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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병원의 약제비 본인부담금을 상향조정하는 안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약제비의 본인부담금 비율이 동네의원만 30% 현행으로 유지되고 병원 40%, 종합병원 50%, 상급종합병원 60%로 병원의 규모에 따라 차등인상된다고 한다.

 

이 제안은 이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본회의에 상정되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이 내용은 원래 '대형병원 외래경증환자 집중화 완화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내용이다. 초기 계획은 환자를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고 경증 외래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차등적으로 올린다는 것과 재진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차등적으로 올린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정심 제도개선소위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반대에 부딪혀 약제비만(?) 차등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형병원으로 지나치게 많은 환자가 쏠리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미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반드시 개혁해야할 과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처럼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인상하여 의료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것은 결코 옳은 방식이라 할 수 없다.

 

* 여기서 잠깐, 의료관련 내용은 너무 복잡하다. 간단한 용어를 알아보고 가자!

의료기관에는 의원과 병원이 있고, 병원에는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삼성, 현대 아산병원 등 총 43개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이고 종합병원은 273개,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은 2112개이다.


진료비에는 진찰료와 약제비가 있는데 총 진료비의 일정비율을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으로 직접 지급한다. 입원할 경우 전체 진료비의 20%+식대의 50%를 환자가 부담한다.


외래의 경우 진찰료는 상급대형병원 60%, 종합병원 50%, 병원 40%, 의원 30%를 부담하고 약제비는 일괄적으로 30%를 부담한다. 2009년 7월에 50%였던 상급대형병원 본인부담율이 60%로 올랐다. 이번 개정안은 약제비를 진찰료와 같은 수준으로 올린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병원급의 진료비를 차등적으로 더 올릴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진료비=진찰료+약제비
- 입원 : 전체 진료비 20%+식대 50% 본인부담

- 외래

현재 : 진료비중 진찰료 차등적용, 약제비 일괄 30% 본인부담

이번 발표안 : 전체 진료비의 60%, 50%, 40%, 30% 차등적용(이번 발표안)

 

건강 문제도 '시장'이 해결할 거란 비이성적 맹신

 

정부 정책의 밑바탕에는 의료 역시 시장의 논리로 조절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간단히 말하면 "가격을 올리면 환자들이 대형병원 이용을 줄일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계산이 틀렸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먼저 현재도 대형병원의 본인부담금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2009년 7월 병원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이미 차등적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대형병원의 쏠림현상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1분기에 외래 내원환자 수는 병원 3.9%, 종합병원 11.4%, 상급종합병원 10.1%가 증가했으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하루 평균 2394명의 외래 진료를 하는 반면 의원의 외래 내원환자 수는 3.6%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그동안 대형병원의 본인부담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왔으나 의료이용의 왜곡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평가 없이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을 올려서 의료질서를 잡겠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심각한 정책적 오류다.

 

의료기관은 주로 보는 질병의 경중에 따라 1, 2, 3차 의료기관으로 나뉘어져야 한다. 투자비용과 운영비용이 적은 의원에서 초기에 발생하는 경증질환을 보고 고가의 의료기기와 치료설비, 입원실 등을 갖춘 상급병원에서 심각하게 진전된 질환을 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막대한 투자를 한 대형병원에서 고작해야(?) 감기, 당뇨, 고혈압을 제일 많이 보고 있고 정작 의원에서는 입원환자를 보고 있다. 더구나 소위 빅4 병원이 집중적인 자본투자로 덩치를 불리면서 대형병원으로 환자집중현상은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대형병원서 감기치료하는 게 문제인 이유

 

그렇다면 좋은 대형병원에 가서 감기치료를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일단 진료비가 매우 비싸진다. 건강보험공단 자료(2007년 기준)에 따르면 서울 4대 대형병원의 평균 감기 진료비는 하루 4만 4000원으로 의원급의 4배다.

 

