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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어쩐 일인가?"

 

문을 열어주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누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보는 누님 얼굴에도 세월이 내려앉아 있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누님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매형도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공간적으로 멀리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 것이 쉽지가 않다. 현실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누님과 나는 세 살 터울이다. 자라면서도 참 많이도 싸웠다. 그래서인지 다른 누님들하고는 또 다른 정이 있다. 각별한 정이 쌓으며 살아왔다. 하루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살지 못할 정도로 정을 나누면서 살았다. 그런데 시나브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누님이 시집을 가면서부터였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누님의 생활이 있는 것처럼 내 생활도 있어서 누님에게서 멀어졌다. 무심한 동생의 행동에도 누님은 개의치 않았다. 변함없이 똑 같이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누님이 고맙기만 하다.

 

누님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내 생활이 있어서 살다보면 다른 곳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누님을 소홀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누님은 그렇지 않다. 누님에게도 가정이 있고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니 신경 쓸 곳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누님은 동생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모아서 주신다. 누님의 사랑을 과분하게 받으면서 언제나 죄송한 마음만 앞설 뿐이다. 사랑을 받기만 할뿐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님에게 늘 받기만 하였다. 무엇 하나 돌려준 것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누나부터 생각한다. 내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는 누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누님에게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그렇게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나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누님은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움을 손길을 보내주었다.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서 웃는 얼굴로 도움을 주었다. 누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는 누님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부자란 참으로 애매한 말이다. 언뜻 듣기에는 어렵지 않은 말처럼 들린다. 돈이 많아서 잘 먹고 잘 사는 집을 부잣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말이다. 부자란 결코 돈만 많아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어야 부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누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누님도 결코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누님은 틀림없는 부자다. 누님은 언제는 여유롭다. 특히 동생에게는 아주 여유가 있다. 언제라도 웃는 얼굴로 대해주는 것만을 칭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도움을 청하였다. 그럴 때마다 누님은 넉넉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었다. 언제든지 나눠주면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눠주는 사람이 부자라 말할 수 있다. 누님은 그래서 언제나 부자다.

 

어린 시절의 누님은 구두쇠였다. 누님들 중에서 막내였던 누님은 무엇이든 부족하였다. 옷은 큰 누님들의 옷을 물려받았고 학습용품이나 교과서까지도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언제나 부족한 것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누님은 풍요로웠다. 어찌나 아끼고 꼼꼼한지 무엇이든지 넘쳐났다. 누님에게는 무엇이든 풍요로웠다. 그러나 어찌나 인색한지 쉽게 물건을 얻을 수 없었다. 누님의 구두쇠 정신은 못 말릴 정도였다. 그렇게 자린고비 누님이 넉넉해진 것은 시집을 가고 난 뒤부터였다.

 

 

누님에게 소식을 전한 지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갑자기 누님이 보고 싶어졌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번도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기만 하였다. 불현 듯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 네 집으로 놀러갈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누님을 생각하였다.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하였다.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고는 누님에게로 향하였다. 보고 싶은 누님 얼굴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동차의 방향을 갑자기 돌렸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동생을 보고 누님은 환한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변함없이 사랑을 주는 누님을 보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시간 가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였다. 점심때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다. 누나는 동생이 왔다고 찰밥부터 지었다. 그런 누님과 매형을 억지로 모시고 식당으로 향하였다. 고창에 왔으니, 고창의 명물 풍천 장어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사랑만 받은 누님에게 풍천 장어를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풍천장어. 풍천장어는 없다. 양식 장어일 뿐이다. 그렇지만 풍천장어로 알고 먹는다. 원래 풍천장어란 바다에서도 살다가 민물에서 사는 힘 좋은 장어를 말한다. 자연 풍천 장어는 이제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양념 1kg 소금구이 1kg을 시켰다. 먹음직스러운 장어 6마리가 적세 위에 올려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오른 장어가 익어가기 시작하였다. 맛있게 구어 지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맛을 돋웠다. 향긋한 냄새는 코를 자극하고 코의 자극은 다시 혀로 이어져 군침이 돋게 하였다.

 

화기애애한 이야기 속에서 맛있게 먹었다.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누님은 언제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계산을 하려고 하니, 누님이 이미 계산을 한 뒤였다. 누님에게 대접하고 싶었는데, 누님에게 얻어먹고 말았다. 이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애교를 부렸더니, 누님은 빙그레 웃으신다. 나중에 돈 많이 벌게 되며 그 때 사라고 한다. 아마 누님에게는 평생 대접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님의 오지랖 넓은 사랑 덕분으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식당에서 그냥 집으로 간다고 하니, 누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집에 들러서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고 하였다. 누님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누님은 이 것 저 것을 많이도 싸 주신다. 찹쌀을 비롯하여 고구마까지 집에 있는 것을 모두 다 나눠주신다. 어디 그뿐인가? 옷가지까지 싸서 주는 것이다. 아이들 커가는 데 부족한 것이 많은 때라면서 챙겨주신다. 염치 좋은 집사람은 누님이 싸주는 대로 몽땅 받아서 차에 실었다. 자동차 트렁크가 꽉 찰 정도가 되었다. 더 넣을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서야 누님은 멈추었다. 누님의 오지랖 넓은 사랑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절감하였다. 누님의 사랑이 애틋하고 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새삼 누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고만 싶어 하는 누님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누님에게 주어본 적이 없다. 나는 늘 받기만 하였다. 주지는 못하고 받기만 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왜소해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누님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설이다. 내년에는 누님의 사랑에 백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이라도 같으면서 살아야겠다.


태그:#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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