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이 내년부터 시행하려던 6개 지역(경기 광명·안산·의정부, 강원 춘천·원주·강릉)의 평준화 계획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제동으로 끝내 좌초됐다.
이에 따라 진보 교육감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경기·강원교육청의 평준화 계획은 2012년 이후에나 시행이 기능할 것으로 보이며, 내년 평준화에 맞춰 고입 준비를 해온 해당 지역 학생들의 혼란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20일 교과부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국회 교과위 안민석(민주. 오산), 권영길(민노. 창원을), 김상희(민주. 비례)의원과 광명이 지역구인 백재현(민주. 광명갑) 의원 등은 이날 오후 5시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고 평준화 수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두 교육청 모두 학생 배정방법이 확정되지 않았고, 민원발생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2012년 평준화 전환 결정은 도저히 어렵다고 밝혀 사실상 평준화 유보를 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호 장관, 20일 평준화 유보 선언...교과부, 21일 결정 통보이 장관은 또 "평준화 지역들의 시행 전례로 볼 때 해당 지역 교육감이 평준화 지역 지정과 함께 학생배정 방법 등을 확정한 뒤 '교과부령' 개정을 요청했다"며 "경기·강원도교육청의 교과부령 개정 요청은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예정대로 21일 6개 지역의 평준화 전환에 대한 유보 결정 절차를 마무리 짓고 이를 해당 교육청에 공식 통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20일 평준화 승인 유보 결정안의 최종 결재 절차를 밟고 있음이 확인됐다.
교과부 학교제도기획과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미 평준화 승인 가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져 현재 결재라인에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당초 예정대로 21일까지 평준화 전환에 대한 최종 결정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의 평준화 유보 결정은 이미 지난 18일 이 장관의 '평창 발언'을 통해 예견됐다. 이날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참석한 이 장관은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에게 평준화와 관련해 '준비가 부족하다', '실무자가 부정적인 얘기를 하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교과부가 이미 평준화 유보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 장관이 20일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평준화 유보를 위한 '구실 찾기'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장관이 문제 삼은 학생 배정방법 등은 평준화 추진일정(7월 배정방법 확정)상 6개월이란 기간이 있어 충분히 보완·확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교과부가 일방적으로 평준화를 유보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존 평준화 지역의 '배정방법 확정 후 교과부령 개정 요청'이란 전례도 법적인 규정이 없어 교과부령 개정 후 배정방법을 확정하는 절차를 택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강원과 연대 대정부 투쟁...법적대응도 병행" 반발이날 교과부의 평준화 유보 방침이 알려지자 경기 광명·안산·의정부 지역 평준화 찬성 학부모 등이 참여하고 있는 경기고교평준화시민연대(시민연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연대는 앞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평준화 도입을 위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김성현 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교과부가 3개 지역 학생·학부모들의 10년 숙원을 저버리고 일방적으로 평준화를 유보한데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평준화에 찬성하는 경기지역 모든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평준화 도입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법률적 검토 과정을 거쳐 법적 대응도 병행할 것이며, 특히 강원지역 시민단체와도 연대해 공동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연대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교과부령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교과부를 항의 방문하고 나온 강원고교평준화추진본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공동 대응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교과부의 평준화 유보 결정은 앞으로 내년 평준화에 대비해 고입을 준비해온 해당 지역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학부모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론조사결과 경기·강원 평준화 찬성률 70% 넘어앞서 경기·강원교육청은 평준화 정책효과 분석, 타당성 연구, 여론조사 등의 절차와 준비를 거쳐 6개 지역의 평준화 도입을 결정하고 각각 지난해 10월과 12월 교과부에 '교육감이 고등학교 입학 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에 관한 규칙'(교과부령) 개정을 요청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두 지역 모두 평준화 찬성률이 70%를 넘었다. 경기지역은 광명 78.3%, 안산 77.1%, 의정부 74.5%가 찬성하는 등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강원지역의 경우도 찬성률이 강릉 70.5%, 원주 71.9%, 춘천 72%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교과부는 교과부령 개정을 계속 미뤄왔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선 "진보 교육감들이 이끄는 두 교육청의 평준화 정책이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 교육정책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정치적 판단을 하0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편 평준화는 지역별로 고입 시험을 치른 뒤 추첨을 통해 해당 지역 일반계 고교에 학생들을 배정하는 제도다. 비평준화로 인한 중학생들의 과중한 학습 부담을 줄이고 고교 간 학력격차 해소와 명문고로 집중되는 입시경쟁 과열 등을 막기 위해 1974년 도입됐다.
현재 경기도는 수원·부천·성남·고양·안양권(군포·의왕·과천) 등 5개 학군 8개 시에서 실시하고 있고, 강원도는 모두 비평준화 지역이다.
이 가운데 경기 광명·안산·의정부는 고교 서열화로 학생들 간의 위화감이 심하고 입시 부담이 가중되면서 2000년대 초부터 학부모·교육시민단체들이 경기도교육청에 평준화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보수 교육감들 체제에서 철저히 묵살됐다.
그러다 2009년 4월 현 김상곤 교육감이 평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첫 주민직선제 교육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 추진됐으며, 내년 시행을 눈앞에 두고 교과부에 발목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