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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현빈이 해병대로 곧 입대를 한단다. 해병대가 어떤 곳인가.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훈련소에 떡, 하니 박혀 있는 군대 중의 군대 아닌가.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겐 "귀신 잡는" 것보다 "아직도 구타가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한 해병대에 요즘 드라마로 인기몰이에 한창인 꽃미남 배우가 제 발로 들어간다니 사회가 떠들썩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소식에 <시크릿 가든>의 여성 팬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대한민국 1%"라며 경탄했고, 국민남동생으로 유명한 유승호 군도 고무된 듯 해병대 지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때 아닌 해병 붐의 정점을 장식한 건 국회의원 전여옥 씨였다. 요새 현빈에게 "꽂혀 있다"는 전 의원은 해병 입대 소식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까지 거들먹거리더니 급기야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한 기쁨이 차오른다"며 전율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지도층의 윤리적·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 왜 지인의 저작물을 "탈취"하여 제 이름으로 발표했는지 실로 의문이다. 얼마 전 표절 의혹 항소심에서도 "또" 지셨다죠? 제 가슴도 "뻥 뚫리는" 것 같네요. 아주 쌤통입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이렇게 국민적인 열광에, 국회의원의 진한 격려까지 받으며 입대하는 사람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해병대 훈련병 김태평이 유일할 것이다. 현빈의 자원입대 소식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최근 가수 MC몽의 고의 발치 사건이나 탤런트 박해진의 정신분열증 면제(이는 분개한 몇몇 네티즌들의 강요에 가까운 요구로 밝혀진 가족사와 과거 고백을 통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등 연예인들의 병역 논란을 관통하며 축적된 불만에 기인한다. 병역 비리와 같은 군대 관련 담론의 비판적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주로 군복무를 앞두고 있거나 현재 예비역인 남성들이었다. 하지만 현빈의 해병 입대는 그간 형평성 없이 묵인되어 왔던 연예인과 사회 특권층의 병역 비리에 대한 국민적 경고로 확장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난이 연예인들에게 집중되어 쏟아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재벌이나 정치인과 같은 주류 사회의 특권층들은 조직적으로 병역 비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은 무디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 관료들을 보라. 연평도 사태 직후 벙커 회의를 진행할 적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곳에 군필자는 한 명도 없었다. 또 삼성 일가의 병역 면제율이 73%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참고로 평소 승마를 즐기는 이재용의 면제 사유는 허리 디스크라고 한다. 이쯤 되면 정신 질환으로 면제를 받은 이건희는 넌센스 수준이다. 그들은 이른바 "제2국민"으로 병역을 면했음에도 "대한민국 1%"로서 사회를 요리하고 있다.)

