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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의지

 벨렝탑
벨렝탑 ⓒ 이상기

로카곶에서 리스본 시내로 가는 길은 해안선을 따라 나 있지만 우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 더 빨리 시내로 들어간다. 해가 벌써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로카곶에서 벨렝탑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테주강 하구에 있다.

벨렝탑은 마누엘1세 때인 1515년 리스본 항구를 지키는 요새로 만들어졌다. 높이가 30m이며 4층이다. 해안에 가까운 테주강 하구 섬에 세워졌었는데, 1755년 지진으로 강의 물길이 바뀌면서 현재 위치에 있다. 벨렝탑은 처음에는 요새로 사용되었지만, 평화시에는 리스본항을 드나드는 배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600년대 이후에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3년에는 가까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마누엘1세의 건축양식을 따른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 탑에서는 두 가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하나는 1층 벽에 새겨진 밧줄 묶음이다. 이것은 포르투갈인이 배를 타고 바다로 진출한 것과 관련이 있다. 다른 하나는 1층과 4층의 모서리에 만든 원통형의 테라스다. 테라스의 지붕이 양파 모양을 하고 있는데 무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테라스는 요새를 방어하는 일종의 초소로 사용되었다. 벨렝탑에는 그 외에도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있고, 코뿔소 등 동물상도 조각되어 있다.

 발견기념탑
발견기념탑 ⓒ 이상기

벨렝탑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발견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이 기념비는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자의 500주기를 기념해 1960년에 세워졌다. 높이가 52m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위인 33명의 부조상이 새겨져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탐험가들이다. 가장 앞에는 이들을 이끄는 엔리케 왕자상이 있고, 그 뒤로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을 발견한 카브랄, 세계일주를 한 마갈랑이스(마젤란)가 있다.

이 기념비는 계단이나 리프트를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해 올라가지 못하고 계단 양옆에 있는 글과 청동조각만을 살펴본다. 왼쪽에는 엔리케 왕자가 바닷길을 개척한 것을 기념해 닻을 조각해 놓았고, 오른쪽에는 500주년을 기념하는 월계수를 조각해 놓았다. 우리는 옆에 있는 조소상도 둘러보았는데 이미 어둠이 내려 개개 인물의 면모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발견기념비 광장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발견한 지명과 연대가 표기되어 있다. 기념비 옆에는 벨렘항구가 있어 강 건너 브란다웅이나 트라파리아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테주강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다리인 4월25일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66년 완성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살라자르 다리였다. 그러나 1974년 4월 25일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혁명이 성공하면서 4월 25일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는 선원들을 추모하는 정신을

 제로니무스 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 ⓒ 이상기

혁명기념비 북쪽으로 보면 인도대로(Avenida da India) 건너편에 고딕양식의 건물이 하나 길게 펼쳐져 있다. 이것이 포르투갈식 고딕인 마누엘양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인도대로는 테주강을 따라 동서로 나 있는 큰 길이다. 대로에는 차가 많이 다녀,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가려면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지하도를 나오면 바로 앞으로 공원이 펼쳐진다. 이 공원를 지나면 또 다시 트램이 지나가는 길이 있다. 트램은 리스본 도심을 운행하는 일종의 전차다.

밤이라 그런지 차량운행이 뜸해서 쉽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길을 건너가면 바로 수도원 건물에 닿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 중 상당부분은 현재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박물관 문은 닫혔다. 나와 아내는 외관의 마누엘 양식만을 살펴보고는 수도원 교회로 간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해서 마누엘 1세가 지시해 세워지기 시작했다.

수도원 건립 후 제로니무스 교단의 수도사들은 신을 경배하고, 또 왕과 선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1833년까지 이 수도원의 주인이었다. 그 후 1940년경까지 학교와 고아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박물관과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원교회 정문은 서쪽으로 나 있다. 날이 벌써 어두워져서 그런지 사람들의 출입이 별로 없다.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조명이 흐릿하다. 그러나 내부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밝기는 된다.

