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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재판과 관련, 검찰측 핵심증거인 채권회수목록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5차공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에 출석한 정아무개 전 한신건영 경리부장은 "(검찰측 제보자인) 남아무개 등이 요구해 채권회수목록을 만들었다"며 "엑셀파일로 저장된 자료를 이름별로 소팅(sorting, 분류)해 채권회수목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즉 정 전 부장이 채권회수목록의 원자료를 채무자의 이름별로 임의가공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렇게 가공된 2차자료에는 가필한 흔적까지 있어 한 전 총리측은 "증거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측 제보자인 남씨 등이 찾아와 채권회수목록 작성해 달라 요구"

 

이날 증인으로 법정에 선 정 전 부장은 지난해 4월부터 총 7-8차례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를 해야 하니 나와 달라"고 요청했고, "왜 내가 나가야 하느냐"고 묻자 한 전 대표와 통화하게 해주었다.

 

한 전 대표는 "채권회수목록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이에 정 전 부장이 "가지고 있다"고 답하자 "그걸 가지고 검찰로 나와 달라"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 정 전 부장은 "그런데 저는 (한 전 총리에게 건네진 돈이) 5억원이라고 주장했고, 검찰측은 9억원이라고 밝혔다"며 "진술이 달라 한 사장을 검찰에서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정 전 부장은 "당시 한 사장에게 '내가 가진 자료에는 5억원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며 "(그 정도로) 5억원과 관련해서는 확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검찰조사를 받은 이후 정 전 부장은 채권회수목록의 원자료(back-data)를 찾았고, 이를 근거로 한 전 총리에게 전달한 돈이 5억원이 아니라 9억원이라고 진술을 바꾸었다.

 

문제는 채권회수목록의 신뢰성이다. 채권회수목록은 한신건영이 부도난 지난 2008년 8월께 남아무개씨와 한아무개씨 등의 요구로 만들어진 자료다. 남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측에 제보했고, 한씨는 한 전 대표의 건물에 투자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채권회수목록은 검찰측 제보자인 남아무개씨 등이 짜고 만든 것"이라는 한신건영 전직 고위임원의 주장이 나온 바 있다. 그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신건영에 근무했다.

 

그런 가운데 5차공판에서는 채권회수목록의 신뢰성 문제가 다시 터져 나왔다. 정 전 부장은 한 전 총리 변호인단의 신문에서 "남씨 등이 만들어 달라고 해서 한두 부 출력한 뒤 복사했다"며 "(원자료까지 포함된) 채권회수목록은 모두 10쪽 안팎"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채권회수목록이 원자료를 가공한 2차자료라는 점이다. 정 전 부장은 "남씨 등의 요구에 따라 제 컴퓨터에 저장된 엑셀파일을 (채무자) 이름별로 다시 정리했다"며 "하지만 그 엑셀파일이 저장된 USB(저장정치)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게다가 검찰에 제출된 채권회수목록에는 가필의 흔적까지 발견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원'이라는 항목에 '3억원'이라고 적시한 뒤 그 아래에 '2억원'을 수기로 가필한 것이다.

 

이와 관련, 정 전 부장은 "백데이터(back data)와 맞추면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5억원인데 3억원만 기재돼 있어서 (추가로) 기입한 것"이라며 "예를 들면 소팅(sorting)하는 과정에서 (원래는 '의원'인 것을) '이원'이라고 기재되면 (이름별 자료에서) 빠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변호인단은 "'의원 3억원'은 한 전 대표가 2007년 3월 30일 한 전 총리의 비서였던 김아무개씨에게 빌려준 3억원을 표현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고, 정 전 부장은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특히 정 전 부장은 "남씨와 한씨 등이 집에 찾아와 '한만호 사장한테 허락받았다'고 해서 채권회수목록을 작성해줬다"며 "한 사장이 먼저 채권회수목록 작성을 허락한 적은 없고 작성한 후에 면회갔더니 '도와주라'고만 했다"고 진술했다.

 

한명숙 전화번호 입력시기 논란... 검찰 "공소사실 흔들림없다"

 

이날 법정에서는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가 한 전 대표의 핸드폰에 언제 입력됐는가가 다시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는 지난 4일 열렸던 3차공판의 마지막 쟁점이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문제의 핸드폰을 지난 2007년 7월 20일 구입했다. 그리고 한 전 총리의 핸드폰 번호는 '한미라H'라는 이름으로 같은해 8월 21일 그의 핸드폰에 저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와 수차례 통화한 뒤 돈을 전달했다는 시기는 2007년 4월부터 8월이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이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검찰은 "한 전 대표가 2007년 8월 21일 이전에는 한 전 총리와 통화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서 보나 기술적으로 보나 오류가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검찰은 "과연 한 전 대표는 8월 21일 이전에는 한 전 총리와 통화하지 않는 사이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이런데도 사실관계를 무시할 것인가?"라고 변호인단에 물었다.

 

2004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그동안 휴대폰으로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쪽의 주장이다.

 

이에 변호인단은 "한 전 대표는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휴대폰으로 한 전 총리와 통화한 뒤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며 "검찰은 그저 '통화하였다'고 하는데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로 통화하였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전화를 거는 방법에는 저장된 번호를 불러오는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알게 된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경우가 있다"며 "변호인들이 증인신문에서 탄핵하려고 한 점은 '저장되어 있었다'는 한 전 대표의 검찰진술의 신빙성이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8월에 입력했지만 그 이전에 통화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라며 "하지만 검찰은 이런 기술적 개연성을 넘어서는 확실성을 제시해야 충분하게 반박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검찰은 "핸드폰은 기존 연락처를 그대로 두고 이름만 수정할 수 있다"며 "한명숙이라고 저장했다가 (8월에서야) '한미라H'로 이름을 바꿔 새로 저장할 수 있다"고 재반박했다.

 

검찰은 "한 전 대표가 '한미라H'라고 저장한 시각은 (8월 21일) 오전 7시 2분"이라며 "그새벽에 신규 전화번호를 입력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기존 연락처를 수정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8월 21일은 한 전 총리가 민주당 경선후보로 등록한 날인데, 실명으로 저장할 경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한 전 대표가 '한명숙'을 '한미라H'로 바꿨을 수 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할 검찰의 반박내용이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황을 근거로 한 추정이라는 점에서 재판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그:#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한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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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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