위와 같은 공인들의 병역 비리와 마주했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오류라고 본다. 법망을 비웃으며 온갖 변칙으로 병역을 면하는 것은 추악한 행태지만 그렇다고 군대가 의무적으로 가야 할 시민적 책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 병역은 의무인가? 지금 남한 사회는 약 60년 전에 중단된 전쟁을 대비한답시고 연간 20조 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 (국방부가 직접 밝힌 2010년 예산액은 20,459,699백만 원이다.) 이는 작년 정부 재정의 약 14.7%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이렇게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남한을 제외하면 미국과 이스라엘뿐이다. (2008년 주요 국가의 국방비 비교 ― 이스라엘 7.4%, 미국 4.9%, 한국 2.6%. 자료 출처 :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게다가 국방비 예산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연례행사처럼 증액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남북 전쟁 당시 10만에 불과하던 군 전력은 6배 가까이 늘었으며 3세대 전차부터 세계 5대 공군력과 미국을 능가하는 자주포 기술 등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국방부 장관을 위시한 "별"들은 한국군이 약하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한다. 특히 국방비 감축 얘기만 나오면 이 증세가 심해지는데 가만 생각하면 이거 좀 웃긴다.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면서 식량이 부족해 전체 국민이 곤궁한 삶을 지내고 있는 북한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히려 직무 태만 아닌가? 또 휴전 상태가 점점 장기화되고 평화 무드가 조성될수록 군 병력은 축소되고 완화되는 것이 상식적이거늘 남한은 오히려 더욱 강고하게 군사를 키운다. 평화가 돌아오고 군대가 무소용해질 때 가장 피해를 받는 부류가 누구일지 한번 고민해보자. 오늘날의 전쟁은 체제 유지와 국토 수호를 위한 분쟁을 떠나 비즈니스 게임으로 변모하였다. 군수업체와 투기꾼들, 그리고 정경계의 왕들이 배팅하는 이 도박에서 국가와 국민은 없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국방부 예산 내역 일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국방부 예산 내역 일부.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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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확실한 "주적"을 위해 엄청난 금액의 세금으로 대규모 살상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국방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전거 도로를 정비한다며 강과 들을 파헤치는 개발 사업을 막는 것이 진짜 국토 수호 아닐까? 더군다나 병역은 이행하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피해를 준다. 국방부가 밝힌 2000년부터 2010년 8월 31일까지 군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보면 1,486명에 달한다. 안전사고는 해마다 줄고 있지만 부대 내 자살자 수는 변동이 거의 없다. (2000년 82명, 2009년 81명) 이 말인즉 남한의 군대는 매해 1개 중대 가까운 수의 부대원들을 전투도 없이 잃고 있는 셈이 된다. 이뿐이랴. 입영 및 집총 거부자 역시 2000년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고스란히 교도소에 이감될 뿐만 아니라 전과의 기록까지 갖게 된다. 군대와 관련된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부대 내 구타로 인한 사망 사고부터 온갖 후유증과 질병을 "신성한" 의무란 이유로 감내해야 하는 세계 최고의 고학력 사병들이 받는 월급은 어떤가. 10만 원을 겨우 웃돈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헌법 제39조 2항에 명시되어 있건만 불이익은 고사하고 나는 병역으로 인해 알량한 혜택 하나 받았다는 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군대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관행이 깨지지 않는 한 병역은 시민을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왜 해병대를 지원할까? 아니, 해병대에 지원하는 남자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을까? 저마다의 맥락과 동경이 있을 테지만 이들의 행동 기제 저변에는 "남자다움"과 "강함"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 실제로 반전시(半戰時) 체제에 모든 것이 종속된 남한은 극도로 경직된 병영 국가에 남근주의적 우승열패 사상이 뿌리 깊은 사회다. 이런 사회는 몇 가지 동일한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계급과 직위, 그리고 소속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는 것이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병영 체제가 내면화된 사회는 수직적 위계질서로 정립되어 의사소통 역시 상명하달로 전달된다. 전과자나 이민자, 혼혈인과 성전환자 등을 제2국민역으로 편입하는 병영 체제와 마찬가지로 남근 중심의 사회에서 "정상적" 남근의 유무에 따라 구성원을 자연스레 "제1국민" 아래로 예속한다. 특히 여성에 대해 남성이 취하는 억압적인 태도는 병영 사회가 품고 있는 파시즘의 전조다. 더욱이 병역의 의무를 갖지 않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갖고 있는 분노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이들은 사회의 제도화된 착취, 혹은 차별 구조에서 보상을 받고자 한다. 이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나 사회 내 성차별 사례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연평도 포탄 사건을 관망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우리 사회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게시판은 전쟁광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전쟁을 반대하거나 평화를 얘기하면 "좌빨"로 몰아세우는 해괴망측한 논리까지 등장하는 당시의 분위기는 파시즘 그 자체였다. 북한발 포탄에서 촉발되어 순식간에 현실적으로 다가온 전쟁의 위기는 그간 활동가와 시민들이 애써 구축하여 정립한 가치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사회의 모든 담론은 전쟁과 안보로 집중되었으며 그 외는 없었다. 그 신속하고도 질서정연한 준전시 상황으로의 전환은 나를 실로 전율케 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 군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문민 통제다. 즉 군대는 국민의 통제를 받는다는 소리인데, 탱크와 총검으로 정부와 국민을 유린한 군 독재자 아래서 오랜 기간 훈육된 우리 사회에겐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밖에 없다. (연평도 사태 직후 벌어진 민방위 훈련 중 거리를 걷던 한 여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훈련 진행자를 나는 기억한다. 미쳤어요? 지금 포탄이 떨어지고 있단 말이오! 그는 정말 리얼하게 윽박을 질렀다.) 르네상스라는 인문주의 혁명을 거친 유럽 대륙도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이성이 철저히 마비되는 광경을 목도했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전쟁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할까? 내 자신이 불온한 사람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내 주변엔 전쟁만 나면 빨갱이 때려잡겠다는 극우 파시스트만 득실거린다. 물론 이성적인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최소한 비인간적인 학살과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이성과 공론이 부재한 가운데 발생할 전쟁은 제2의 사변, 제2의 광주 학살의 반복일 따름이다.

연평도 사태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덧글.
 연평도 사태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덧글.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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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나는 '현빈 해병 입대 저지 캠페인'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 캠페인의 목적과 내용은 단순하다. 군대와 전쟁에 대한 단호한 거부 의사와 평화를 향한 염원을 밝히는 것이다. (유사 캠페인으로 '지켜라! 혁명가 김택용 ~택신 군대 가면 숨질 것 같아'가 있겠다.) 물론 이 캠페인은 예비역을 포함한 남성들의 뭇매를 맞을 것이며 현빈은 그럼에도 봄이 오면 포항 교육훈련단으로 입소할 터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해병대 입대가 곧 "남자다움"을 상징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유의미한 캠페인이 아닐까? (아니, 대체 "남자다움"이 뭐냐고! 남자는 으레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강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는 통념은 성역할을 고정하고 궁극적으로 병영 사회를 유지하는데 일조한다.) 어쩌면 해병 입대 분쇄 투쟁(?)은 "우리 오빠 군대 못 보내!" 식의 애교 섞인 퍼포먼스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건 뭐 어떤가. 일단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브한가? 원래 혁명은 나이브한 거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지난 14일 길담 서원에서 있었던 한홍구 선생의 강의를 듣고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한홍구 선생은 강의를 하던 중 베트남 어느 숲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김영만 열린사회 희망연대 대표로, 그는 놀랍게도 월남 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용사였다. 지금도 해병대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베트남 짜빈동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가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 계기는 보다 "남자다워"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베트남 용의자 학살에 대한 충격과 죄책감으로 귀국 후 시민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만 대표는 해병대 참전 용사 사상 최초의 평화 활동가일 거라고 한홍구 선생은 덧붙였다. 확실히 남한 사회에서 해병대 제대 후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나 전무한 걸로 보인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현빈 역시 현명하게 군 생활을 하고 돌아와 지독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폭력에 대한 고발이나 평화 활동에 참여하길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peace with you.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웹진「시도와 가능성」에도 게재하였습니다. http://si-ga.tistory.com/



태그:#현빈,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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