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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나오는 건 극히 일부분이다. 우리 동네는 궤멸하다시피 했다. 32농가 중 2농가만 살처분을 면했는데, 그 집의 소들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럴 때 도와줘야 한다. 축산은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이다."

 

지난 달 30일 젖소 106마리를 땅에 묻은 경기도 파주의 축산 농민 박승대씨의 호소다. 동네에서 구제역 의심소가 나오면서 '반경 500미터 이내 모든 소를 예방적으로 살처분해야 한다'는 조치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살피던 소들을, 바로 그 목장 앞에 파묻어야 했다.

 

박씨는 진보신당이 12일 국회에서 주최한 '일파만파 구제역 대안은 없나' 토론회에 나와 "20, 30년을 동고동락하던 목장이 불과 하루 반 만에 사라졌다"며 정부의 초기대응의 문제를 지적했다.

 

"구제역 방역초소가 설치되고 몇 군데 마을 길목을 차단하면서 허술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구제역이 발생한 후 3일간은 공황 상태였다"고 전한다. 초기에 예방백신을 접종해 확산을 차단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살처분만이 능사인지, 다른 방법으로 한 마리라도 살릴 길은 없었던 것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살처분 소-돼지, 발표보다 많을 것... 축소, 은폐한다면 큰 문제"

 

박씨는 11일 기준으로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한 소와 돼지의 수가 140만 4000여 마리라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현장에서 임상 확진돼 살처분한 통계는 누락되고, 현장에서 임상확진이 불분명해 검역원이 추후에 확진한 분량만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동네만 해도 현장에서 확진돼 살처분된 숫자는 정부 통계에 빠져 있다"면서 "정부가 구제역 발생을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오히려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몰 살처분의 후유증도 우려했다. 정부는 구덩이에 비닐을 깔아 가축들을 묻은 뒤 그 위에 석회가루를 뿌려 흙으로 덮고, 곳곳에 가스배출을 위한 플라스틱 관과 침출수용 정화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살처분하고 있다.

 

박씨는 "우리 소들의 경우 약 5미터 깊이로 묻었는데, 파묻힌 소들이 몸부림치면서 비닐을 찢을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 동네에서만 3000여 마리를 동네 근처에 묻었기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될 것 같아서, 이 동네 물을 계속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협 소값, 시세와 큰 차이... 현실적, 실질적 보상 돼야"

 

그는 "역시 젖소들을 집 앞에 묻은 친구 어머니는 꿈에 소들이 계속 나타나서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한다"고 축산농들의 정신적 충격을 전하면서, "곳곳에 소를 묻은 흙더미들이 있고 그 위에 가스배출 파이프가 나와 있어 동네 전체가 공동묘지 같다"고 전했다.

 

그는 "소를 묻을 때 여든 되신 아버지가 '6.25 전쟁 때 피난 나와 먹을 게 없는 시절에도 살았다, 정신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셨다. 다른 축산농들도 힘드시겠지만 힘내십시오"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부의 보상과 관련해서는 젖소에 대한 농협 산지가격(280만 원대)은 시세가격 350만 원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보상이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제역 발생 이후 소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점도 심각하게 우려했다.

 

또 젖소의 경우 첫출산과 우유 생산 때까지 최소 2년이 걸리고 구제역 파동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5년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새로 들여오는) 입식자금 대출을 현재 '3% 이자에 2년 거치 3년 상환'에서 '이자 1%에 5년 거치 5년 상환'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함께 현재 살처분한 지역에서 다시 목장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도 나타냈다.

 

"정부 대응과정에 수의학자들 의견 전혀 반영 안 돼"

 

토론자로 나온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정부는 이번 구제역 파동 과정에서 백신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OIE(국제수역사무국)의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또 2000년 이후 수의학계에서 백신 활용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했음에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제역이 빠르게 확산되는데도 매몰 살처분으로 일관한 정부 정책결정과정에서 수의학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또 단지 기술적, 행정적으로만 접근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계에서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제역에 대한 대응방식이 살처분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경직된 방법을 관습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며 "발생 초기에는 필요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좁은 국토에서 그런 방식으로 해야 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제역은 인간에 대한 영향은 없고, 치사율도 소는 성체가 10%, 미성체가 50% 이하이고 돼지는 10%미만"이라면서 "그럼에도 법정전염병이 된 것은 전염력이 굉장히 높고 고기와 우유 생산량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측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역요원 정신상담? 어쩔 수 없이 죽인다면 절차라도 밟아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전진경 이사는 "청정국 지위에 대한 막연한 집착으로 백신접종시기를 놓쳤는데, 언론도 마찬가지로 백신 사용에 저항하는 모습이었다"면서 "수출때문이라지만 실제 소, 돼지 수출액은 2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뒤늦게 돼지에 대한 백신접종에 나서면서도 어미 돼지와 종돈 6만여 마리(15%)에만 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많은 돼지를 죽여도 어미돼지와 종돈만 있으면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다는 발상에 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이사는 계속해서 동물권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살처분 때도 동물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OIE기준은 물론, 전염병 때문에 동물을 죽이는 경우 가스법이나 (전기충격에 의한) 전살법으로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해 대규모 동물학대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일본이 28만여 마리를 살처분하면서 했던 것처럼 소에 대해서는 공인된 안락사 약제를 통해 안락사 시킨 뒤 매몰하는 것이 국제기준인데 비해 우리는 안락사 제재도 아닌 근육마비제를 쓰고, 그나마 정맥도 아니 근육에 주사해 산 채로 파묻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돼지도 외국은 감전사 시키는 데 비해 우리는 산 채로 생매장한다. 전 이사는 "돼지 1만3000마리를 생매장하는 데 불과 6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돼지, 닭에 대한) 비위생적인 공장식 집약축산, 국내 씨소가 50여 마리에 불과한 유전적 단일성이 이번 사태와 같은 대재앙을 만드는 최적의 환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살처분에 참여한 방역요원이나 수의사들의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상담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정말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약재를 쓰고 절차를 밟아서 죽이는 것이 이들의 '정신적 외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방청객으로 나온 한 축산농민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축산농가에서 소독만 철저히 하면 막을 수 있었다고 하던데, 처음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소독기를 갖고 살다시피 했다. 우리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냐"고 묻자 "축산기술연구소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있다며, 축산농가에서 막으라고 하는 건 책임전가"라고 답했다.

 

사회를 맡은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구제역 사태는 우리의 '사회적 질병'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확산되는데도 통제를 못한다는 것이 정부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고, 이렇게 수백만 마리의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사회가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밝히며 토론회를 마쳤다.


태그:#구제역, #매몰살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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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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