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에서 민주노동당 후원 관련한 전교조 조합원들을 파면 또는 해임할 것을 지시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인사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 후원 교사에 대한 징계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2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에서 민주노동당 후원 관련한 전교조 조합원들을 파면 또는 해임할 것을 지시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인사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 후원 교사에 대한 징계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2부와 23부(재판장 김우진, 홍승면 부장판사)는 26일 '정당에 가입하여 정치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한 교사와 공무원들에 대해서 검찰의 구형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 기소된 이들 중 단 한명도 당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총 267명(출석 못한 6명 제외) 중 37명은 벌금 50만 원, 223명은 벌금 30만 원을 선고받았고, 3명은 선고유예, 4명은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받았다. 형식상으로 정치자금법 관련해서는 일부 유죄를 인정했지만 이 사건의 핵심이 '정당 가입 여부'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2009년 6월 교사들의 시국선언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는 명목으로 서버를 통째로 가져가 10년 전 회의 자료까지 뒤졌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1월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 혐의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별건 수사라는 비난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달인 2월에는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이란 정당 사상 초유의 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교장들이 한나라당에 500만 원씩 후원하고, 현직 교원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하는 등 한나라당 관련 교원들의 정치활동 혐의가 밝혀져 편파성 논란이 일었음에도 검찰은 5월 '불법 정당 가입 등 정치활동' 혐의로 273명의 교사와 공무원을 기소했다.

이후 교과부와 행안부는 기소된 217명의 파면·해임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당원 가입을 부인하는 것과 더불어 정당법과 정치후원금 관련 재판중인 상황이니, 징계를 법원 판결 이후로 연기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교과부는 징계권자인 시도교육감들에게 징계를 강요했다. 결국 경북, 부산, 경남, 인천 등에서 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내려 교사들을 교단에서 쫓아냈다.

대부분 당원이라 주장한 '검찰'... 단 한명도 당원 아니란 '법원'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법원에서 "당원"이라고 주장하는 검찰과 "단순 후원"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인 간 공방이 계속됐다. 검찰은 지난 1월 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공무원과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국가공무원법,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며 이들에게 전원 당연퇴직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 원~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날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정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교사와 공무원들이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라며 "정당 가입죄는 행위 완료 시점을 시효의 기산점으로 보는 즉시범이므로 검찰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공소 시효 3년이 지난 이들은 면소"라고 판결했다.

즉, 검찰은 대부분이 당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단 한명도 당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기소된 교원과 공무원들이 월 5천~1만 원의 소액을 후원하여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였다는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는 "교사들이 불법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2006년에 정당 후원회 제도가 폐지되었으므로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그러나 금액이 모두 소액이고, 불법인 줄 몰랐다는 주장도 수긍할 만한 점이 있으며, 제자와 동료 교사 등이 선처를 요구하는 등 교직을 박탈해야 할 만한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벌금 30~50만 원을 선고했다. 일부 교사에 대해서는 선고 유예 또는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벌금 100만 원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교사와 공무원은 자동적으로 면직된다. 검찰은 이 조항에 근거하여 기소된 교사와 공무원 전원에 대해서 교직과 공직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연퇴직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교사들과 공무원의 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교직과 공직에서 물러나야할 만큼의 벌을 내릴 정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5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했다.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언론들이 '틀렸다'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검찰은 줄기차게 이들 교사들과 공무원들이 당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기사뿐 아니라 사설까지 동원하여 검찰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받아썼고, 검찰이 공개하지 않은 것까지 사실로 확정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교과부(장관 이주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련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당원으로 단정하여 교사들의 해고를 종용했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정두언 선거전략위원장은 느닷없이 "이번 선거는 전교조에 대한 심판"이라고 노골적으로 이 사건을 선거 국면에 활용하였으며, 조해진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침소봉대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전혁 의원은 개인 성명을 내어 전교조 교사들의 파면해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소된 전교조 교사 중 정당 당원은 한 명도 없다"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로 검찰과 교과부, 한나라당, 그리고 MB 정부는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동시 생중계하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 역시 언론의 신뢰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판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검찰 총장, 교과부 장관, 한나라당, 조중동 등 보수언론, 나아가 MB 정부 중 어느 누구도 전교조에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검찰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항소하고, 교과부는 1심 판결일 뿐이라며 폄하하며 징계한 교사들을 학교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또 보수언론은 정치자금법 위반만 강조하여 유죄라고 보도할 것이 뻔하다. 한나라당이나 MB 정부의 반성과 사죄의 논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태그:#전교조, #교과부, #한나라당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