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바닷물이 얼었습니다. 96년만의 한파라고 합니다. 곳곳에선 사고 소식이 들려옵니다. 농작물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단수가 된 곳도 여럿입니다. 추위에 익숙한 곳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따뜻한 남쪽나라인 부산에서 이런 한파를 견디는 것은 아주 많이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눈이 조금만 날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온 시내 교통이 마비가 되는 부산입니다. 눈이 자주 오는 곳은 미리미리 대비가 되어 있을 터이지만, 눈을 자주 볼 일 없는 부산에서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따뜻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내복까지 입냐며 놀라움 반 놀림 반으로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위에 익숙한 사람들은 단련이 되어 있어서 안 입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부산 사람들은 약간의 추위도 더 크게 느껴지니 꼭 입을 수밖에요. 물론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기에 단순히 기온만으로 덜 춥니, 더 춥니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 따뜻한 남쪽나라에 빙판길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저희집은 이번 겨울 세 번째 단수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집은 크리스마스 때 김장을 합니다. 전날 준비를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니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갑자기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절여놓은 배추를 씻어야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 이 와중에 얼굴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래층은 직수로 연결이 되어 있어 수도가 얼지 않았습니다. 호수로는 연결이 어려워, 부랴 부랴 양동이를 들고 물을 채워 날랐습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오는데 물을 길어 나르니, 몇 걸음 되지 않는 계단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김장을 마치고, 정리를 할 때쯤 얼었던 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때는 이런 일이 앞으로 별로 일어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3일 째 나오지 않는 물... 한방울이 아쉽습니다3한4온이라는 말이 지금도 교과서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그 법칙에서 벗어난지 오래돼 보입니다. 부산의 한파는 계속됐고, 다시 수도가 얼었습니다.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어머니는 그 날 이후 날씨 뉴스를 아주 집중해서 보셨습니다. 내일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면, 물을 미리 여기저기 받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무시기 전 물을 조금씩 틀어 놓으셨습니다. 설마 또 얼겠냐 하는 마음에 물을 졸졸졸 흐르게 틀었는데, 한파는 꽤 매서웠습니다.
그래도 신정초에 생긴 두 번째 단수 때에는 미리 받아놓은 물로 설거지도 다 하고, 밥도 해먹고, 머리도 감고, 커피도 끓여 먹고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활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물이 나올 거라는 믿음도 한 몫 했지요. 저희의 믿음처럼 오후가 되자 물은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6일부터 시작된 단수로 물이 끊긴 지 벌써 3일 째입니다. 첫날은 오후가 되면 물이 나올 거라는 생각으로 여느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물을 부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빼고는 아주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여기저기 받아놓은 물의 양도 하루를 생활하기에 충분했으니까요.
그런데 오후가 되어도 날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뉴스에서는 기록적인 한파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니 점차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받아놓았던 물도 점차 줄고 있으니 불안감은 더더욱 커질 수 밖에요.
다음날도 춥다는 뉴스를 보고 나니, 아침이 되어도 물이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생활 패턴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사용하는 물의 양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냥 틀어놓고 쓰던 양치물도 컵에 담아서 쓰고 머리를 감을 때 사용하는 샴푸의 양도 저절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샴푸를 많이 쓰면, 여러번 헹구어야 하고 그만큼의 물이 남아있지 않으니, 자연히 줄일 수밖에요. 그리고 그렇게 사용한 물은 변기에 다시 부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설거지거리도 줄여야 하니, 먹을 것만 접시에 담아 먹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다 동이 났고, 역시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양동이에 받아와야 했습니다. 겨울바람에 뺨 맞는 것 같다는 어떤 분의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날에 또 양동이로 물을 퍼다 날랐습니다. 이것은 귀찮음을 넘어서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바로 아래층에 내려가서 물받아 오는 것에 너무 엄살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없을 때 귀함을 깨닫는 어리석음'... 앞으로도 물을 아껴 써야겠습니다이렇게 삼일을 보내니 아주 뻔한 생각들을 다시 하게 됩니다. 평소에도 지금처럼 물을 아끼는 생활을 하면 어떻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폐수를 활용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처럼 폐수를 따로 모으는 통을 계속 두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일본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변기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사용했으면 합니다. 변기 물을 담아놓는 곳 위에 조그맣게 손을 씻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손을 씻은 물이 바로 변기로 내려가서, 그 물로 용변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처음 그 변기를 봤을 때는 왜 이런 것까지 아끼는지 웃음이 조금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참 괜찮은 변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이 펑펑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은 곳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어른들 말씀처럼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을 때 귀한 것을 깨닫게 되는 이 어리석음을 빨리 끝내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물 조금 아끼면 뭐하냐고. 기업들이 오염물질 함부로 다루지 않고, 휘황찬란한 광고판들을 켜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냐며 남 탓도 해봅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계속 남 탓만 하다보면, 이런 단수를 여러번, 계속 반복해서 맞이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한파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단순히 북극에 얼음이 덜 얼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 것입니다. 모두를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조그마한 것이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실천을 하는 것이 단수를 빨리 끝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