위염·십이지장염 진료비는 3.9배, 당뇨병과 고혈압·천식의 진료비도 3~4배 높다. 더구나 초진의 경우, 대부분 CT, MRI 등 고가의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같은 질병으로도 최대 수십 배의 진료비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상황으로 전변되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경증질환은 의료의 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병원 외래의 경우가 의료의 질이 더 떨어진다. 의원에서는 너무 많은 환자를 보면 진료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의사 1인당 1일 평균 진찰 건수를 제한하고 있다. 1인당 하루 75건을 넘으면 차등적으로 진찰료를 삭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많은 환자들이 경험해 보았겠지만 3시간 기다려서 1분도 안 되는 진료를 받고 나오는 것이 대형병원 소아과, 내과다. 당연히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동네의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당장 아프면 갈 수 있는 동네의원이 없어지면 어쩔 수 없이 대형병원을 갈 수밖에 없고 대형병원을 집 근처에 짓지 못하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현상은 더욱 심각해 진다. 막말로 지금도 의료시설이 잘 되어있는 지역에 사는 것이 수명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따라서 동네의원이 사라지면 지방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보장은 매우 힘들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형병원 환자 집중현상, 환자들 탓인가?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그 원인을 환자에게 찾는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보고서에서 병원쇼핑을 하는 의료급여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지목하면서 경증 보장성을 줄이고 중증보장성을 높인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루에 1200개의 파스를 처방받은 극히 소수의 예를 들면서 도덕적 해이를 소리높여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의료급여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올리고 선택병의원제도를 도입해 갈 수 있는 병의원을 규제했다. 그 결과 환자의 선택권은 줄고 본인부담금 부담으로 의료이용을 포기하는 비율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방향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본인부담금을 의료지출을 줄이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2007년 소액 외래진료비 본인부담 정액제를 폐지하여 정률제로 바꾸었고 2009년 7월 대형병원의 진찰료를 50%에서 60%로 늘렸다. 이번 약제비 본인부담비율 인상 방안 역시 경제적 유인을 통해 의료이용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과연 본인부담금을 활용해서 의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가능한가?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본인부담금 인상은 일시적으로 의료이용을 줄이나 그 효과는 빠르게 상쇄되고 오히려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RAND  연구소의  Health  Insurance Experiment는 본인부담금이 의료이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가장 권위있는 연구로 뽑힌다. 연구소에서는 본인부담금은 의료필요와 상관없이 의료이용을 전체적으로 줄이기 때문에 필수 의료이용을 저해할 수 있으며 그 효과는 저소득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본인부담금을 통한 의료지출 절감효과는 크지 않고 의료이용 횟수보다 치료서비스의 단가와 신의료기술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왜곡된 의료이용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활용해 정책을 설계하는 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은 경험적으로도 증명된다. 현재도 대형병원을 이용하면 많은 돈을 내야 하지만 대형병원에 몰리는 현상은 전혀 줄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 개선 목표가 건강보험 재정 아끼는 건가

 

이 정책이 시행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당장 필수적으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야하는 환자들의 부담이 증가한다. 처음 구상은 경증질환에서만 시행하기로 하였으나 모든 질환으로 확대되었다.

 

입원환자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대학병원 이상의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환자들과 지역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하는 환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러한 환자들 중에는 약제비부담이 매우 큰 암환자, 희귀난치성질환자, 수술이후 환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 환자들에게 높은 약제비는 의료이용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의료질서 확립'을 주장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아끼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대형병원에는 지금도 많은 혜택이 있다. 상대가치수가, 유형별 종별가산제를 통해 같은 질환 진료에 대해서도 의원에 비해 더 많은 보험급여를 받아가고 있다. 여기에 선택진료제, 식대, 병실료 차액 등을 통해 매우 비싼 진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하고 있다. 또 비싼 의료기기와 막대한 마케팅을 통한 환자유치전략은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이것이 보건의료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적 효과이다. 의료공급자의 역할이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공정한 시장에서의 공급자 역할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시장적 방식보다는 제도적 접근을 하고 있다. 지불제도, 주치의제도, 의료기관에 대한 비시장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의료는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보다 공급자의 유도 효과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는 세계 모든 나라가 엄격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병상 확대 기준, 외래환자 비율, 환자유인행위, 의료기기 도입 기준 등을 공익적 기준에 맞춰 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형병원 규제방안은 거의 전무하다. 오히려 90년대까지 병상확충정책을 펴왔다. 이런 상황에서 비용조절을 통해 환자들의 의료이용행태를 조절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다.

 

대형병원의 환자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실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형병원에 대한 합리적 기준 제시와 의료전달체계 구축, 1차의료의 질적 향상을 위한 주치의제도 도입 등이다. 물론 이 정책들은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해관계자들과의 합의가 어렵다.

 

본인부담금 인상은 보험공단, 공급자, 정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이번 안을 의사협회가 제안했고 다른 제도개선안이 거부되는 상황에서 이번 제안만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근본적 정책 도입은 이해당사자들과의 합의는 쉽지 않을지 모르나 국민들의 건강보장성 강화에는 필수적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목적으로 정책을 입안하는가? 건정심과 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의 공익적 역할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연구원입니다. 


#약제비 인상#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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