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식 개발이 횡행하는 시대에 성미산마을의 존재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정석 경원대 교수)지난 20일 '성미산공동체에서 배우다'라는 주제로 제1회 인간도시포럼이 열렸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린 이 포럼은 '성미산공동체'의 경험이 한국적 도시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성미산마을공동체'(이하 성미산마을)는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인 '신촌우리어린이집'으로 출발해 2000년 이후 지역주민들과 함께 성미산을 지키면서 점차 성미산마을로 발전했다. 현재는 성미산학교·어린이집·생협·카페 등 성미산마을 안에서 여러 가지 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적 협동의 호혜 경제 만들어 가야"
"개인의 삶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소소한 일상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미산마을은 아주 사소한 보육의 문제로 출발해서 이웃들을 광장으로 끌어냈다. 사적인 영역의 사람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나타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훈련 과정이다." 첫 번째 발제를 한 윤형근 한살림 상임이사는 87년 6월 민주혁명 등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시민사회의 담론은 아직도 '국가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윤 이사는 "현재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는 탄탄한 사회적 저변을 일구는 '사회 만들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 공인된 시장 영역이 아닌 비시장적 영역의 활성화(가사 노동, 돌봄 노동, 봉사활동 등) ▲ 사회의식이 강한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평범한 생활인들의 민주주의 의식 강화를 통해 '사회 만들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미산마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경험과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경험이 컸다. 문치웅 성미산주민대책위원장은 "2003년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성미산 개발 정책을 알게 되면서 지역주민과 협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지역에 '성미산마을'이라는 상징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3년 농성을 시작할 때, 낮에는 어머니들이 밤에는 아버지들이 성미산을 지켰다.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가정·육아·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현재 성미산마을 사업의 대부분 아이템은 이때 얻어진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명호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94년 설립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운영했던 6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며 "이것이 오늘날 큰 공동체를 만드는 바탕이었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성미산 마을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재밌게 사는 데 있지 않다"며 "우리가 지금 갈구하고 있는 다른 사회적 경제인 '사회적 협동의 호혜 경제'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중산층 소비생활이라는 느낌도 들어" 현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토개발을 향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정석 경원대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 가운데 가장 비정상적인 것이 재개발"이라며 "철거 재개발로 다 쓸어내는데 무슨 마을 만들기를 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철거 재개발이 가장 손쉽게 될 수 있는 구조"라며 "국가와 지방정부가 강하게 재개발을 억압해야 마을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신희망(22)씨는 "성미산학교는 출자금 1000만 원과 매달 학비 50만 원이어서 비용이 너무 비싸 못 다니는 사람이 생길 것 같다"며 "취지는 좋지만 중산층 소비생활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인간도시컨센서스와 김진애 국회의원실에서 주최한 이 포럼의 사회는 조명래 인간도시컨센서스 공동대표가 맡았으며, 문치웅 성미산주민대책위원장, 윤형근 한살림 상임이사, 김은희 도시연대사무국장, 신명호 한국도시연구소장, 정상택 마포구청 주민생활국장, 정석 경원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