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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해, 나와 같은 71년 돼지띠는 올해로 만 마흔살이 되었다. 불혹(不惑)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어지간하면 세상사에 혹하지 않을 때도 되었지만,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했다는 <진보집권플랜>(이하 <플랜>)은 새해 벽두부터 다시 내 마음에 유혹의 불을 댕겼다.

 

무엇보다, 진보진영이 집권을 위한 '플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다. 보수든 진보든 한국의 정치세력이 이처럼 집권을 위해 공공연하게, 또 대중적으로 뭔가를 주도면밀하게 기획을 하고 계획을 세워서 예측이 가능한 정치를 펴 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세력은 사회적 안티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야당 세력이 집권 '플랜'을 생각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은 스스로가 늘 얘기했듯이 대통령 준비만 30년 넘게 한 사람이다. 2004년 총선에서 10석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향후 10여년 뒤 집권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의 경우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한 바가 컸고, 민주노동당은 분당 사태를 겪는 등 적어도 현재로서는 의미 있는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플랜>에서도 지적했듯이 김대중 정부를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상대적으로 거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집권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했던 개혁적 과제들을 치밀하고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물론 다른 많은 이유들도 상당히 있었다) 노무현 지지층의 이탈과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졌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플랜>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대선을 불과 2년(총선은 1년여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아직 집권의 주체로 적시한 '진보'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미약한 시도가 훗날의 천군만마로 돌아오리라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아마 누군가가 <보수집권플랜>을 기획한다면, 그 또한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굴러왔던 한국정치의 수준을 몇 단계는 높이는 데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유시장'은 환상이다... 정치와 경제는 한몸

 

 

그래서, 불혹의 나이를 잊게 하고 나를 미혹에 빠져들게 만든 그 '신명 프로젝트'에 미력이나마 신명을 보탤까 싶어서 나만의 '플랜'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플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보집권을 위한 방책들이 분야별로 쪼개져 다소 파편적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에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플랜>처럼 전에 없던 일을 새로 시작할 때, 혹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손에 잡히는 부분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법은 매우 유효하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그렇게 쪼개져 있지 않다. 우리는 뉴스보도나 신문기사를 보면서 정치, 외교, 사회, 군사, 교육, 경제 등등의 분야 소식들을 접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얽혀 있는 복잡계다. 누군가는 그 실체적 총체를 일괴암(一塊巖)적으로 조망하고 분석하고 설명해 줘야만 한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는 통상적인 경제주체들 사이의 관계와 자유 시장에 의해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장하준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자유 시장'은 환상이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작년 연평도 피격사건에서 보았듯이 한국경제는 근본적으로 남북관계에 저당 잡힌 구조다. 그리고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주변 강대국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것은 그래서 무역-안보동맹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편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지난 역사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요컨대 한국사회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현 위치를 입체적으로 조명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나 또한 여기에 답을 줄만큼의 역량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현 시기를 인식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미국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저물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떠오르기 시작했으나 패권국가가 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것이 모자라는 중국, 이 전환의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한국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공약만 놓고 보면,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당선감

 

일괴암적이고 통섭적인 관점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자.

 

"무상급식·무상의료가 '박근혜 복지'를 이길 수 있을까?"

 

다음 대선에서는 복지 분야 정책이 큰 쟁점이 되리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무상급식은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한 현안이다. 박근혜는 지난달 20일,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입법공청회에서 '한국형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질세라 민주당은 최근 무상의료정책을 선언하기도 했다. 과연 좋은 복지정책을 낸 사람이 대권을 쉽게 잡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힌트를 작년 지자체 선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복지문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진보신당의 대표주자 심상정은 투표일을 3일 앞두고 경기도지사 후보를 자진사퇴해 선거판 전체에 큰 충격을 던졌다. 천안함 사건이나 MB 실정보다도 복지문제에 가장 열을 올렸던 심상정 후보는 왜 "국민의 이명박 정권 심판의 뜻을 받드는 데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을까? 그럼에도 왜 선거 뒤에는 또 무상급식이 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을까? 그의 10대 핵심공약 중 2012년 초중등 친환경 무상급식은 제 2번에 해당하는 공약이었다.

