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잠시 테주 강변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사방이 아직 어두워 리스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가는 날이라 오전 8시에 출발했다. 세비야까지는 버스로 6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테주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월 25일 다리'를 건너 E1 고속도를 타고 남쪽으로 갔다. E1 고속도로는 에스파냐의 북서쪽 끝 코루나에서 대서양 연안을 따라 포루투, 리스본을 거쳐 대서양 연안까지 내려간 다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세비야까지 이어진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대지가 축축하고, 강물은 불어 흙탕물이다. 이곳 이베리아 반도는 여름보다 겨울에 오히려 강수량이 많다. 그것은 따뜻한 대서양 난류가 반도의 찬 공기와 부딪쳐 많은 구름을 만들고, 그것이 비로 내리기 때문이다. 두 시간 가까이 지나 '스톱 카페'라는 휴게소에 잠깐 쉬었다. 그곳에서 나는 물기를 머금은 여러 가지 들꽃을 구경했는데 우리의 봄에 해당하는 기온인지라 노랗고 빨간 꽃들이 많이도 피어 있었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서 지도책도 하나 사고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커피 한 잔에 1유로가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런데 휴게소 안에 특이한 게 눈에 띈다. 코르크(Cork)로 만든 생활용품이다. 가방, 우산, 앞치마에서부터 용기, 장난감, 필통 등 없는 게 없다. 코르크는 아주 가볍고, 단열과 방음성이 뛰어나 산업용으로도 많이 쓰인다고 한다. 물론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다.
포르투갈은 세계 최대 코르크 생산국이다. 전 세계 코르크 생산량 34만t 중 52%가 포르투갈에서, 32%가 에스파냐에서 생산되고 있다. 코르크는 코르크 나무의 껍질이다. 코르크는 25년 정도 자란 코르크 나무에서 생산할 수 있다. 코르크는 벗겨낸 외피가 다시 두꺼워져야 하기 때문에 9년에 한 번씩 벗겨낸다고 한다. 코르크 나무에서는 200년 동안 코르크를 벗겨낼 수 있으며, 한 나무의 평생 생산량은 1t 정도라고 한다.
휴게소를 떠난 차가 남쪽의 알가르브(Allgarve)주에 이르자 날씨가 좀 더 좋아졌다. 알가르브는 대서양을 끼고 동서로 길게 이어진 주로 13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는 155㎞의 해안선을 따라 그리고 내륙의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관광 리조트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차는 알부페이라 근방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에서 세비야까지는 약 200㎞로 두 시간은 더 가야 한다. 버스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국경인 과디아나강에 이르기 전에 잠깐 쉬었다. 과디아나강은 에스파냐 중남부 내륙에서 발원해 서향하다 바다호쓰(Badajoz)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 뒤 카디쓰(Cadiz)만으로 빠진다. 총 길이가 829㎞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네 번째로 길다.
이슬람, 유대인, 기독교 문화가 만난 세비야
대서양을 따라가면서 집의 벽이 더 하얘짐을 느꼈다. 뜨겁고 밝은 태양빛을 반사시키기 위해 벽을 하얗게 칠한 것으로 보인다. 과디아나강 하구에 놓인 다리를 건너 에스파냐로 들어서자 구릉을 따라 펼쳐진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 농장을 볼 수 있었다. 에스파냐는 연간 620만t의 올리브를 생산해 세계 전체 생산량(1824만t)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탈리아(360만t)와 그리스(224만t)가 잇고 있다.
세비야 쪽으로 가면서 날씨가 점점 좋아졌다. 바다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세비야로 가면서 지나는 도시로는 우엘바(Huelva)가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도시를 한참 벗어나 지나가기 때문에 도시의 면모를 알 수가 없다. 과디아나강을 건너 1시간 30분쯤 지나자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주의 수도로 70만 명이 살고 있다.
세비야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그러나 현재 세비야 문화와 사회의 토대를 이룬 것은 712년 이후 이곳에 들어온 이슬람 세력이었다. 무어왕조로 불리는 알 모라비드 왕조는 코르도바를 수도로 정하고 북쪽 산악지대를 제외한 전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쉬빌리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1031년 무어왕조가 수도를 이곳 세비야로 옮기면서 안달루시아 최대 도시가 될 수 있었다. 현재 사용되는 세비야라는 도시명은 에스파냐어 표준발음이다. 그러나 안달루시아식 발음은 세비자이며, 영어식 발음은 세빌리아이다.
