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단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일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힘들다. 돈을 뜯어내기는커녕 조직폭력배와 마주치는 것조차 꺼릴 테니까.
하지만 조직구성원들과 나름대로 안면이 있고 조직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구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을 뜯어내려다가 발각되면 죽을 때까지 도망다녀야 하고 붙잡히면 엄청난 보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한탕'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은행을 털거나 사기를 치는 것보다 '조폭'의 돈을 노리는 것이 좀더 쉽게 느껴질지 모른다. 범행후에 어딘가로 달아나야 하지만 조폭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나 경찰수사를 피해서 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에서 등장인물들은 조폭의 돈을 노린다. 그것도 푼돈이 아니라 무려 10억엔, 상대는 거리의 폭력배들이 아니라 야쿠자다.
성공하면 대박일 테지만 웬만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다. 야쿠자로부터 10억엔을 뜯어내고 무사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외국으로 도피하더라도 마음졸이면서 하루하루 보낼 것이 분명하다.
폼나는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10억엔<한밤중에 행진>에서는 25살의 동갑내기 3명이 이런 일을 구상한다. 이 세 명의 직업과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일하기는 싫지만 폼잡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파티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요코야마 겐지의 목표는 거금을 쥐고 화려하게 노는 것, 그리고 거물 취급을 받는 것이다.
전직 모델인 구로가와 치에는 늘씬한 미인이지만 남이 시키는 대로 웃고 포즈를 취하는 것이 싫어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녀 역시 평범한 인생은 질색이다. 남자에도 결혼에도 별 관심이 없지만 고급 카페를 하나 차려서 부유한 손님들만을 상대하며 살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근무 중인 미타 소이치로는 위의 두 명과는 약간 다르다. 그도 역시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은 없다. 그는 돈이 생기면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 공화국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뭐해서 먹고 살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가한 작은 나라에서의 은둔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세 명은 우여곡절 끝에 서로 알게 되고 의기투합해서 야쿠자의 돈을 노린다. 요코야마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야쿠자 한 명이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사설 도박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도박장에서는 하룻밤에도 엄청난 현금이 오고 간다. 요코야마 삼인조는 이 돈을 노리는 것이다.
삼인조는 치밀한 준비를 한다. 도박이 열리는 날이면 아파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도청장치까지 동원해서 쌓여가는 현금의 액수를 파악한다. 야쿠자에게 10억엔이 모이면 어떤 방법으로 기습해서 돈을 가져갈지도 구상해두었다. 대담한 범죄이지만, 어차피 야쿠자도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 돈을 벌어들였으니 우리가 중간에 가로채도 별 상관없지 않을까?
진지한 사건과 코믹한 인물들의 결합이들이 구상하는 범행은 어찌보면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끔찍한 연쇄살인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인물들도 그리고 그들이 처하는 상황도 코믹하기만 하다.
이들은 일을 진행해나가면서 사랑에 빠지고 서로 질투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래도 죄책감만은 느끼지 않는다. 야쿠자의 돈을 탈취한다는 것은 성공해도 문제, 실패해도 문제이지만 이들은 오로지 앞만보고, 10억 엔만 바라보면서 달려간다. 목표는 10억 엔! 그 돈으로 남은 인생을 폼나게 살아보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일탈과 함께 한탕을 꿈꾼다. 그 한탕이 이런 범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성공한다면 화려한 삶을 살 수도 있고 한적한 곳에 은둔할 수도 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것이다.
조직폭력단을 상대로 한 이런 범죄를 성공시킨다면 나름대로 통쾌하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감히 그럴 엄두를 못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행진>을 읽어보면 어떨까. 통쾌함은 둘째치고, 읽는 동안에는 지루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 양억관 옮김. 재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