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는 이탈리아 출신의 재능 있는 감독 루카 구아다그니노의 작품이에요. 그는 첫 장편인 <주인공들>(1999년)이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유럽에서 이름을 알렸어요. 이후 연출한 작품 <틸다 스윈턴: 러브 팩토리>(2002년), <쿠오코 콘다디노>(2004년) 역시 베니스에 갔었죠. 그에게 가장 큰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은 <멜리사 P>(2005년)였어요. 하지만 이전 작품들은 이 영화를 위한 준비였단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아이 엠 러브>는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 영화 중에 최고란 수식어를 붙여도 될 것 같아요.
이탈리아 영화는 194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영화사에 남을 조류를 만들어 내었어요. 바로 '네오리얼리즘'이죠. 극사실주의라고 할 만큼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영화에 나타냈어요. 당시 이탈리아에서 풍족하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지만, 자연광을 최대한 사용하면서 찍어낸 당시 이탈리아 영화들은 유럽 전체를 그리고 영화사 전체를 흔들 만큼 강렬했어요. '네오리얼리즘'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국의 프리 시네마 그리고 세계 각국의 뉴웨이브 영화에 영향을 미쳤죠.
이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에서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뉴이탈리아 영화, 서부극을 이탈리아의 감성에 맞게 편성한 마카로니 웨스턴 등이 이탈리아 영화가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특히 뉴이탈리아 영화의 대표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작품<순응자>(1970년)는 세계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 영화는 몰락의 길을 걸어왔어요. 영국 영화와 마찬가지로 유럽은 프랑스 정도만 제외하면 사실상 할리우드 영화의 위력 앞에 맥없이 무너졌던 시기였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영국과 이탈리아에 좋은 감독들이 나타나면서 유럽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조금씩 회복하면서 찾아가고 있는 중이죠.
이탈리아의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2000년대 이탈리아영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출자죠. <아이 엠 러브>는 그런 면에서 현재 이탈리아 영화의 모습이 어떤지 알려주는 작은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위해서 얼마나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이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게 해주기 때문이죠.
막장 같은 스토리를 전혀 막장 같지 않게 만들어주는 뛰어난 카메라 워크, 음악과 배경의 조화,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까지 예술적인 면에서 엄청난 신경을 쓴 작품이에요.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완벽한 하나의 명품이 되었어요.
틸다 스윈튼의 매력 물씬 풍기는 영화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이 작품에 틸다 스윈튼을 전면에 내세워 그녀의 매력을 물씬 풍겨주고 있어요. 그녀가 여태껏 출연했던 작품 중에 이보다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낸 영화는 없었어요. 러시아 출신 엠마(틸다 스윈튼)는 밀라노 상류가문으로 시집와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녀에게 큰 변화가 생겨요. 다 큰 딸아이가 레즈비언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처음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너무나 행복해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죠.
이럴 때쯤 아들 에도아르도(플라비오 파렌티)의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를 알게 되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아들의 친구에게 사랑을 느끼고 빠져 들어가기 시작해요. 이렇게 그녀가 자신의 삶을 조금씩 찾아가려고 할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겨요. 자신의 남편 탄그레디(피포 델보노)와 아들 에도아르도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부와 권력은 부자간이라도 나누기 쉽지 않다고 했나요? 가문의 공동 후계자가 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첨예하기 대립하기 시작해요. 명문 가문의 몰락이 시작되는 것이죠.
<아이 엠 러브>는 얼핏 줄거리를 보면 막장 드라마 냄새가 묻어나요. 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막장이 되지 않았어요. 한 여인의 삶과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통해 영화가 막장으로 흘러가게 두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다 수준 높은 영화미술과 음악 그리고 의상과 음식 등은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격조를 높여주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통해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인물들이 어떤 심리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지 확실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죠. 대사가 아니더라도 영화미술과 음악 그리고 의상과 음식만으로도 인물 심리상태를 충분히 알 수 있단 것이에요.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요. 이 작품은 예술적인 성향이 강한 영화에요. 작품 안에 암시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고, 일일이 어떤 것을 설명해주는 작품이 아니란 이야기에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작품에서 전해주는 여러 가지 암시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거나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상당히 지루한 영화로 기억될 공산도 있어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역시 영화 외적인 부분과 완벽하게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작품을 보는지에 따라서 영화 평가는 완전히 상반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의 <아이 엠 러브>는 좋은 예술 작품 한편이 탄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아요. 예술영화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국내개봉 2011년 1월20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