과달키비르강 북쪽 구도심에 있는 세비야의 문화유산 대부분은 11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248년 세비야가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드 3세에 의해 점령되면서 다시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세비야는 이슬람문화, 유대인문화 그리고 기독교문화가 공존하면서 독특한 문화풍토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세비야를 상징하는 문화유산들에는 무데야르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이 뒤섞여 있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은 뭐니뭐니해도 대성당이다. 카스티야 레온왕국 시기인 1401년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고딕양식으로 짓기 시작해 1519년 완성했다. 대성당 옆에는 알카사르로 불리는 왕궁이 있다. 이곳은 왕과 칼리프들이 살았던 궁궐로 무데야르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후대에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다.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황금의 탑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무어왕조 때 만들어진 망루다.
세비야의 젖줄, 과달키비르 강변의 추억
과달키비르강은 세비야의 젖줄이며 세비야는 현재 안달루시아주 최대의 공업도시다. 세비야가 이처럼 공업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수량과 교통의 발달 덕분이었다. 이처럼 공업용수를 공급해주고 해상교통을 발전하게 만든 것이 바로 과달키비르강이다. 과달키비르강은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관통하는 강으로 상류의 코르도바,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흘러든다.
우리는 트리아나 다리 북쪽 역사지구에서 차를 내려 잠시 다리를 살펴보았다. 트리아나는 원래 과달키비르강 남쪽 지역으로 로마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역이다. 그러므로 트리아나 다리는 트리아나로 이어지는 다리라는 뜻을 지닌다. 다리 북쪽으로 구도심이 있기 때문에 다리 주변으로는 버스투어, 도보투어 유람선 투어길이 지나간다.
내가 다리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 강변을 산책하려는데 버스투어를 하라고 권유하는 호객꾼이 나타났다. 우리는 전세버스를 타고 와서 도보투어를 할 거라고 말을 해도, 우리팀 사람들이 모두 오면 나와 아내는 무료로 태워줄 거라면서 유혹을 한다. 그들로부터 투어지도를 하나 얻었는데 꽤나 쓸만하다. 평면의 지도에 중요한 관광자원을 입체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우리팀은 과달키비르강을 산책한 다음 강변에 있는 황금탑을 볼 예정이었다. 그리고 대성당을 둘러본 다음 알카사르를 끼고 유대인 거리를 살펴볼 생각을 했다. 유대인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산텔모 정원과 무리요 공원을 산책하고 그 다음 버스를 탄 뒤 마리아 루이자 대로를 따라 마리아 루이자 공원에서 내릴 예정이었다. 이곳에서부터는 다시 걸어서 공원 전체를 둘러보고 에스파냐 광장으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이렇게 하면 도보투어와 버스투어를 하면서 세비야의 핵심을 볼 수 있다.
강으로 내려가니 동상과 조형물이 보였다. 동상의 인물은 이곳 출신의 유명한 플라멩코 춤꾼이라고 한다. 그 옆에 조형물은 설명이 있는데 에스파냐어를 몰라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존을 기념하는 '관용의 기념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또한 강변인지라 갈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강 건너편으로는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베이지색으로 칠한 3층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주택들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색감을 잘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문을 통해 멋을 내고 있었다.
금은보화를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 황금탑
강을 따라 가다 아내와 나는 산텔모 다리 못 미쳐 강둑에 있는 황금탑(Torre del Oro)을 발견했다. 이 탑은 이곳 강을 지나는 배들을 감시 검문하고 적의 침입을 관찰하기 위한 감시탑으로 13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비야가 카스티야 왕국에 복속된 후에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다 에스파냐가 대서양을 건너 인도와 아메리카로 진출하면서 그곳에서 가지고 온 금은보화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황금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탑은 크게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종탑이나 옥탑처럼 좁고 높게 돔을 올렸다. 벽면은 팔각으로 만들고 각 면에 작은 창들을 냈다. 19세기 들어 강변도로를 내면서 이 탑을 허물자는 얘기가 있었고, 물길을 넓히기 위해 허물자는 얘기도 있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는 탑이 수리 복원되어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황금탑에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중요한 도보투어 코스다. 산탄데르 길을 따라가면서 왼쪽으로 라 마에스트란차 극장이 있고 라 카리다드 양노병원이 있다. 이 길은 또한 마차투어 길이기도 해서 관광객을 태운 마차를 종종 볼 수 있다. 주변에는 관청 건물도 보이는데 그 장식 역시 무데야르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여 있다. 조금 더 가니 길 사이로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