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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국가는 정당한 것인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국가는 정당한 것인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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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주도의 한식세계화 예산은 242억5000만 원 배정,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

지난 2010년 말, 국회를 통과한 2011년 예산안 중 일부 내용이다. 트위터 등의 SNS 서비스와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공분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기사는 1400개가 넘는 댓글 수를 기록하며 포털사이트 다음이 집계한 그날의 '최다댓글뉴스'에 선정됐다. 하지만 달라지는 사실은 없었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우리 스스로가 국가라는 정치체제에 권리를 내놓고 노예가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국가는 정당한 것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5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강 박사는 "국가는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며 "국가를 성립시키는 기본 철학인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맹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정말로 문명사회의 상징일까

영국의 근대 철학자 토마스 홉스에 의해 처음 도입된 사회계약론은 현대 국가 성립의 철학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서로 투쟁하는 상태이므로 상호 공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모든 갈등과 대립을 없애 줄 공통적 권위인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는 사회적 계약을 맺기 때문에 국가가 성립된다는 것이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의미이다.

강 박사는 "사회계약론의 실체는 우리가 계약에 따라서 자신의 권리들을 물려주는 것"이라며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국가와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이 왕에게 권위를 부여했다'는 왕권신수설이 중세에 국가를 지탱하는 의식적인 기반이 되었다면, 사회계약론은 신의 영향력이 미미해진 근대에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관념적인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계약론이 태동하던 시기 활동하던 스코틀랜드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논문을 소개하며 "흄은 사회계약론에 대해 '본 적도 없는 계약일 뿐더러 그 내용도 불공평하다'고 썼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에서 국가를 정당화하는 홉스의 논리에는 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하나 도사리고 있다"며 "과연 인간이 자신의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자신의 권력을 국가에게 양도하는 순간, 개인은 삶의 주체가 아닌 국가의 노예가 되기 때문. 강 박사는 "나의 권리를 누구에게 주는 순간 나의 권리는 사라진다"며 "이것이 사회계약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가면서 각각의 개인은 권리라는 걸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정이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누군가에게 줬을 때 당연히 나에겐 권리가 없어지겠죠. 여러분들이 투표할 때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에게는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강력한 권한이 있습니다. 국회를 해산시키고 신처럼 통치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있거든요. (대통령이 그걸 쓰더라도) 이미 줬기 때문에 우리에겐 권력이 없고 힘도 없어요. 권력이 없는 사람을 노예라고 부르지요. 이게 사회계약론의 바닥에 있는 전제이자 맹점입니다."

강 박사는 "사회계약론이 현대 국가에서 생명력을 얻어 살아가고 있는 비결은 선거에 있다"며 "국가가 투표를 독려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선거제도가 유지되는 한 각각의 국민들은 자신의 권력을 매번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국가에게 휘둘리게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를 선거를 통해 뽑았거든요. 히틀러는 국가를 통치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독일 국민들이 그걸 원해서 뽑았을까요? 하지만 정해진 임기 동안 그 누구도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죠. 이미 그들은 히틀러에게 자신의 모든 권력을 합법적으로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인디언 사회에서 배우는 공동체의 원리

철학자 강신주 박사.
 철학자 강신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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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박사는 국가를 문명사회의 상징으로 본 홉스의 반대항으로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를 소개했다. 클라스트르는 국가가 문명이 아니라 야만적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던 학자다. 중남미에서 인디언 사회를 연구했던 클라스트르는 국가나 권력이 가혹한 야만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류 역사에 거대 석조물이 등장한 게 5천년 쯤 전인데요, 거대 석조물이라는 건 당시 권력과 노예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도 마찬가지죠. 고층 건물이 있다는 건, 그 건물을 짓거나 살 만한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의미죠. 인디언 사회의 특징은 고대 유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권력을 양도하지 않았고, 때문에 노예가 없었던 사회입니다."

권위적 지배와 복종으로 지탱되는 홉스의 국가 모델이 결국에는 약육강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디언 사회에서는 권력의 위계 차이가 전혀 없고 성인이면 누구나 동등한 주체로 대접받았다는 얘기다. 강 박사는 "인디언들은 약하다고 해서 강한 자에게 비굴하게 복종하고 강하다고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자연이나 야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들이 홉스의 국가 모델을 보았다면 야만이라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강하게만 키우지 마세요. 아이한테 약자를 돌보고 강자에게 복종하지 않도록 키우면 여러분들이 나이 들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약해졌을 때 아이들은 여러분을 돌봐요. 강한 자들이 모든 것을 가진다고 가르치고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서 나중에 아이가 강해지면, 물론 계좌에 50만 원, 100만 원씩 입금은 될 거에요. (단, 여러분들이) 연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웃음). 여러분이 약해질 때 그게 공동체고 가족이 되잖아요. 인디언 사회는 우리에게 그걸 가르쳐줍니다."

강 박사는 "클라스트르는 경쟁도 약육강식도 없는, 개인이 권력을 양도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각자가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어떤 약한 사람을 봐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면 야만은 바로 끝날 것"이라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현재 진행 중인 '정치철학 특강 1부' 강좌에 이어 오는 2월 9일부터 마르크스와 벤야민, 기 드보르, 랑시에르를 잇는 흐름 속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실천을 모색하는 '정치철학 특강 2부' 유료 강좌를 마련했다.

2~3월 매주 수요일 저녁 전체 8강 규모로 열리는 '정치철학 특강 2부'에서는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등의 교재들을 통해 '인간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정치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

☞ [클릭]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 신청하기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국가는 정당한 것인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국가는 정당한 것인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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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신주, #철학, #정치철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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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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