 

아마도 유권자들이 공약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투표했다면 심상정은 무난히 경기도지사에 올랐을 것이다(실제로 그의 공약은 시민단체로부터 최고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지도자를 뽑을 때 분야별 공약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만을 보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의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성숙했기 때문에 좋은 공약이 없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선거 당시의 전체적인 국면을 보고 투표를 한다. 사람들은 MB를 어떤 형태로든 심판하고 싶어했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지 않아 무상급식 문제가 뜨겁게 떠오른 것을 보면, 유권자들이 선거 때는 전혀 무상급식에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관심이 많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무상급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포함해서 당시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모습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투표의 판단기준을 세웠다.

 

복지공약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사람들은 "과연 저 후보가 당선되면 저런 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까?"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반대파를 물리치고 또 임기가 끝나더라도 그 일이 계속되게 하고… 이런 일들은 좋은 공약 자체가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공약을 끝까지 살려 현실화시키는 것은 결국에는 정치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복지공약의 디테일과 그 실현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따져보고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MB치하에서는 어떤 좋은 일도 실현되기 어렵겠구나"라는 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권자들은 사태를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훌륭한 복지공약과 정책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사실 소위 '좌파진영'은 지금까지 세상 모든 일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해왔다. 경제는 물론, 복지문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세와 무관하게 복지만 말하는 것은 마치 노동자들에게 정치투쟁보다 조합의 이익만을 위한 투쟁에 나서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복지를 전면에 내건 심상정이 MB심판이란 구호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 건 '정치 없는 복지'의 예견된 패배였다(관련링크: "심상정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심상정의 눈물은 집권을 기획하는 진보진영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아무리 복지가 대세고 그에 맞게 훌륭한 복지공약과 정책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물론 그렇게 만반의 준비는 해야 한다) 그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모든 잠재적 대선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박근혜가 이미 '한국형 복지'를 들고 나왔다. 내년 총선과 대선 때는 복지공약들이 가장 흔한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복지공약 그 자체만 놓고 보면(후보별 공약의 차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눈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플랜>에서도 말했듯이 '반값 아파트'나 '반값 등록금' 공약은 이미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진보가 집권하려면 '복지공약'만으로는 어림없다. 그 공약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조차 '정치'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다시 내년 대선에서 'MB심판론'이 큰 힘을 발휘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만약 친이계가 당내 경선에서 몰락하고 박근혜가 본선에 나온다면, 누가 당선되든 어떻게든 전 정권에 대한 일종의 청산이 이뤄지리라고 국민들은 기대하게 된다. 대책 없고 무능한 야당보다 5년 동안 핍박받은 박근혜가 보수의 관점에서, 정치보복 없는 MB심판의 적임자라는 기대감이 퍼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 생각하고 방어전략 짜야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관념으로만 미래를 재단하지 않고 한국사회의 현실을 밑바닥에서부터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이것은 조국이 <플랜2> 같은 기회에 해소해 주기를 기대해 보면서, 현재 수준에서 <플랜>의 길을 따라 분절적으로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 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국가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내 생각에 다음의 세 가지가 필수적이다. 외교·국방, 조세, 인재양성. 외교와 국방은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취약한 분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외교·국방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철학,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은 경색된 남북관계,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는 게 물론 급선무다. 나아가 북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킬 임무가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질 것이다.

 

정전협정이 폐기되면 남북한 상호간의 방위개념이 완전히 바뀌며('휴전선'이라는 단어부터 바꿔야 한다) 상호군축이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혹은 그 와중에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체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차기 대통령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전시작전권 반환이 예정된 2015년은 차기 대통령의 임기 한가운데로서 국군과 미군의 역할에 심대한 변화를 야기할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을 전략기동군화하고 전방의 2사단을 옮기기로 한 만큼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은 예전과 같을 수가 없다. 게다가 미국이 자국의 이유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혹은 유지하지 못할) 개연성도 있는 만큼, 좋든 싫든 이제 우리는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를 염두에 두고 방어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물론 국가안보는 군사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평화가 남북한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에게도 큰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미FTA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상호이익이 커질수록 군사행동의 동기는 줄어든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북한 군부대를 후방으로 물린 효과를 무시하면 안 된다. 만약 노무현-김정일의 10·4 합의가 이행되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만들어졌다면 연평도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대북압박정책의 결과로 남북경색이 지속되고 있지만, 차기 정부는 이를 풀고 김대중-노무현의 성과를 뛰어넘어야 한다. 예컨대 남북한은 물론 200만에 달하는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4~5만)까지 포괄하는 '한글경제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당사자들 모두에게 경제적인 이득(남한의 경우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나 7천조 원에 달한다는 지하자원이 주는 이득 외에 코리아 리스크와 대외무역의존도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을 줄 뿐만 아니라 역내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통일한국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처럼 신냉전적 정책으로 북한을 중국의 '동북4성'으로 내모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짓이다.