 바스투 다 가마의 관
바스투 다 가마의 관 ⓒ 이상기

 카몽이스의 관
카몽이스의 관 ⓒ 이상기

문 앞에 바로 성단소가 있고, 그곳을 지나 좌우 벽 쪽으로 관이 두 개 모셔져 있다.  이것이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인물 바스쿠 다 가마와 카몽이스의 관이다.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탐험가고, 카몽이스는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대항해시대를 살았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들이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묻힌 것은 포루투갈을 대표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기리는 영혼의 전당에 이들을 모시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으로 건축학적인 면서도 가치가 높다. 마누엘 양식이란 포르투갈식 후기 고딕양식을 말한다. 그래서 실내가 높고 웅장하다. 높이가 32m, 폭이 19m나 된다. 그러면서도 내부 벽과 기둥에 장식과 조각들이 많은 편이다. 이들은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이처럼 포르투갈의 건축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대충대충 건성건성 리스본 시내 관광

 리스본 야경
리스본 야경 ⓒ 이상기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보고 우리는 리스본 시내를 관광했다. 강가에 있는 콤메르시우 광장에서 시작, 호시우 광장을 거쳐 퐁발 후작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이게 바로 차창 관광이고 외관관광이라는 거다. 해설을 들으면서 겉만 보고 지나간다. 잠시 내려 광장도 걷고 건물도 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을 주질 않는다.

콤메르시우 광장은 과거 히베이라(Ribeira) 궁전이 있던 자리다. 또 1908년 무정부주의자들이 이곳에서 국왕인 동 카를루스 1세와 그의 아들을 암살해 군주제를 종식시키기도 했다. 현재는 말 그대로 광장 북쪽으로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가장 번성한 호시우 광장이 나온다. 광장 가운데 동 페드루 4세의 동상이 있어 동 페드루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근방에는 기차역과 국립극장 등이 있다.

여기서 다시 북서쪽으로 가로수길인 자유대로(Avenida da Liberdade)를 따라가면 퐁발후작 광장이 나온다. 광장 뒤로는 에두아루두 7세 공원이 있다. 이 근방에서 우리는 잠깐 내려 리스본 시내와 강쪽을 조망한다. 그러나 어두워서 강이 내려다보이지는 않는다. 리스본 도심은 테주강을 따라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시내와 강에 대한 조망이 좋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자주 나오는 카스텔루와 알파마 지역을 보지 못하는 게 유감스럽다. 카스텔루와 알파마에는 로마인, 무어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역사가 뒤섞여 있다. 현재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악 파두가 이곳 알파마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따분하지만 의미 있는 <리스본 스토리>

 1500년대의 카스텔루 지구
1500년대의 카스텔루 지구 ⓒ 이상기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영화 <리스본 스토리>를 봤다. 독일 감독으로 허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로드무비다. 이 영화의 배경은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려는 영화인 필립과 프리드리히의 의지를 그린 영화다. 프리드리히는 영상의 타락에 대해 실망하지만, 음향기사인 친구 필립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영상을 필름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리스본 스토리>의 한 장면
<리스본 스토리>의 한 장면 ⓒ 이상기
사실 이 영화는 뚜렷한 스토리 라인이 없어 따분한 편이다. 음향기사인 필립이 영화감독인 친구 프리드리히로부터 리스본에 와 소리를 녹음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필립이 리스본에 도착했으나 프리드리히는 집에 없다. 그는 혼자서 리스본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일상의 소리를 녹음한다. 차들이 내는 소리, 자연의 소리, 교회 종소리, 빨래하는 소리 등 도시의 온갖 소음을 녹음한다.

필립은 리스본 뒷골목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마드레데우쉬의 보컬 테레사를 알게 된다. 그동안 프리드리히는 영화에 실망하고 영화를 떠나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었다. "영상은 모두 쓰레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어"라는 말에 프리드리히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필립은 이에 대해 "없어서는 안 될 영상을 마음으로 필름에 담으라"고 격려한다. 필립을 통해 프리드리히는 다시 영화에 대한 의욕을 찾게 되고, 둘은 살아있는 리스본의 모습을 다시 영화에 담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마드레데우쉬(Madredeus)의 파두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처음 연주되는 음악이 '기타라 Guitarra'이다. "기타가 훌륭한 연주자의 손에서 떨리면"으로 시작해서 "기타 사랑하는 기타, 너와 함께 울고 싶구나"로 이어진다. 또 타이틀 음악인 '아인다'에서는 우정, 모험, 행복, 슬픔, 환상, 불확실성 등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리스본의 도심 '알파마'를 노래하면서는 알파마를 사랑하는 연인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이젠 난 기억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난 돌아가길 원해요. 당신에게로." 알파마....


#벨렝탑#제로나무스 수도원#마누엘 양식#리스본 스토리#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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