내 노인복지센터 종사자들로 구성된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 만나 어색한 이들이 그렇듯 서로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의 사무실 앞을 지나치다가 다시 그녀를 만났다.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문득 "얼마 전 센터에서 돌보던 어르신 한분이 돌아가셨다"며 "요즘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어르신이 나을 수 없는 병을 앓고 계신 줄 알면서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르신은 꼭 나으실 거예요, 나으실 수 있고 말고요"라며 거짓말을 했다고... 그러면서 "나는 어르신들에게 이뤄질 수 없는 '희망'을 말하는 거짓말쟁이예요, 그런 거짓말을 계속해야 하나 싶어요"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경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자야(가명) 할머니에게도 그랬다. 그녀는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반드시 나을 수 있다"며 거짓을 말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야 할머니는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여 전이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생활하는 할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다. 중추신경계의 이상으로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활동을 잘 못하는 파킨슨병과 그로 인한 당뇨와 고혈압 등의 합병증으로 인해 할머니는 하루 세 번 열대여섯 알 정도의 약을 삼키고 계셨다고.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든데다 당뇨합병증으로 눈도 침침해진 할머니의 가장 큰 소망은 오직 하나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누가 옆에서 부축해 줘야만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던 할머니지만 늘상 입버릇처럼 "걷기만 하면 커다란 소 한 마리를 잡아 마을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잔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온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나 방바닥을 벅벅 기어 힘들게 힘들게 혼자 볼일을 보고 나오셨던 할머니. 화장실에 혼자 가는 일은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이었고 반드시 완치돼 걷겠다는 할머니의 의지였다.
하지만 파킨슨병은 현재로서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할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고 증상을 완화시켜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뿐. 현대의학도 할머니의 소망을 이루어 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잡고 있는 희망의 끈을 잘라버릴 수 없던 그녀는 만날 때마다 "곧 완치돼서 걸어 다닐 것"이라며 거짓말을 했단다. "뇌졸증으로 쓰러져 꼼짝도 못하고 할머니보다 훨씬 상태가 나쁘신 분도 열심히 운동하고 치료받아 건강을 되찾고 걸어 다니더라"며 희망을 줬다.
그리고 "할머니도 반드시 일어설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다고,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도 지으며 나들이도 다닐 수 있다"며 용기를 줬다, 2년 내내... 그리고 그녀의 말에 희망과 용기를 갖고 혼자 걸을 수 있다는 소망을 품으며 세월을 견디는 할머니를 보면서 할머니를 속이고 있다는 데 대해 자책감이 들었다고.
그러다가 지난해 9월 추석 무렵, 전등을 새로 교체하시려던 할아버지가 넘어져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그녀는 잠시 할머니를 뵙지 못하게 됐다. 할머니를 수발하시던 할아버지가 입원하면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같이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할아버지와 함께 한 달여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초 즈음이었다. 익숙했던 집이 아닌 병원에서의 생활이 힘드셨던 걸까. 그녀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많이 야위고 초췌해져 있어 가슴이 아팠다고 전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지 보름여 만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만을 남겨 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멀고 먼 곳으로 훌쩍 떠나고 말았다고.
김숙이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할머니댁을 방문했는데 그날도 할머니에게 "매일 매일 꾸준히 운동하면 반드시 나을 거라고, 아니 낫는다고, 걸을 수 있다고, 지금도 많이 좋아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문득문득 마지막 순간 할머니가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절로 한숨이 나오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밀려 온단다. 마지막까지도 할머니에게 헛된 희망의 거짓말을 한 자신이 밉기도 하다. 할머니에게 거짓이 아닌 진실을 알려드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자책감도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싶었기에 거짓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김숙이 센터장은 "대부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중증의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앓아 왔고 그중에는 완치가 불가능한 분들이 많지만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며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어르신들의 희망을 위해 앞으로도 거짓말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자야 할머니는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할머니는 다 알면서도 애써 믿고 싶어 내색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녀의 거짓말에 용기와 힘을 얻어 기적처럼 완치되고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어르신들에게 거짓을 말해야겠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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