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대성당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
세비야 성당 길에서 나는 재미난 얼굴, 독특한 차림의 사람들을 만난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마부, 번쩍이는 금박 모자를 쓴 아이, 멋진 선글라스를 쓴 관광객 등. 이들이야말로 세비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새해 1월 1일이어서 세비야 대성당 문이 닫혀 있다. 세비야 대성당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예약을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리아 승천문(Portada de la Asunción)을 통해 본당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그 옆 세례문(Portada del Bautismo)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탄생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고, 그 옆에 요셉이 서 있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와 아이가 와서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 그렇지만 본당쪽은 나무벽으로 차단해 놓아 안을 엿볼 수도 없다.
나는 구유 옆 소성당으로 가 세비야 대성당의 일부를 살펴본다. 이곳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고, 석조각과 목조각이 인상적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고딕양식으로 유리창의 끝에 꼭짓점이 있고, 빛이 들어오는 광창은 원형이다. 석조각은 이 성당을 짓는데 기여한 왕과 주교의 모습을 부조로 만들었다. 목조각은 마우로 만든 문에 네 명의 인물을 양각으로 새겼는데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이 소성당을 나온 다음 서북쪽 모퉁이를 돌면 대성당의 북쪽면이 이어진다. 북쪽면 한 가운데는 면죄의 문(Puerta del Perdón)이 있다. 이 문은 대성당의 안쪽 마당인 오렌지정원으로 통한다.
그런데 1월1일이라 정원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정원은 이곳이 이슬람 사원일 때 신자들이 손발을 씻던 정화의 장소였다.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보니 종루인 히랄다탑이 아주 잘 보인다.
히랄다탑은 가로 7.12m, 세로 13.61m, 높이 105m의 종탑(bell tower)으로, 1198년 이슬람 사원의 첨탑(minaret)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1568년 건축가 에르낭 루이쓰가 종탑으로 개조했고, 꼭대기 부분에 대좌를 포함해 7m의 청동조각상을 설치했다. 그 이름이 히랄디요(El Giraldillo)로,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남성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여성상인 산타 후아나(Santa Juana)가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히랄다탑을 보고 북동쪽을 한 바퀴 돌면 승리의 광장에 이르게 된다. 승리의 광장은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 사이에 있는 광장으로 세비야 구도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히랄다탑의 우뚝한 모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성당을 배경으로 사람을 사진 속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궁전인 알카사르로 갈 차례다.
알 카사르 옆 유대인 거리에서 만난 워싱턴 어빙
그런데 알카사르를 제대로 관람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반데라스 정원을 포함해 일부만 보기로 한다. 정원 주변은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고 있어 어수선하다. 성곽을 끼고 좁은 길이 나있는데 이곳이 유대인 거주지다. 하얀 건물 벽을 화분이나 도자기로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좁은 골목에 가게들이 있고,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다.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이들 유대인 거리를 지나면서 유명한 베네라블레스 양로원을 볼 수 있고,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의 집을 볼 수 있다. 워싱턴 어빙은 미국의 작가이자 역사가다. 그는 1815년 유럽으로 가서 17년간을 살았다. 그때 그가 방문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이다. 그가 에스파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파리에 살던 1826년이다. 1825년 에스파냐 주재 미국대사로 부임한 알렉산더 에버리트가 어빙을 영사(consul)로 초빙했다. 그래서 그는 마드리드로 가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진출 등 에스파냐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독서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1828년 1월 <크리스토퍼 콜룸부스의 삶과 항해>라는 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켜 19세기에 175판을 발행하는 인기를 누렸다. 이에 고무된 어빙은 이듬해인 1829년 <그라나다 정복 연대기>라는 책을 냈고, 이후 역사에 픽션을 가미한 역사소설(historical fiction)을 계속 발표하게 되었다.
워싱턴 어빙이 세비야에 살게 된 것은 1827년이다. 그는 콜럼버스에 대한 책을 준비하면서 세비야를 방문해 자료를 수집했고, 이곳 유대인 거리에 살게 되었다. 콜럼버스에 대한 자료 대부분이 세비야의 인도문서관(Archivo de Indias)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빙은 또한 1829년에 그라나다의 이슬람 궁전 알함브라로 가 그곳에서 살면서 작품의 소재를 찾았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앞에 언급한 <그라나다 정복 연대기>이다. 그러나 어빙은 그해 7월 영국 주재 미대사관 서기관으로 소환되어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세비야에서의 콜럼버스 추모 열기는 여전하다
콜럼버스는 현재 에스파냐에서는 성인으로 추대되어 세비야 성당 안에 묻혀 있다. 콜럼버스의 석관은 1902년에 만들어졌는데, 1898년 그라나다대학교 유전자연구소 팀이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던 유골을 조사해 콜럼버스의 것이 맞다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하튼 세비야 성당 남쪽의 문 이름도 콜럼버스를 기념해 성 크리스토발 문(Puerta de San Cristóbal)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에스파냐식 이름이 바로 크리스토발 콜롱이다.
크리스토발 콜롱을 추모하는 기념물은 무리요 공원에도 있다. 공원 한 가운데 신전의 석주처럼 두 개의 기둥을 높이 세우고 상단부에 사자상을 조각했으며, 그 아래 크리스토발 콜롱이라고 썼다. 기둥 가운데는 이사벨 여왕이 하사한 배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고, 기단부에는 콜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신대륙에서 가져다 심은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진출 500주년을 기념해 세비야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발견의 시대'라는 주제로 과달키비르강에 있는 라 카르투하 섬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열렸다.
엑스포는 주제관과 국가관으로 이루어졌는데, 주제는 다섯 가지이고 참가국은 100여 개국이었다. 다섯 가지 주제는 항해, 발견, 자연, 환경, 15세기였다. 세비야 엑스포에서 가장 강조된 것들은 소통과 교류를 상징하는 문과 다리 그리고 교통기관이었다. 그리고 발견과 관련해서 최초의 아이맥스 영화가 상연되기도 했다.
국가관 중에는 에스파냐관, 일본관, 모로코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주최국인 에스파냐관은 배 모양에 육면체와 구형 구조물을 올려놓은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일본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구조물로 인기를 끌었고, 모로코관은 궁전건축을 재현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옥을 현대식으로 표현한 국가관을 만들었지만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자료 사진을 보니 내부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보인다.
공원 속의 무데야르 양식
무리요 공원에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마리아 루이자 공원으로 간다. 가는 길에 라리아 루이자 대로변에 있는 독특한 건물들을 본다. 이 건물들은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 때 만든 남아메리카의 국가관이었다고 한다. 칠레관, 페루관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라스 델리시아 길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간다.
이 공원은 1893년 공작부인이었던 마리아 루이자로부터 산 텔모 궁전의 정원 일부를 기부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엔지니어인 장-클로드 포레스티에가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정원을 모방하고 현대화해 1918년 개장하게 되었다. 이 공원의 끝에 다음에 갈 에스파냐 광장이 있다.
마리아 루이자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궁전의 부속건물과 전통예술박물관이다. 궁전의 부속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보이고, 전통예술박물관은 무데야르 양식이다. 무데야르 양식이란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형식으로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은 후대에도 전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데야르 양식은 건축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음악, 미술, 공예기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예술박물관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앞에 분수가 솟는 연못이 있어 그 반영이 더 아름답다. 붉은색이 감도는 2층의 벽돌건물과 다양한 모양의 창문 그리고 삼각형과 사각형의 지붕이 물에 어른거려 환상적이다. 건물 내부는 8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생활과 예술 관련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의류, 음악, 농기구, 금은보석, 카페트와 같은 직물류, 건축의 실내장식 등이다.