 

매력적인 지도자 만드는 것조차도 '플랜'의 일부

 

다음으로, 조세에서는 역시 '복지'가 핵심일 것이다. 조국이 <플랜>에서 말했듯이 이제는 우리도 '사회임금'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즉, 세금을 지금보다 많이 내는 대신 (물론 부자들이 더 많이 내야겠지만) 인간다운 최저생활이 보장된다는 신뢰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천 원 하는 버스 요금이 두 배로 오른다고 해서 중산층이나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살인적인 이자율을 알면서도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든지, 실직하거나 사업이 부도났다든지, 혹은 큰 송사에 휘말린 경우 우리를 도와줄 사회안전망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에 세금을 더 내고 지하철 버스요금이나 전기 가스요금을 두 배로 올리는 대신 평생 가족들 병원비나 자녀 양육비 교육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극빈층을 제외한다면) 이 거래를 거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비싼 에너지를 모두 수입하는 나라에서 저렴한 에너지 요금을 유지하며 만성적자를 다시 국민세금으로 메우는 구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좋은 사회란 버스비나 세금이 싼 사회가 아니라, 내 가정에 어지간히 큰 불행이 닥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신뢰가 지켜지는 그런 사회다. 문제는 한국처럼 불투명한 사회에서 혜택의 확신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상대적인 형평성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그런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들이다. 장밋빛 복지공약만 남발하면 거짓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복지형 국가로 체질개선하려면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야 한다.

 

세 번째 인재양성과 관련해서는 서울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서울대는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으면서 대학교육이나 초중고 공교육 개혁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플랜>에서도 서울대 분할 문제가 언급된 만큼 여기서는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진보세력이 집권을 통해 한국사회를 진정으로 개혁하려 한다면, 서울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외교와 국방, 조세, 인재양성이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어느 국가에서나 필수적인 요소라면,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공화국'에 필수적인 요소들도 있다. 이 문제는 질문을 뒤집어서,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수월하다. 내 생각에 현재 한국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3대 성역'이 있다. 검찰, 대기업, 대형 언론사.

 

이들에게만큼은 대한민국의 국법질서가 올곧게 적용되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일반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법치가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나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이 '3대 성역'이라고 생각한다. 선진화된 민주사회에서는 법치의 성역이란 있을 수 없다. 진보진영이 집권해야 하는 이유가 민주주의 수호 발전, 선진국 진입이라면 이 성역을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플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다른 어떤 과제에서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정부의 노무현은 하나의 성역과 타협했고 두 개의 성역과 전쟁을 치렀다. 현재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사람들 중 누가 이 3대 성역을 비타협적으로 깨뜨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진보세력이 집권을 위해 제아무리 좋은 '플랜'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과연 집권이나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래서 <플랜>의 마지막은 '인물평'으로 마무리했던 것 같다. 즉, 매력적인 지도자를 만드는 것조차도 '플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유시민, 그에게 필요했던 건 '경력' 아니라 '순교자의 피'

 

한국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은 결코 안정되고 평탄한 사회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이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호해 온 것은 아닐까? 박정희는 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도덕성보다 능력'을 보고 이명박을 선택한 것도, 지금 박근혜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노무현이 기적과도 같은 대역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람들이 그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후보 출정연설에서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자고 했다. 수도이전공약도 이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려던 맥락이라면, 헌법재판소가 경국대전을 들고 나온 것은 어쩌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쳤던 그 600년의 역사를 지키기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믿었던 것은 그의 인생을 통해 적어도 그가 세상을 바꿀 의지만큼은 굳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예컨대 노무현의 적자 유시민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미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그에게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서 필요했던 것은 도지사 경력이나 수도권 바람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아니, 사람들은 지금 세상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 한다. 집권을 플랜하고 있는 진보는 지금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가? 그리고 세상을 바꿀 힘이 있기는 한 것인가? 600년이 아니라 60년이라도, 그 비겁한 역사를 바꿀 의지는 있는가? 국민들이 그 의지만큼은 과연 믿어줄 것인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재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다. 명심해라!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 추운 겨울에도 다시 한 번 가슴에 불을 댕길 준비가 되어 있다.


태그:#진보집권플랜, #조국, #오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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