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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근처 중국인 거리 입구에 서 있는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형물
 기차역 근처 중국인 거리 입구에 서 있는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형물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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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관광지를 뽑으라면 '푸껫'일 것이다. 푸껫은 한국에서도 신혼부부가 찾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푸껫이 타이의 아름다운 바다를 자랑하는 관광지라면 타이의 내륙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치앙마이를 꼽을 수 있다. 나는 바다가 아름답다는 푸껫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산을 좋아하는 아내를 따라 치앙마이를 찾아 떠난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가면 쉽게 갈 수 있는 치앙마이이지만 느린 여행을 하고 싶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택했다. 방콕공항에 내려 방콕기차역으로 향한다.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공항전철을 타니 15분 정도 걸려 시내에 내려놓는다. 이제는 시내전철(MRT라고 부른다)로 갈아타고 기차역에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공항전철에서 내려 30도를 웃도는 낯선 방콕 도시 한복판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매연을 마시며 꽤 오랜 시간을 걸어도 전철역이 나오지 않는다. 공항전철에서 내려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린 순간의 잘못 때문에 한 정거장을 반대로 걸어온 것이다. 무작정 다니는 여행이기에 겪는 어려움이다. 앞으로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는 여행이 될 것을 각오하며 전철에 오른다.   

기차역에 도착해 침대차 표를 사려고 하니 침대차 표는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매진이란다. 하루에도 비행기가 수시로 방콕과 치앙마이를 날아다니는데 침대차 좌석이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며 갈 생각으로 좌석 표를 끊었다. 급행 기차임에도 12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무작정 걷는다. 큰길을 건너니 인터넷 카페가 있다. 인터넷으로 치앙마이에 있는 호텔을 예약한다. 침대차 표를 쉽게 살 수 있으려니 하고 왔다가 낭패를 본 우리는 혹시 치앙마이에서 잘 곳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며 조심스러워진다. 타이 사람이 크리스마스 명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듣긴 했으나 그래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교통체증과 매연이 넘쳐나는 방콕 시내를 목표 없이 걷다 보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웅장한 절이 있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자동차와 관광버스가 줄지어 정차해 있다. 여행안내원의 깃대를 따라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썰물처럼 나간다. 사람들은 오래되고 유서 깊은 절을 찾을 것이라는 내 상식을 무너뜨리는 절이다.

절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입장권 파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부처를 볼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가격표가 붙어 있다. 새로 지은 이 절에 금부처가 모셔져 있는 모양이다. 금으로 만든 부처, 돈 없는 사람은 가까이할 수 없는 부처, 부처님이 기뻐하실까? 들어가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예수님을 사랑하면서도 교회에는 선뜻 발을 담그지 못하는 내 성격으로는...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비스러운 모습의 부처.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비스러운 모습의 부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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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부처가 있다는 새로 지은 절을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
 금부처가 있다는 새로 지은 절을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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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나와 다시 낯선 거리를 걷는다. 지독한 교통체증이다. 큰길을 건너려는데 교통경찰이 자동차와 행인을 단속한다. 멀지 않아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고급 승용차가 지나간다. 왕의 딸이 막 지나갔다고 한다. 태국 국왕을 존경하는 국민이기에 왕의 딸도 존경받는 것일까 아니면 권력의 남용일까?

조금 일찍 기차를 타려고 정거장에 들어선다. 정거장에는 여느 기착역과 마찬가지로 음식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특이한 것은 선로 옆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들이다. 2명의 아가씨와 한 명의 마음씨 좋게 생긴 남자 이발사가 플라스틱 의자에 손님을 앉혀 놓고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나를 아가씨 이발사가 손짓하며 이발을 하라고 부른다.

기차에 올랐다. 12시간, 장거리 여행의 시작이다. 기차 내부는 좌석이 조금 낡았지만, 생각보다 깨끗하다. 비행기 흉내를 낸 간단한 식사도 나오고 밤에 덮을 담요도 한 장 준다. 기차는 내가 타 본 기차 중에 가장 덜컹거리며 달린다. 탈선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좌우로 몹시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새우잠을 청한다. 사서 하는 고생이다.

내가 지금 겪는 고생을 수도자들이 에둘러 힘든 길을 찾아가는 순례여행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고산에 사는 원주민을 만나러 가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길이다. 오늘이 보름인가? 창밖으로는 밝은 보름달이 밤안개 피어오르는 시골 풍경을 비추고 있다.

기차는 예정 시간보다 늦은 아침 7시가 다 되어서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춥고 불편한 새우잠을 자며 13시간을 시달린 끝에 목적지에 온 것이다. 내리자마자 방콕으로 돌아가는 침대칸 표를 알아본다. 단 두 자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내와 나는 따로 떨어져야 하는 침대칸이다, 그래도 13시간의 고행(?)끝이라 발 뻗고 잘 수 있는 침대칸이 있다고 하니 두말하지 않고 표를 샀다.

우리가 기차표를 사는 동안 옆에 서성거리던 사람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호텔 이름을 대니 100바트를 (약 4000원 정도) 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바가지요금인 것은 알고 있으나 깎으면 얼마를 더 깎을 것인가? 피로한 김에 두말없이 차에 올랐다.

호텔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다. 호텔의 호의로 1시간 정도 기다리니 방이 준비됐다며 열쇠를 건네준다. 다리를 펴고 누울 장소가 생긴 것이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다리를 마음껏 뻗어본다.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차역 선로 옆에서 머리를 깎아 주는 거리의 이발사
 기차역 선로 옆에서 머리를 깎아 주는 거리의 이발사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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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다녀온 태국 북부 산악지대를 여행한 글입니다.



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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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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