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 세계의 관심을 받은 뉴스 중 하나는 수단 남부의 국민투표였다. 남부의 독립을 결정짓게 될 이번 국민투표는 지난 1월 9일 시작돼 15일까지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남부 주민의 높은 열망을 반영하듯 투표율은 투표 시작 4일 만에 유효 선인 60%를 넘어섰고 국민투표위원회는 최종 투표율이 83%라고 밝혔다. 2월 초에 발표될 투표 결과에서 과반수가 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면 남부 수단의 독립이 결정되고 7월 9일에는 아프리카 54번째의 국가가 세워지게 된다.
남부 수단이 독립하게 되면 지금까지 거의 2백만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낳은 수단 내전이 실질적으로 끝나게 된다. 1983년에 시작된 아랍계 이슬람의 북부와 아프리카계 기독교인이 다수인 남부 사이의 내전은 2005년 평화조약으로 끝났지만 그 후로도 무장 충돌이 계속돼 실질적인 평화는 멀기만 했다. 국민투표는 2005년 평화조약에서 이미 합의한 내용으로 투표가 성공하면 비로소 내전의 근본원인이 제거돼 지속가능한 평화의 토대가 세워질 전망이다.
이번 투표는 남부 주민들의 높은 문맹률과 선거 경험의 부족, 그리고 남-북 경계 지역에서의 무장 충돌 가능성 때문에 많은 우려를 낳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내전과 그에 따른 생존의 위협과 가난에 시달려온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평화가 소중했다. 동시에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북부의 정치적, 경제적 차별과 그에 따른 남부의 저개발, 실업, 가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독립국가 수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유가 가난보다 훨씬 낫지요"
높은 문맹률을 고려해 투표용지에는 독립 찬성을 의미하는 하나의 손과 반대를 의미하는 악수하는 손의 그림이 그려졌다. 제대로 된 선거를 해본 경험이 없지만 미래를 결정할 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주민들은 9일 아침 투표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투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세계 곳곳에 흩어졌던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돌아왔다. 남부의 독립으로 내전이 끝나고 오랜 차별에서 벗어나게 될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투표를 축제로 만들었다.
투표소 앞에서 <인터네셔날 헤랄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의 인터뷰에 응한 수잔 두쿠는 벌써 독립 국가를 꿈꾸고 있었다.
"당연히 독립에 찬성한다. 새로운 세계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학생이라고 밝힌 사이먼 마티에크는 독립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부의 오랜 독립 열망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자유가 가난보다 훨씬 낫지요." 식민지 시절부터 수단을 통치하며 기득권을 누려온 북부의 남부에 대한 핍박과 차별은 사실 1956년 독립 전부터 시작됐다. 수십 년 동안 북부 정부의 지원을 받은 무장세력들은 남부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하고, 아이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기도 했다. 1983년 내전이 시작된 이후 남부 주민들은 수단 국민이면서도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가 지원하는 무장세력들의 폭력 때문에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어야 했다. 이런 남부 주민들에게 국민투표는 수십 년 고난의 행군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해주는 일인 것이다.
무장세력들, 조지 클루니가 지금 보고 있다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제사회는 남-북 경계 지역에서 북부 무장세력들의 투표 방해 폭력 행위를 막는 것이 국민투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집중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런 국제사회의 노력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오랫동안 수단 다푸르 지역의 인권 문제를 다뤄온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공동 조직한 위성 감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조지 클루니가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틀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과 세계의 대량 살상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한 "우리 감시 하에서는 안돼"라는 뜻의 '낫 온 아우어 워치(Not On Our Watch)'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위성 감시 프로그램에는 대량 살상과 전쟁 범죄 예방에 주력하는 이너프 프로젝트(Enough Project,
www.enoughproject.org), 유엔 위성 적용 프로그램, 구글, 하바드 인도주의 운동, 인터넷 회사인 트렐론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남-북 경계 지역을 지나는 상업 위성이 촬영하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투표 전과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살상, 폭력, 전쟁 범죄 등을 감시하는 것으로 지난 12월 29일부터 가동되고 있다.
사실상 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지 클루니는 국민투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씨엔엔(CNN), 씨비에스(CBS), 에이비씨(ABC) 등 주요 매체를 통해 수단 폭력 종식의 계기가 될 남부 국민투표의 중요성과 함께 위성 감시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이너프 프로젝트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조지 클루니는 이 프로그램이 무장세력들의 살상과 폭력을 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우린 대량 살상과 전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그리고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전쟁 범죄는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기가 훨씬 힘들어진다."위성 감시 프로그램과 세계 주요 언론사들의 관심 덕분인지 국민투표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투표가 시작된 다음 날인 10일 투표를 위해 북부에서 돌아오던 사람들이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한때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의 학살이나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고 투표는 평화롭게 진행돼 83%의 투표율을 기록하게 됐다.
남부 수단 독립, 세계 희망 빛 던져주는 사건 될 것이번 투표에서 핵심 역할을 한 폴 유구스크 주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승리의 나팔을 불 때다, 노예와 억압의 시절은 끝나고 이제 우리는 자유다"라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투표 종료를 자축했다.
남부의 수도인 주바는 이미 축제 분위기다. 사람들은 남부 깃발을 흔들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눈앞에 다가온 독립을 축하하고 있다. 알 자지라(Al Jazeera)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투표가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안토니 라마야는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빨리 투표를 했다는 것은 국민투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메리 크와제도 힘주어 강조했다.
국민투표 결과로 남부의 독립이 결정된다 할지라도 7월 9일로 예정된 건국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악명 높은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순순히 결과를 인정할지를 놓고 국제사회는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가 수차례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확인했지만 서부 다푸르 지역에서의 전쟁 범죄와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그를 국제 여론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돼 새로운 국가가 세워진다 할지라도 당장 평화가 정착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부 정부의 의지가 있더라도 무장세력들의 무장해제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북부 정부와 싸우면서 남부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는 서부 다푸르 반군세력과 남부 정부와의 향후 관계도 남부의 불안한 평화를 흔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구호단체들이 이미 우려를 표하는 것처럼 국민투표를 계기로 돌아온 난민들은 가난한 주민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고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난한 신생 국가의 정부가 이런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 결과로 남부가 독립하고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의 억압과 차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것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므로 전 세계가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특별히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피의 내전이 무기가 아닌 국민투표로 마감된다면 전쟁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